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며]
세계 예술의 심장이자 치열한 콘크리트 정글인 뉴욕, 그중에서도 소호(Soho)의 차가운 거리를 걷는 한 동양인 여성이 있다. 무거운 대본 가방을 메고 끊임없는 오디션과 거절의 파도를 온몸으로 맞이하면서도, 그의 눈빛만큼은 정글의 그 어떤 불빛보다 매섭고 단단하다. 미국 페이스 대학교 연기과에 유일한 한국인으로 입학해 화제를 모으고, 졸업과 동시에 오프브로드웨이 무대 주역을 꿰찬 신인 배우 김채연의 이야기다.
그의 이력은 흥미로운 변주곡과 같다.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악보라는 엄격한 규칙 안에서 클래식 피아노를 전공하던 소녀는, 고등학교 시절 우연히 마주한 뮤지컬 무대에 매료되어 인생의 트랙을 완전히 바꿨다. 건반이라는 매개체를 내려놓고 ‘나 자신’을 세상에 단 하나뿐인 악기로 삼아 독백을 읊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누군가 자신을 선택해 주기만을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이방인 배우에 머무르지 않았다. 아시안 아티스트들을 향한 현지의 장벽을 마주했을 때, 그는 낙담하는 대신 직접 마이크를 쥐고 무대를 까는 ‘기획자’가 되기를 자처했다. 뉴욕과 LA를 오가며 무대와 스크린, 그리고 기획 영역까지 자신의 영토를 당차게 확장해 나가고 있는 멀티 플레이어. 기적을 기다리기보다 스스로 문을 만들어 걸어 들어가는 배우 김채연의 깊고 뜨거운 예술 세계를 들여다보았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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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 겸 아티스트 김채연 ○ 인적 사항 (Personal Profile) 이름: 김채연 (Chae Yeon Kim) 활동 기반: 미국 뉴욕(NY) 및 로스앤젤레스(LA) 소속 크루: SyncStage Productions 공동 기획 및 AAPI 예술인 네트워크 크루
○ 학력 (Education) 미국 페이스 대학교 (Pace University) 연기과 졸업 당시 연극영화과 내 유일한 한국인 합격자로 입학
○ 특기 및 배경 (Special Skills & Background) 클래식 피아노 (10년 이상 전공): 음악적 감각과 테크닉을 바탕으로 음악 연극 및 뮤지컬 배역 소화에 강점 칼럼 및 에세이 집필: 현지 언론(뉴스코리아)에 '여배우 김채연의 뉴욕 이야기' 정기 연재 중
○ 주요 연기 경력 (Acting Credits) 1. 무대 (Theater & Musical) 오프브로드웨이 뮤지컬 《블루블라인드 (Blue Blind)》 – 주역 '시아' 역 뮤지컬 《미스 사이공 (Miss Saigon)》 – '이베트 (Yvette)' 역 (선코스트 브로드웨이 극장 프로덕션 내 유일한 한인 배우) 디바이스 뮤지컬 《Nine Shadows in Bloom》 – 피아니스트 '루' 역 오프브로드웨이 연극 《Five Times in One Night》 – '이브 (Eve)' 역 뉴욕 54 Below 카바레 프로덕션 – 《What’s Been Said Before》, 《The Golden Project》 등 퍼포머 참여
2. 스크린 (Film) 단편 영화 《브라탑 (Bra Top)》 – 주연 (베를린 인디 영화제, 브뤼셀 세계 영화제 등 수상 및 공식 상영) 독립 영화 《더 브레드 앤 와인 (The Bread and Wine)》 – 주연 독립 영화 《더 클레멘타인 (The Clementine)》 – 주연
○ 기획 및 제작 경력 (Creative Production) 《AAPI Playlist Volume 1》 카바레 시리즈 공동 기획 및 총괄 아시아계 창작자와 아티스트(뮤지컬 '하데스타운'의 이해찬, '오징어 게임' OST의 신주원 등)를 조명하는 공연 기획 및 매진 가까운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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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 배우의 시작과 도전]
Q1. 한국에서 10년 넘게 클래식 피아노를 전공하시다가 고등학생 때 뮤지컬을 만나 연기로 진로를 바꾸셨습니다. 당시 자신의 인생을 바꾼 결정적인 순간이나 작품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A1. "어릴 때의 제 삶은 온통 건반 위에만 있었습니다. 매일 대여섯 시간씩 피아노 앞에 앉아 악보에 적힌 음표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하게 재현해 내는 것이 제 임무이자 삶의 전부였죠. 아주 엄격하고 절제된 규율 속에서 클래식 음악을 해왔는데, 고등학생 시절 우연히 보게 된 뮤지컬 무대가 제 정서적 세계를 송두리째 뒤흔들었습니다.
정확히 기억나요. 무대 위 배우들이 완벽한 규칙을 넘어서서, 자신의 온몸과 목소리로 정제되지 않은 가슴 벅찬 감정들을 객석에 날것 그대로 쏟아내고 있더라고요. 관객들이 극장의 공기 속에서 배우와 함께 울고 웃으며 실시간으로 거대한 에너지를 주고받는 모습을 보았을 때, 제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아, 악기라는 매개체를 거치지 않고, 나라는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를 하나의 악기로 삼아 사람들에게 직접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이 차올랐어요. 그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느꼈던 해방감과 설렘이 결국 제 인생의 트랙을 완전히 바꾸는 결정적인 터닝 포인트가 되었습니다.“
Q2. 크리스토퍼 브리니, 쿠퍼 코흐 등 핫한 배우들을 배출한 미국 페이스 대학교(Pace University) 연기과에 당시 '유일한 한국인 합격자'로 입학하셨습니다. 낯선 미국 땅에서 치열한 입시와 대학 생활을 버텨낼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나요?
A2. "합격 통지서를 받았을 때의 기쁨은 아주 잠시였습니다. 입학하고 강의실 문을 연 첫날부터 언어와 문화라는 거대한 콘크리트 벽이 제 앞에 버티고 있었으니까요. 주변을 둘러보면 저를 제외하고는 모두 현지에서 나고 자란, 셰익스피어의 독백을 모국어로 읊는 원어민 친구들이었습니다. 수업 시간에 텍스트를 빠르게 해석하고 뉘앙스를 포착하는 것조차 제게는 매일이 생존 경쟁이었죠.
저를 버티게 한 원동력은 오직 '지독한 오기'와 '본질에 대한 집중'이었습니다. '언어는 비록 그들보다 서툴지 몰라도, 인간이 느끼는 결핍, 상처, 사랑이라는 감정의 본질은 전 세계 어디나 다르지 않다'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남들이 대본을 한 번 읽을 때 저는 다섯 번, 열 번을 읽으며 단어 이면에 숨은 서브텍스트를 분석했어요. 매일 연습실 불을 가장 늦게 끄고 나오면서 제 안의 단단한 중심을 만들어갔습니다. '내가 가진 독특한 배경과 정서가 이곳에서는 오히려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나만의 무기가 될 것'이라는 믿음이 저를 지탱해 준 가장 큰 힘이었습니다.“

Q3. 오프브로드웨이 뮤지컬 '블루블라인드(Blue Blind)'의 '시아' 역으로 곧바로 공연하셨습니다. 아버지를 위해 희생하는 인물의 깊은 감정선을 데뷔작부터 소화하셔야 했는데, 첫 무대에 올랐을 때의 공기와 감각이 여전히 기억나시는지 궁금합니다.
A3. "그날의 공기는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오프브로드웨이라는 꿈의 무대, 그것도 졸업하자마자 주역인 '시아'로 무대 뒤 백스테이지에서 대기하고 있을 때, 심장 소리가 온 극장에 울리는 것처럼 쿵쾅거렸어요. 손끝이 차가워질 정도로 긴장감이 극도에 달했죠.
하지만 큐 사인이 떨어지고 무대 위 조명이 켜지는 순간, 거짓말처럼 주변의 소음과 긴장감이 한순간에 진공상태처럼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오직 극 속의 '시아'가 처한 차가운 현실과 공기만 남더라고요. 아버지를 향한 애틋함과 희생이라는 무거운 감정을 대사로 뱉어냈을 때, 어두운 객석에서 관객들이 숨을 죽이고 제 호흡을 함께 따라와 주는 것이 피부로 느껴졌습니다. 공연이 끝나고 커튼콜에서 박수가 터져 나오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으면서 배우란 무대 위에서 거짓이 아닌 '진실'을 말해야 하는 사람이며, 관객의 시간을 책임지는 막중한 자리라는 것을 온몸으로 배운 첫 경험이었습니다.“

[Part 2. 무대와 스크린 속 배역]
Q4. 선코스트 브로드웨이 극장의 '미스 사이공' 프로덕션에서 유일한 한국인 배우로 '이베트' 역을 맡으셨습니다. 현지 브로드웨이 베테랑 배우들과 호흡을 맞추며 문화적, 혹은 예술적으로 가장 크게 배운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A4. "그곳의 배우들은 수십, 수백 번 반복되는 롱런 공연 속에서도 매 순간을 마치 '오늘 처음 대본을 받은 사람'처럼 생생하게 살아 숨 쉬며 연기하더라고요.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매일 무대 위에서 완벽한 신선함을 유지하는 철저한 자기관리와 프로페셔널리즘을 보며 정말 큰 예술적 충격을 받았습니다.
또 하나 배운 것은 제 스스로를 대하는 '당당함'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나 혼자, 유일한 한국인이라는 생각에 은연중에 위축되기도 했어요. 하지만 현지 동료들은 저를 인종으로 보지 않고, '자신들이 갖지 못한 섬세하고 독창적인 에너지를 가진 매력적인 동료 배우'로 온전히 존중해 주었습니다. 무대라는 공간은 결국 국적, 피부색, 언어의 장벽을 모두 깨부수고, 오직 배우가 뿜어내는 실력과 진정성 있는 에너지만으로 소통하는 가장 평등한 세계라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Q5. 연극 'Nine Shadows in Bloom'에서는 완벽을 추구하는 피아니스트 '루' 역을 맡으셨습니다. 오랫동안 피아노를 전공했던 개인의 경험이 이 배역을 밀도 있게 해석하는 데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A5. "대본을 읽자마자 '이건 그냥 내 이야기잖아' 하고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제가 지나온 청소년기 시절의 치열했던 고독과 방황이 그대로 녹아있는 인물이었거든요. 단 하나의 음도 틀려서는 안 된다는 압박감, 무대 뒤에서 느끼는 형용할 수 없는 외로움, 완벽해지지 못했을 때 스스로를 갉아먹는 좌절감 등 '루'가 느끼는 심리적 결핍을 저는 이론이 아니라 이미 온몸의 세포로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덕분에 무대 위에서 단순히 피아노를 잘 치는 '시늉'을 하거나 연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루'가 건반을 어루만지는 손길의 미세한 떨림, 악보를 쏘아보는 날카로운 시선 하나하나에 진짜 제 삶의 결핍과 열망을 밀도 있게 녹여낼 수 있었어요. 과거에 피아노 앞에서 울고 웃었던 시간들이 결국 배우라는 새로운 길 위에서 가장 강력하고 아름다운 무기로 돌아온, 아주 마법 같고 감사한 경험이었습니다.“

Q6. 단편 영화 '브라탑(Bra Top)'으로 베를린 인디 영화제 등 세계적인 주목을 받으셨습니다. 철부지 Z세대 딸 역할을 현실감 있게 소화하셨는데, 무대 연기와 카메라 앞에서의 영화 연기 중 채연 님에게 각각 어떤 매력으로 다가오는지 궁금합니다.
A6. "두 매체가 주는 매력은 정말 극과 극이라 늘 짜릿해요. 먼저 무대 연기는 멈춤 없이 달려가는 '마라톤' 같습니다. 관객과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호흡하며 극의 시작부터 끝까지 배우가 스스로 에너지를 조절하고 책임을 지며 서사를 완성해 나가는 거대한 카타르시스가 있죠.
반면 영화 연기는 아주 미세한 눈빛의 떨림, 입술의 달싹임, 숨소리의 변화까지 카메라 렌즈가 현미경처럼 포착해 내는 '현미경 예술' 같아요. 그래서 영화에서는 과장하지 않고 오히려 에너지를 '더 덜어내는 날것의 연기'가 필요합니다. *'브라탑'*을 촬영할 때는 무대 위의 정형화된 호흡을 완전히 지워버리고, 실제 제 일상 속 철부지 같은 모습과 자연스러운 말투를 끄집어내어 매 순간 카메라와 밀당하듯 연기했어요. 프레임 안에서 아주 섬세한 진실을 표현해 내는 매력에 깊이 매료되었던 작업이었습니다.“
Q7. '더 브레드 앤 와인', '더 클레멘타인' 등 독립 영화계에서도 주연으로 꾸준히 활약하고 계십니다. 스크린 속에서 배역을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하게 보시는 기준이나 끌리는 캐릭터의 특징이 있나요?
A7. "저는 완벽하고 매끄러운 인물보다는, 어딘가 인간적인 결함이 있거나 모순적인 내면을 가진 캐릭터에 마음이 훨씬 더 많이 가요. 겉으로는 세상 차갑고 당당해 보이지만 속은 아주 미세한 충격에도 바스러질 것처럼 약한 인물, 혹은 마냥 철없고 밝아 보이지만 내면에 깊은 출구 없는 상처를 숨겨둔 인물들이요.
그런 인물들의 대본을 읽다 보면 마음이 먼저 쿵 내려앉으면서, '이 세상에서 이 캐릭터의 아픔을 진심으로 이해해 줄 사람은 나밖에 없겠다'는 묘한 책임감이 생겨요. '내가 이 사람의 영혼을 입고 세상에 이들의 숨겨진 진짜 이야기를 대변해 주어야겠다'는 울림이 올 때, 저는 주저 없이 그 작품을 선택하게 됩니다. 관객들이 제 연기를 보고 '저 캐릭터가 꼭 나 같다'고 느낄 수 있는, 입체적인 인물을 만들어내고 싶습니다.“

[Part 3. 기획자로서의 시선, AAPI]
Q8. 배우에 머무르지 않고 SyncStage Productions와 함께 'AAPI Playlist Volume 1' 카바레 시리즈를 공동 기획하셨습니다. 아시아계 창작자와 아티스트들을 조명하는 무대를 '직접'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A8. "미국 현지에서 오디션을 치열하게 보러 다니면서 한 가지 뼈아픈 현실을 마주했습니다. 브로드웨이나 할리우드에서 아시안 배우들에게 주어지는 배역의 기회가 여전히 전형적인 이미지에 갇혀있거나 양적으로도 너무나 제한적이라는 사실이었죠. 주변을 보면 엄청난 재능과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가진 아시안 동료들이 단지 기회가 없어서 재능을 썩히고 있었어요.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왜 우리는 대형 프로덕션이 우리를 선택해 줄 때까지, 캐스팅 디렉터가 전화를 줄 때까지 마냥 수동적으로 기다려야만 할까? 우리의 이야기가 이렇게나 다채롭고 풍성한데!'라는 건강한 반항심이 생겼습니다. 기적이 일어나길 앉아서 기다리기보다, 우리가 직접 무대를 깔고 마이크를 쥐고 우리의 목소리를 세상에 들려주자는 결심을 굳히게 되었고, 뜻이 맞는 동료들과 맨땅에 헤딩하듯 기획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Q9. 'AAPI Playlist' 공연 당시 '오징어 게임' OST의 신주원 님, 브로드웨이 '하데스타운'의 이해찬 님 등 쟁쟁한 한인 아티스트들이 뭉쳐 전석 매진에 가까운 성황을 이뤘습니다. 기획자로서 막이 내린 후 어떤 감정이 드셨는지, 향후 Volume 2에는 어떤 이야기를 담고 싶으신지 궁금합니다.
A9. "공연 당일, 극장 로비를 가득 채운 관객들과 객석에 불이 꺼지고 터져 나온 환호성을 들었을 때 가슴이 벅차올라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했습니다. 우리가 가졌던 갈증과 비전이 틀리지 않았음을 세상에 당당히 증명해 낸 순간이었으니까요. 바쁜 일정 중에도 취지에 깊이 공감하며 기꺼이 무대를 빛내준 훌륭한 아티스트 동료들이 없었다면 결코 이뤄내지 못했을 기적입니다.
다가오는 Volume 2에서는 단순히 '우리는 아시안입니다'라는 정체성을 선언하는 것을 넘어, 한 단계 더 깊이 들어가고 싶어요. 화려한 도시 뉴욕이라는 거대한 정글 속에서 이방인이자 청년 예술가로 살아가며 느끼는 보편적인 외로움, 좌절, 그리고 그것을 딛고 일어서는 찬란한 '성장 서사'를 오리지널 창작곡들과 함께 한 편의 뮤지컬처럼 입체적으로 엮어내어 관객들에게 더 큰 위로를 전하고 싶습니다.“

Q10. 미국 현지 예술계에서 '아시안 여성 아티스트'로 살아간다는 것은 기회의 제약이 따르기도 합니다. 채연 님은 기적을 기다리기보다 "스스로 기회를 창출하는 주도적인 아티스트"의 면모를 보여주고 계시는데, 현지에서 연대하는 한인/아시안 크루들은 채연 님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A10. "저에게 그들은 치열하고 차가운 뉴욕이라는 콘크리트 정글 속에서 유 유일하게 숨을 쉴 수 있게 해주는 '집(Home)'이자 가장 안전한 '안식처'입니다. 타지에서 아시안 아티스트로 살아가며 느끼는 말 못 할 외로움과 서러움, 거절의 상처를 구태여 설명하지 않아도 눈빛만 보면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하는 사람들이니까요.
하지만 저희 크루는 서로를 가여워하며 위로하는 데서 멈추지 않습니다. 오히려 모이면 밤새도록 예술적 아이디어를 쏟아내고, 서로의 대본 리딩을 도와주고, 새로운 프로젝트를 제안하는 등 서로의 영감을 깨워주는 가장 강력한 아군이자 냉철한 파트너가 되어주죠. 이 건강한 연대가 있기에 저는 거절의 파도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고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단단한 용기를 얻습니다.“
[Part 4. 뉴욕의 일상과 향후 비전]
Q11. 언론을 통해 '여배우 김채연의 뉴욕 이야기'라는 에세이를 정기적으로 연재하고 계십니다. 소호 거리에서의 오디션, 뉴욕 패션위크(NYFW) 참석 등 화려함과 긴장감이 공존하는 뉴욕이라는 도시는 배우 김채연의 예술 세계에 어떤 영감을 주나요?
A11. "뉴욕은 단 한 순간도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 그 자체로 거대한 편의 드라마 같은 도시입니다. 지저분한 지하철역 구석에서 신들린 듯 재즈를 연주하는 악사부터, 화려함의 극치를 달리는 패션위크의 패션쇼장까지 극과 극의 에너지가 너무나 태연하게 공존하는 곳이죠.
소호 거리를 무거운 대본 가방을 메고 걸어 다니며 마주치는 수많은 사람들의 걸음걸이, 표정, 눈빛 하나하나가 저에게는 전부 살아있는 연기 교과서이자 영감의 원천이 됩니다. 수없이 오디션을 보러 다니며 차가운 거절에 낙담하다가도, 길거리에서 꿋꿋하게 자신만의 예술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이내 가슴속에서 다시 뜨거운 불꽃이 튀어 오르죠. 저를 끊임없이 채찍질하고, 안주하지 않도록 매 순간 깨어있게 만드는 고맙고도 지독한 멘토 같은 도시입니다.“

Q12. 최근에는 광고 촬영 등으로 LA까지 활동 영역을 넓히셨습니다. 뉴욕 극장가 중심의 예술적 분위기와 LA의 엔터테인먼트적인 환경 사이에서 느낀 신선한 차이점이 있었나요?
A12. "미국의 동부와 서부를 대표하는 두 도시인만큼 예술을 대하는 공기부터가 완전히 달라서 아주 흥미로웠습니다. 뉴욕이 오랜 역사와 전통, 깊은 땀 냄새와 묵직한 텍스트가 배어있는 고전적인 극장 예술의 메카라면, LA는 끝없는 가능성과 트렌디함, 대중적인 스타성이 넘쳐나는 거대한 미디어 시티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뉴욕에서는 골방에 틀어박혀 대본 속 인물의 심리를 현미경처럼 파고드는 내면적인 작업에 집중했다면, LA에서는 카메라 렌즈 앞에서 순발력 있게 저만의 매력과 스타성을 거침없이 꺼내 보여주는 외향적인 법을 배웠어요. 이 극과 극의 두 환경을 모두 경험하면서 배우로서의 표현 스펙트럼이 한층 더 넓어졌고, 어떤 환경에서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단단한 적응력을 기를 수 있었습니다.“

Q13. 타지에서 오디션과 기획을 병행하다 보면 지치거나 슬럼프가 찾아오는 순간도 있을 것 같습니다. 멘탈을 관리하거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채연 님만의 특별한 루틴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A13. "머릿속이 복잡한 생각들로 과부하가 걸리거나 연속된 거절로 자존감이 떨어질 때는, 생각의 스위치를 완전히 꺼버리기 위해 아주 아날로그적이고 몸을 쓰는 활동을 합니다. 체육관에 가서 땀을 비 오듯 흘리며 운동을 하거나, 방음 스튜디오에 들어가서 아무 생각 없이 드럼 스틱을 쥐고 격렬하게 드럼을 연주하곤 해요. 본능적인 리듬과 타격감에 몸을 맡겨 소리를 지르다 보면, 머릿속을 괴롭히던 부정적인 잡념들이 신기하게 씻겨 내려갑니다.
그리고 마음이 조금 차분해지면 복잡한 거리를 벗어나 조용한 단골 카페에 앉아 따뜻하고 향긋한 커피 한 잔을 마십니다. 백지에 그동안의 마음을 정리하며 에세이를 써 내려가다 보면, 제가 왜 이 먼 타국에서 배우의 길을 걷기 시작했는지 그 순수했던 초심과 다시 만나게 돼요. 격렬한 드럼과 고요한 글쓰기, 이 두 가지가 저를 지켜주는 최고의 비밀 기지입니다.“
Q14. 앞으로 꼭 한 번 도전해보고 싶은 꿈의 무대(혹은 배역)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브로드웨이 뮤지컬이나 할리우드 작품 중 탐나는 역할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A14. "배우로서 최종적인 꿈은 브로드웨이 무대에서 뮤지컬 '해밀턴(Hamilton)'이나 '하데스타운(Hadestown)'처럼 인종과 정체성의 벽을 완전히 허물고, 오직 인간이 가진 순수한 에너지와 실력만으로 전체 극을 압도하며 이끌어가는 주역으로 우뚝 서는 것입니다.
또한 동시에, 지금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한국 스토리텔링의 힘, 즉 K-콘텐츠를 글로벌 시장에 널리 알리는 단단한 가교 역할도 해내고 싶습니다. 넷플릭스나 애플티비 같은 글로벌 OTT 플랫폼의 웰메이드 작품에서 아시안 여성 캐릭터가 가진 전형성을 깨부수는, 아주 입체적이고 다면적인 서사를 가진 인물을 맡아 전 세계 관객들에게 배우 김채연이라는 이름을 깊이 각인시키고 싶습니다.“

Q15. 미국과 한국, 혹은 세계 무대에서 활약할 미래를 꿈꾸며 지금도 땀 흘리고 있는 수많은 청년 예술가와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따뜻한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A15. "스스로를 타지의 외로운 '이방인'이나 '약자'라는 프레임 안에 가두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가진 남들과 다른 문화적 배경, 다른 정서, 다른 언어적 결은 결코 약점이 아니라 세상 그 누구도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나만의 가장 유니크한 무기이자 독창성(Originality)입니다.
세상이 만들어 놓은 문이 닫혀 있다면 열릴 때까지 두드리고, 아무리 두드려도 열리지 않는다면 낙담하는 대신 우리만의 문을 직접 새로 만들면 됩니다. 기회는 기다리는 자의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자의 것이니까요. 지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예술을 갈고닦다 보면 반드시 나만을 위한 위대한 무대가 열릴 거라 확신합니다. 저 역시 뉴욕이라는 치열한 정글에서 멈추지 않고 계속 증명해 내며 후배들에게 좋은 이정표이자 든든한 선례가 될 수 있도록 온 힘을 다해 뛰겠습니다. 우리 절대 지치지 말고, 서로의 아군이 되어 무대 위에서 만나요. 응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에필로그]
두 시간이 훌쩍 넘는 인터뷰 동안 그가 가장 많이 언급한 단어는 ‘본질’과 ‘독창성’이었다. 치열한 뉴욕의 브로드웨이 베테랑들 사이에서도, 수많은 카메라가 돌아가는 LA의 촬영장에서도 그를 주눅 들지 않게 만든 것은 결국 나만의 이야기를 진실하게 전하겠다는 배우로서의 뚝심이었다.
생각이 복잡해질 때면 방음 스튜디오에 들어가 거칠게 드럼을 치며 잡념을 씻어내고, 조용한 카페에 앉아 커피 향을 맡으며 에세이를 쓴다는 김채연. 격렬한 드럼 비트와 고요한 글쓰기 사이의 스펙트럼만큼이나, 그의 내면은 이미 어떤 배역이든 유연하게 담아낼 수 있는 단단한 항아리가 되어 있었다.
"스스로 이방인이라는 프레임에 갇히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우리의 다름은 약점이 아니라 독창성(Originality)이니까요." 후배 예술가들을 향해 뱉은 그의 마지막 한마디는, 사실 매일 아침 뉴욕의 거울을 보며 스스로에게 다짐해 온 주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문이 닫혀 있다면 열릴 때까지 두드리고, 그래도 열리지 않는다면 우리만의 문을 새로 만들겠다는 이 당찬 여배우의 행보는 이제 겨우 서막을 올렸을 뿐이다. 멀지 않은 미래, 브로드웨이와 할리우드 한복판에서 가장 유니크한 에너지를 뿜어내며 환하게 웃고 있을 그의 찬란한 두 번째 막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대해 본다. [편집자 주]
[대한민국예술신문 최영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