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너
배너

테너 심송학, 슈만 <Dichterliebe>로 노래한 독일가곡의 정신

기교를 덜어낸 자리에 피어난 ‘연륜의 미학’
노래를 넘어선 사유, 시(詩)의 언어를 세밀하게 읽어내다
“음악에 감사하노라”, 평생의 헌신이 남긴 마지막 고백

5월 1일 금요일, 수성아트피아 소극장에는 청년의 열정보다 더 깊은 ‘연륜의 미학’이 머물렀다.

평생 성악과 교육에 헌신해 온 테너 심송학(경북대학교 명예교수)은 슈만의 연가곡집 <Dichterliebe> Op.48 (시인의 사랑) 전곡과 <Myrthen> Op.25 (미르테의 꽃) 중 4곡, 슈베르트 가곡 4곡을 1시간 반에 걸쳐 암보로 노래했다. 78세라는 나이가 무색한 무대였다.

 

 

이번 독창회는 기교를 과시하거나 성취를 드러내는 공연이 아니었다.

오히려 한 예술가가 평생 지켜온 음악과의 약속을 조용히 돌아보는 시간에 가까웠다.

 

 

무대에는 과장이 없었다.

소리를 밀어 올리지도 않았고 감정을 앞세우지도 않았다. 대신 그는 독일가곡 특유의 문학성과 내면의 흐름을 천천히 따라갔다. 오래 음악 안에서 살아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호흡이었다.

 

그의 <Dichterliebe> Op.48 (시인의 사랑)은 하이네의 시를 단순히 ‘노래’하기보다 오래 응시하게 만들었다. 심송학의 목소리는 독일가곡의 언어를 음성보다 사유에 가깝게 전달했다. 세월 속에서 거창함을 덜어내고 본질만 남은 듯한 음색은 극적인 성량보다 언어의 뉘앙스와 정신적 긴장을 섬세하게 드러내는 데 집중되어 있었다.

 

그의 프레이징에는 과장된 감정보다 오랜 사유 끝에 남는 절제가 있었고, 문장마다 시의 의미가 조용히 살아났다. 특히 첫 곡 「아름다운 오월에」에서는 봄의 환희와 함께 설렘과 불안이 교차했다. 아지랑이가 아른거리는 피아노 반주 위로 그는 사랑을 고백하기 전의 떨리는 감정을 노래하는 하이네 시를 펼쳐놓았다.

 

 

아름다운 오월에

온갖 꽃봉오리 움터 오를 때

내 마음 속에서

사랑이 솟아난 것이라네

 

아름다운 오월에

온갖 새들 노래할 때

나는 그녀에게 고백했네

내 그리움과 갈망을

 

심송학의 <시인의 사랑>은 고음의 긴장이나 극적 효과보다 단어 하나를 끝까지 바라보는 해석에 가까웠다. 그는 시를 노래하며 오랜 시간 마음속에 간직한 문장을 다시 읽어 내려가는 것처럼 보였다. 노래는 설명보다 여백으로 남았다.

 

그의 독일가곡 해석은 독일 현지에서도 일찍이 주목받았다.

 

“독일가곡의 내면적이고 정신적인 음악 표현에 성공하였다. 특별히 그의 음색과 표정, 무대 매너는 전형적인 예술가곡 연주자이다.”

— 1981. 5. 21. Ludwigshafener 신문

 

“유럽 사람이 아닌데도 독일가곡의 지적이고 정신적인 음악세계를 감동적으로 표현하였다. 마치 Karl Erb, Dieskau, Prey 등의 대변자 같다.”

— 1982. 1. 22. Rund um Mannheim 신문

 

 

2부에서는 슈만 <Myrthen> Op.25 (미르테의 꽃) 中 「헌정」, 「호두나무」, 「연꽃」, 「꽃과 같은 그대」와 슈베르트의 「세레나데」, 「저녁노을에」, 「디오스쿠로이에게 바치는 뱃사공의 노래」, 「방랑자의 밤노래」가 이어졌다.

 

특히 「디오스쿠로이에게 바치는 뱃사공의 노래」에서는 삶의 마지막 항해를 바라보는 노년의 시선이 깊게 배어났다. 망망한 바다 위에서 뱃사공은 멀리 떠오른 쌍둥이별을 바라보며 방향을 확인한다. 그 별은 단순한 길잡이가 아니라 결국 인간이 돌아가야 할 마지막 고향을 상징하는 것인 듯. 심송학 테너는 이 곡에서 인간의 마지막인 죽음을 두려움이 아니라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독일 낭만주의 특유의 철학적 사유를 절제된 음색으로 노래했다.

 

이날 가장 오래 남은 순간은 슈만의 「Widmung」(헌정)이었다.

 

‘당신은 나의 영혼, 나의 심장.

나의 기쁨, 나의 고통,

당신은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 줍니다’라는 가사를...

 

그는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채 가사가 품고 있는 진솔한 의미를 전했다. 나지막하게 울려 퍼진 그의 목소리는 사랑이 한 인간을 어떻게 성장시키고 깊어지게 하는지를 보여주었다.

그래서 더 오래 남았다.

 

앙코르로 이어진 슈베르트의 「An die Musik」(음악에)는 이날 공연 전체를 관통하는 마지막 고백처럼 들렸다.

 

‘오 아름다운 예술이여, 그대에게 감사하노라.’

 

짧은 가사였지만 그 안에는 평생 음악 곁을 지켜온 한 예술가의 시간이 담겨 있었다. 음악의 힘과 예술의 가치에 대한 깊은 감사였다. 이는 관객들에게 ‘어떻게 아름답게 나이 들어갈 것인가’에 대한 깊은 울림을 남겼다.

 

반주자 서주희와의 호흡 또한 인상적이었다. 서로를 드러내기보다 음악 안에 함께 머무는 연주였다. 공연이 끝난 뒤 심송학은 “오늘의 독창회가 성공적이었다면 그것은 반주자의 덕”이라며 공을 반주자에게로 돌렸다. 그 짧은 장면은 이날 무대가 지닌 품격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이번 독창회는 무언가를 증명하려는 불필요한 힘이나 과시가 없었다.

다만 한 예술가가 평생 곁에 두고 살아온 음악을 담담히 바라보며 조용히 그리고 겸손하게 감사하는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슈만의 사랑과 슈베르트의 감사가 울려퍼진 5월의 밤은 그렇게 한 인간의 삶과 예술을 성찰하게 하는 순간으로 깊어졌다. 심송학 테너가 선물한 예술의 온기를 고스란히 느끼며...

 

 

좋은 예술은 오래 설명되지 않는다.

다만 마음속에 천천히, 그리고 오래 남는다.

 

[대한민국예술신문 최영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