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랑크 – 힘든 나를 위로하는 토닥임
사랑을 표현하고 나누는 날들이 많은 5월이지만, 표현하고 싶어도 표현할 수 없는 이들도 있다. 사랑하는 이가 멀리 있다며 눈시울을 적시는 만남으로 사랑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시간이었다.
평소 늘 웃으며 걱정 하나 없을 것 같은 70대 고운 분이 조심스레 고민을 꺼내 놓았다.
“내 평생 살아오면서 장성한 자식이 아픈 지금이 가장 힘든데, 이때 떠오르는 얼굴이 있어요.” 어릴 때 본인을 낳고 얼마 되지 않아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한다. 아버지는 재혼하여 5남매를 낳으셨지만, 본인이 혹여나 서운함이 있진 않은지 늘 주목하고 관심을 가져주셨다며 많은 사랑을 받아 감사하다고 한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새어머니의 입장에서 생각하게 되었다며….
아버지와 결혼하였으나 본인의 존재로 인해 새어머니는 온전한 사랑을 받지 못하는 처지였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먼저 배려하고 생각해주는 것이 느껴졌다고 한다. 철이 없던 시절 때론 새어머니의 행동에 ‘내가 친딸이 아니어서 그러나?’라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지만, 나이가 들어 아이를 낳고 키우다 보니 그렇게 진심으로 대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나의 새어머니밖엔 없다고 하며…. 돌아가실 때 잘해드리지 못한 것이 후회되고 감사의 표현을 제대로 못 한 것 같아 아쉽다며 눈가엔 눈물이 맺혔다.
오늘 같은 따스한 햇볕이 가슴을 비추는 날엔 새어머니의 미소가 떠오른다 했다.
우리가 함께 들어볼 곡은 프랑스 작곡가 프랑시스 풀랑크 (Francis Jean Marcel Poulenc, 1899~1963)의 곡 Les chemins de l'amour (사랑의 길)이다. 풀랑크는 그의 생애 동안 150곡에 이르는 가곡을 작곡했다. 그중 130곡은 동시대 시인의 작품에 선율을 붙인 것이다. 그만큼 시를 신중하게 선택하고 시의 내용에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작곡한 사람이다. 이는 프랑스 극작가인 장 아누이 (Jean Anouilh)의 시에 붙여진 곡이다.
‘나는 사람의 목소리를 좋아한다’라고 풀랑크는 종종 말했다. 그와 같은 생각은 가곡에 잘 나타나고 있는데, 가수의 음성을 혹사하는 화려한 기교 대신, 일상 속에서 이야기하는 정도의 표현들로 음악을 다루며 부드러운 사랑으로 사람의 음성을 표현하는 듯하다. 그래서인가, 그의 가곡은 친밀하게 감정을 전하며 포근히 우리에게 다가온다.
풀랑크는 20세기 프랑스 클래식 음악을 대표하는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로 어릴 적부터 유복한 가정에서 자라고 행복한 생활을 이어가다가 1936년 친한 친구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죽음에 관한 깊은 사유가 이어질 때 즈음, 세계 2차 대전이 발발하여 독일이 프랑스를 공격하던 불안과 혼란이 가득한 시기에 이 곡을 작곡하였다. 이러한 암울한 분위기에서도 그는 예술을 통해 위로와 희망을 전달하려 했고 ‘사랑의 길’은 의도대로 우리에게 따뜻한 위로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노래를 작곡하며 내 조국 프랑스를 짓누르는 독일군의 위협, 이런 슬픈 상황이 왜 우리에게 일어났는지, 언제 어떻게 끝날 수 있을지 따위의 괴로움을 잊을 수 있었다네”라며 친구에게 편지를 썼다.
이 곡의 가사는 과거 사랑의 흔적과 아름다운 기억을 회상하며, 그리움과 슬픔을 표현하고 있다. 함께 듣는 동안 따뜻했던 새어머니의 목소리와 손길이 느껴진다며 그리움과 사랑을 간절하게 되뇌었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음악을 듣던 그녀가 ‘새어머니는 곁에 없지만, 그 손길은 내 가슴에 남아있네요!’라며 두 마음이 하나 된 순간으로 추억 여행을 떠난듯하였다. 그리고 말을 이어나갔다. ‘아들이 아파 힘든 나에게 마음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격려를 건네는 어머니의 노래 같다.’라고 했다.
이 곡은 삶이 모든 것을 지우더라도 강렬했던 사랑의 기억만큼은 마음속에 남기를 바라는 간절한 소망이 들어있다.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보고 싶어 눈물 지울 때, 함께했던 빛나는 순간들을 떠올릴 수 있다는 것은 행복이 아닐까 한다.
그것들은 우리의 삶이 외롭지 않고, 또 힘을 낼 수 있게 하는 가치로 충분한 것이다.
Les chemins de l'amour (사랑의 길)
바다로 가는 길들은
우리의 발자취를 간직했네
꽃잎이 떨어진 꽃들과
나무 아래 울려 퍼지는
우리의 맑은 웃음소리가
아, 행복한 날들이여
사라져버린 찬란했던 기쁨이여
나는 내 마음속에서 그 흔적을 찾지 못하고 가네
내 사랑의 길이여
언제나 당신을 찾고 있네
잃어버린 길이여 그대는 이제 없고
당신의 메아리도 더 이상 없네
절망의 길
추억의 길이여
우리 첫날의 길
신성한 사랑의 길이여
언젠가 잊어야 한다면
인생은 모든 것을 지우기에
내 마음속에 이 사랑의 기억이 남기를 원하네
나는 어떤 사랑보다 강렬하게
가슴 떨리고 아찔했던 이 길의 추억
그리고 모든 것을 잃었네
어느 날 나에게서 불타오르는 당신의 손길을 느꼈네
내 사랑의 길이여
언제나 당신을 찾고 있네
잃어버린 길이여 그대는 이제 없고
당신의 메아리도 더 이상 없네
절망의 길
추억의 길이여
우리 첫날의 길
신성한 사랑의 길이여
왈츠의 즐거운 리듬에 프랑스의 로맨틱한 서정성을 담고 섬세하고 감미로운 선율이 함께하는 이 곡은 피아노, 플루트, 첼로, 바이올린 등 솔로 편곡과 다양한 편성의 앙상블을 위해 편곡되어 연주되고 있다. 서로 비교해보며 그리운 누군가를 회상할 때 내 마음에 다가오는 곡으로 들어보면 좋겠다.
최영민 작가
경북대 예술대학 음악학과 석사
대구한의대 치유과학과 박사(ABD)
전 대구과학대학출강
법무보호복지공단 대구지부 심리위원
아카데미 예송 대표
'마음이 머무는 클래식' 진행
2024 대한민국 眞心예술대상 수상
저서 '마음이 머무는 클래식' (에듀래더 글로벌 출판사, 2025)
[대한민국예술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