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머무는 클래식>저자 최영민은 독일시를 전공한 나성인 선생을 만나 슈베르트 예술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했다.
그리움과 방랑, 그리고 인간의 깊이—슈베르트를 다시 읽다
‘가곡의 왕’이라는 익숙한 수식은 때로 한 작곡가의 본질을 가리는 가장 간결한 오해가 된다. 프란츠 슈베르트를 둘러싼 대중적 이미지 역시 그렇다. 그러나 이번 인터뷰에서 드러난 슈베르트는 단지 서정적 가곡 작곡가가 아니라, 시대와 인간의 내면을 관통한 거대한 음악적 사상가였다.
인터뷰이는 슈베르트를 '오스트리아적 교향 세계를 창시한 인물'로 규정한다. 루트비히 판 베토벤의 영향권 안에 있으면서도 결코 그 그림자에 종속되지 않았던 그는, 이후 안톤 브루크너와 구스타프 말러로 이어지는 음악사적 계보를 여는 전환점에 서 있었다. 이는 단순한 장르 확장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내면과 사회적 존재의 균열’을 음악으로 사유한 첫 사례 중 하나라는 점에서 더욱 중요하다.

700곡의 침묵”—무명 속에서 완성된 예술가
슈베르트의 생애는 천재성보다 ‘지속’의 서사에 가깝다. 첫 출판작이 나오기까지 10년, 그 사이 이미 700곡 이상의 작품이 존재했다는 사실은 예술가의 본질을 다시 묻게 만든다.
나성인 선생은 이를 두고 이렇게 해석한다.
'그는 천재이기 이전에 음악을 사랑한 사람이었다.'
매일 아침 7시부터 정오까지 이어진 작곡 노동. 이는 낭만주의적 영감의 신화가 아니라, 철저히 ‘존재를 지탱하는 행위’로서의 예술이었다. 이 지점에서 슈베르트는 단순한 작곡가가 아니라, ‘삶을 음악으로 번역한 인간’으로 확장된다.
연가곡, 한 인간의 존재론적 기록
슈베르트의 세 연가곡은 단순한 음악 작품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단계적 붕괴와 인식’을 담은 서사다.
-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
비극의 주인공으로 '블루칼라(노동계급)' 청년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작품, 동시에 이 노동계급 청년이 자연과 벗하는 순수성과 시인다운 예술적 시선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는 '낭만적인' 작품. 음악적으로 보면 처음에는 민요적이고 단순한 유절가곡이 많지만 뒤에 사랑, 실연 등을 겪으면서 음악이 다채롭게 바뀐다. 슈베르트 다운 미묘한 심리묘사도 탁월하다. - 《겨울 나그네》
사회로부터 탈락한 존재가 경험하는 고독과 해체. 1부에서는 방랑자가 차가운 현실을 깨닫고 괴로워한다. 2부에서 그는 점점 망상과 광기에 사로잡힌다. 텃새인 까마귀가 자신이 죽은 뒤 몸을 먹으려고 따라다닌다거나, 마지막 잎새에 희망을 걸어본다거나 헛것인 이정표를 본다거나 등등 죽음을 향한 동경이 갖가지 어두운 환상 속에 모습을 드러낸다. - 《백조의 노래》
죽음 직전까지 이어지는 감정의 파편화. 사후에 묶인 이 유작집은 그의 마지막 서정성을 담고 있다. 하이네 시에 곡을 붙인 '도플갱어'는 만년의 분열적 자아를, 최후의 곡'우편 비둘기'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겨진 다정한 희망을 노래한다.
특히 《겨울 나그네》는 그가 강조하듯 '아웃사이더의 마지막 여행'이다. 이 작품에서 방랑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자기 존재의 부정’이며, 동시에 ‘인간 이해의 확장’이다.
그는 말한다.
'아웃사이더의 슬픔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예술도 이해할 수 없다.'
이 진술은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낭만주의 미학의 핵심 명제—‘고통을 껴안는 아름다움’—을 정확히 관통한다.
하나의 시, 여섯 번의 작곡—그리움의 진화
괴테가 소설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 시대'에 나오는 주인공 미뇽의 입을 빌어 읊은 시 「Nur wer die Sehnsucht kennt」(오직 그리움을 아는 자만이)를 여섯 번이나 작곡한 사례는, 슈베르트의 내면 변화가 음악적으로 어떻게 축적되는지를 보여준다.
이 반복은 단순한 변주가 아니라, 삶의 국면마다 달라지는 감정의 밀도에 대한 탐구였다. 실연, 질병, 미래 상실이라는 경험 속에서 그는 ‘그리움’을 점점 더 깊은 차원으로 재구성해 나간다.
마지막 버전에서 비로소 도달한 음악은, 단순한 감정 표현을 넘어 ‘존재의 결핍 자체’를 울리는 구조로 완성된다.
음악, 언어를 넘어 인간을 묶다
인터뷰의 후반부는 음악의 본질에 대한 명료한 정의로 귀결된다.
'음악은 언어를 거치지 않고 감정을 전달한다.
그리고 사람을 하나로 묶는다.'
이는 음악을 단순한 감상 대상이 아니라, ‘공동체적 경험의 매개’로 보는 시각이다. 특히 오늘날처럼 분절된 사회에서 음악은 차이를 지우고 감정을 공유하게 하는 드문 통로로 기능한다.
예술의 미래—인간적인 깊이를 지키는 일
그는 최근 유튜브 채널<너선생 유튜브>를 통해 인문학과 클래식, 시와 감성을 연결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이는 단순한 콘텐츠 생산이 아니라, 기술 중심 시대 속에서 ‘사라지지 말아야 할 감각’을 지키려는 시도다.
'우리는 깊이에 목마르다.'
이 한 문장은 이번 인터뷰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이기도 하다.
슈베르트를 듣는다는 것
슈베르트를 다시 듣는다는 것은 단순히 아름다운 선율을 감상하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 실패를 견디는 시간
- 사회로부터 밀려난 존재의 감각
- 사랑과 생존 사이의 갈등
- 그리고 끝내 사라지지 않는 인간의 희망
을 함께 통과하는 일이다.

<나성인 약력>
서울대학교 생활과학대학 소비자아동학부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독어독문학과 및 동대학원 졸
독일 가곡 문학코치, 음악 칼럼니스트
전 리더라이히, 프로그램 디렉터(2011~2015)
전 뮤지토리 예술감독(2014~2016)
전 앙상블 무지카미아 프로그램 디렉터(2016~2018)
전 음악저널 공연예술부 기획 감독(2018~2019)
현 풍월당 이사(2023~), 종합 예술 무크지 『풍월한담』(2020~24) 편집장 역임.
저서로 <베토벤 아홉 개의 교향곡> (한길사, 2018), <하이네. 슈만. 시인의 사랑>(풍월당, 2019), <슈베르트 세 개의 연가곡>(한길사, 2019), <베토벤 현악 사중주>(풍월당, 2020), <리트의 마음, 그리움>(풍월당, 2021, 구독자 한정 출판), <어른이 먼저 읽는 어린이 클래식>(풍월당, 2022), <괴테와 음악>(풍월당, 2024, 구독자 한정 출판)
역서로 율리우스 베르거의 <이슬의 소리를 들어라>(풍월당, 2021) 등이 있음.
중앙일보에 칼럼 ‘읽는 클래식 듣는 문학’ 연재중(2025~)
[대한민국예술신문 최영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