최영민의 마음 클래식

  • 등록 2025.04.16 17:5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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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가 전하는 폭삭 속았수다


벚꽃이 만개하고 바람이 불 때면 벚꽃 비가 날린다. 따뜻한 봄바람이 마음을 간지럽히듯 추억들이 봄 내음에 실려 마음에서 살랑인다. 살아오면서 추억 하나쯤 떠올린다면, 누구 할 것 없이 가족이 먼저 떠오르지 않을까?

 

어느 날 한 통의 전화가 온다. 마음이 아프고 우울해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며….

 

2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의 기일이 며칠 뒤라며 벚꽃이 필 때면 아버지가 너무 보고 싶어 눈물을 흘렸다 한다. ‘아버지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무엇일까요?’라는 질문에 ‘벅찬 사랑’이라 대답한다. 얼마 전 ‘폭삭 속았수다’ 드라마를 보는 중, 등장인물 관식이가 본인의 아버지와 비슷하다며 통곡하듯 울었다고 아버지의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가족들에게 헌신적인 사랑을 전한 아버지였건만, ‘긴병에 효자 없다’라는 말이 있듯, 편찮으신 지난 10여 년 동안 어느새 가족들은 점점 지쳐 가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아버지께 괜스레 짜증도 내고, 보내드리기 전까지 정성을 다하지 못한 게 자식으로 정말 후회된다 했다.

 

아버지와의 추억을 생각하며 지난번 연주회 가기 전 곡에 대해 잠시 설명해주었던 나의 이야기가 생각났다며 “지난번 연주회에 함께 갔을 때 그 곡이 뭐였죠?”라며 물었다.

 

그 곡은 바로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 Piano Concerto No. 21 K. 467 2악장이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1756-1791)는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천재적인 재능을 보였다. 아버지의 열성적인 교육 덕분에 어릴 때부터 전 유럽을 돌며 연주회를 열고 그 도시에서 활약하는 최고의 음악가들을 만나 당시의 음악 조류를 배울수 있었다. 아버지 레오폴트는 모차르트에게 최고의 스승이자 매니저였다. 그는 <장난감> 교향곡을 쓴 작곡가이자 <바이올린 교본>을 펴낸 교육자로 아들의 음악적 성공에 인생을 걸었다. 당시 잘츠부르크 궁정 부악장이던 아버지 레오폴트는 아들의 천재적 음악성을 알리기 위해 연주 여행을 떠났다. 그는 아들 모차르트가 잘츠부르크보다 더 큰 도시의 왕궁에서 안정된 일자리를 구했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구직 활동은 실패로 끝났다. 아버지는 모차르트가 잘츠부르크에서라도 안정적인 직업인 궁정악단으로 활동하길 원했으나 모차르트의 생각은 달랐다. 모차르트는 더 이상 잘츠부르크의 통치자 콜로라도 대주교 밑에서 간섭을 받으며 음악 활동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사직서를 제출하고, 콜로라도 대주교에서 벗어나 자유 음악가를 꿈꾸며 빈으로 향했다.

 

결국 아버지와의 연락도 뜸해지고 부자간의 관계가 소원해졌다. 모차르트는 아버지와의 관계 회복을 위해서라도 빈에서 꼭 성공하고 싶었다. 귀족 계층과 신흥 시민 계급의 청중들을 위해 ‘예약 연주회’를 계획한 그는 자신의 강점인 피아노 협주곡을 작곡했다.

모차르트가 1785년 2~3월에 완성한 이 작품을 자신이 주최한 예약 연주회에서 직접 피아노를 연주하여 초연할 때 아버지는 아들 모차르트를 만나러 빈을 방문했다.

 

아버지 레오폴트는 이날 연주를 듣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이유는? 피아노 독주자가 연주하는 둘째 주제 마무리 대목의 왼손 파트가 아버지의 피아노 소나타 C장조의 느린 악장 왼손 파트와 똑같았던 것이다. 모차르트가 이 아름다운 안단테를 아버지에게 바치며 그의 작품 중 한 대목을 인용하여 오마주를 표현한 것이다.

 

모차르트는 자신을 위해 고생하고 수고한 아버지의 노고에 감사와 존경을 표한다.

 

‘아버지! 폭삭 속았수다’

 

아버지는 아들이 존경과 감사를 표하는 이 사실을 알았기에 ‘감격의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아버지와 아들은 음악으로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화해가 이루어졌다. 아름다운 선율 뒤로 드러나는 애잔함은 그동안 아버지와 아들이 말하지 못했던 각자의 사랑과 아픔 그리고 갈등의 그림자를 노래하는 듯하다. 특히 2악장은 현이 노래하는 듯한 주제를 제시하며 독주가 그것을 이어받는다.

 

오케스트라와 피아노의 대화는 모차르트와 아버지가 나누는 화해의 대화인 듯 들려온다.

 

전화에서 들려오는 그녀의 목소리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조금 밝아진 듯했다. 모차르트가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존경을 표한 것처럼 본인도 아버지와 함께한 추억들을 떠올리며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고 했다. 기억에 남는 추억 중 하나가 떠오른다며….

 

어릴 때 귀하게 여긴 도자기가 있었는데 장난치다가 그것을 깨뜨려 야단맞을 각오를 하고 있었다. 아버지께서는 “너, 다친 데 없니?”라고 걱정해주시고 깨진 도자기를 아무 말 없이 치우시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때 “아, 나는 이렇게 비싼 도자기보다 더 가치 있는 사람이구나!”라는 것을 느끼고 아버지에 대한 사랑에 감사를 전했다.

 

“아버지도 딸이 얼마나 사랑하고 존경하는지 아실 거예요”라고 말하니, “아마 그럴 거예요.”라고 했다. 마지막에 죄송하고 아쉬웠던 기억보다 아버지와 사랑했던 기억들을 떠올리며 그를 위한 기도를 하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어쩜 우리는 가까운 가족들에게는 익숙함으로 대충 대하고 잘 모르는 누군가에게는 예의를 갖추어 최선을 다하는 경향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은 말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알아줄 거라는 착각을 한다. 그러나 말하지 못해 아쉽고, 말하지 않아 모르는 마음도 있는 듯하다.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 있을 때 마음껏 사랑을 표현하길,

가까운 이에게 고마움과 따뜻한 마음을 나누는 소중한 하루가 되시길 바랍니다.

 

 

 


 

 

최영민 작가

경북대 예술대학 음악학과 석사

대구한의대 치유과학과 박사과정 중

 

[주요활동]

전 대구과학대학출강

법무보호복지공단 대구지부 심리위원

아카데미 예송 대표

'마음이 머무는 클래식' 진행

 

[수상경력]

2024 대한민국 眞心예술대상 수상

 

[대한민국예술신문]

관리자 eduladd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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