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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언어와 마음이 담긴 노래

2026 대한민국예술신문 대구지사 전국동요콩쿨을 개최하며 동요의 의미를 되새기다 - 우윤희 교수와 함께

동요를 지킨다는 것은 아이들의 마음을 지키는 일입니다.

음악은 우리의 삶을 닮아 있다. 어떤 음악을 듣고 자라느냐에 따라 한 사람의 감성은 깊어지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달라진다. 특히 어린 시절 처음 만나는 노래인 동요는 단순한 음악교육을 넘어 인성과 정서를 빚어내는 삶의 첫 예술이다.

대한민국예술신문 대구지사장 최영민은 오랫동안 클래식 음악을 통해 삶과 사람을 이야기해왔다. 『마음이 머무는 클래식』을 집필하며 음악은 기술보다 마음을 먼저 움직여야 한다는 신념을 전해왔고, 많은 공연과 예술 현장을 글로 전달하며 음악의 본질은 사람을 따뜻하게 만드는 데 있다는 믿음을 더욱 굳혀왔다. 그 철학은 어린이 음악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오늘날 아이들은 넘쳐나는 음악 속에서 살아가지만, 정작 마음을 맑게 하고 상상력을 키우며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품은 동요를 만날 기회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동요가 사라진다는 것은 단순히 하나의 장르가 잊히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순수한 감성과 공동체의 정서가 함께 희미해지는 일이다.

 

2026 대한민국예술신문대구지사 전국동요콩쿨은 이렇게 출발한다. 이번 대회는 아이들이 동요를 통해 자연과 생명, 가족과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을 배우고, 창작동요의 새로운 가능성을 응원하며, 우리 동요 문화의 소중한 가치를 다음 세대에 이어가기 위한 문화예술 프로젝트이다.

어린 시절 마음에 심어진 한 곡의 동요는 평생의 인성을 꽃피운다. 대한민국예술신문대구지사는 이번 전국동요콩쿨을 통해 아이들의 맑은 노랫소리가 우리 사회의 미래를 더욱 따뜻하게 밝히는 울림이 되기를 기대한다.

 

이러한 의미를 더해 대구가톨릭대학교 문헌정보학과 우윤희 교수와 함께 우리 동요가 걸어온 발자취를 따라 그 역사와 가치를 다시 돌아보고자 한다.


동요는 아이 ‘童’과 노래 ‘謠’가 만난 말이다. 아이와 노래라니,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라는 뜻인가, 아이들을 위한 노래라는 뜻인가.

본래 동요는 사람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난 노래였다. 한성순보나 공립신보같은 일제강점 이전 신문에 나오는 동요는 속요이자 참요 성격이 강했다. 생활의 어려움이나 어지러운 세상에 대한 노랫말이 많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이나 어른이나 공동체 안에서 구분 없이 불렀을 것이다. 이런 노래는 아이들이 불렀을지는 몰라도 아이들을 위한 노래는 아니었다.

같은 시기에 學部에서는 속담(俚諺)이나 동요를 수집했다. 아동 교육에 동요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전국 공립학교에서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를 모아 아이들을 위한 노래로 만들고자 했다. 이는 아이들을 근대 교육 대상으로 인식하면서 동요가 아이들을 위한 노래가 되는 첫 과정이었다.

 

 

민족운동으로서 창작동요의 시작

하지만 스스로 근대화를 이루고자 했던 계획은 무산되고 일제 강점 아래 아이들을 위한 노래 동요는 소파 방정환과 윤극영 등의 노력으로 다시 일어났다. 민족운동의 하나로 어린이를 독립된 교육 대상으로 보았던 이들은 아이들을 위한 이야기와 노래를 창작하였다. 어린이 문화 운동의 하나로 아이들 노래를 꼽은 것이다. 저절로 음률이 일어나는 시에 곡을 붙여 이땅의 자연과 사람들의 삶을 노래하고자 했다.

대구에서 활동한 윤복진이 쓴 시도 박태준을 비롯한 여러 작곡자들의 노력을 거쳐 노래가 되었다. 어린이 문예지 <어린이>를 통해 등단한 이원수 시에 홍난파가 곡을 붙인 ‘고향의 봄’이나 ‘오빠생각’(최순애 시, 홍난파 곡), 윤극영의 ‘반달’ 등과 같이 서정적인 노래도 있었고, 홍난파가 윤석중 시에 곡을 쓴 ‘퐁당퐁당’이나 윤복진 시에 쓴 ‘하모니카’와 같은 경쾌한 노래도 있었다.

일본 유학 중 어린이를 위한 동요와 동화를 담은 <아카이도리>와 같은 문예 잡지를 접한 이들의 노력으로 식민지 조선 어린이도 어린이 문화와 예술을 조금이나마 즐길 수 있게 된 것이었다. 그 가운데 동요는 문학과 음악 예술이 만난 장르로 자리 잡고 있었다. 노랫말의 문학성과 음악의 예술성이 접목한 동요는 라디오라는 매체가 탄생하면서 급속히 퍼질 수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최초의 창작동요는 무엇일까. 현재까지는 1924년 윤극영의 ‘반달’이 최초라고 알려져 있다. 또 1931년 7월 26일 자 동아일보에는 방정환의 형제별이 조선 최초 동요라고 적고 있기도 하다. 명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소년운동으로서 일제 강점기 어린이들을 위해 만들고 불리었던 동요는 그 시절 문학과 예술을 즐기는 통로가 되어주었다.

 

 

교육 수단이 된 동요

해방 조선의 어린이는 새 나라를 일으키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존재였다. 우리말로 쓴 노랫말에 곡을 붙인 노래들이 다시 나오기 시작했고, 자연이나 아이들 생활의 정서를 담은 시에 곡을 붙이는 것이 아니라 곡을 위해 작사를 한 동요들이 많이 나왔다.

 

 

새롭게 시작하는 나라의 어린이를 위한 다짐을 노래한 ‘새나라의 어린이’(윤석중 작사, 박태준 작곡, 1945년)는 성실하고 서로 도우며 욕심부리지 않는 어린이 상을 노래로 다지고자 하였다. 1949년 어린이날을 맞아 발표한 ‘날아라 새들아’로 시작하는 ‘어린이날 노래’(윤석중 작가, 윤극영 작곡) 등이 있다.. (사진은 1947년 안기영 작곡의 어린이날 노래)

 

 

교육 현장에서도 윤석중이 쓰고 정순철이 곡을 붙인 ‘졸업식 노래’와 같은 노래들을 부르기 시작했다. 교과서를 중심으로 1920~30년대 만들어진 동요들을 다시 부르기 시작했고, 교육 수단으로 여러 동요를 만들어 부르게 했다. 하지만 1956년 전국동요동화대회에 대한 비평글(조선일보 10.24)을 보면 어린이들이 성인들이 부르는 곡을 선택해서 부르는 일이 왕왕 있었다고 전한다. 어린이의 삶과 생각이 담긴 어린이 세계를 담고, 부르고 듣는 어린이에게 그 마음이 닿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내용이다.

문학과 예술의 접목이었던 동요는 해방 후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 보급하는 노래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나뭇잎 배’(박홍근 작사, 윤용하 작곡)나 ‘초록바다’(박경종 작사, 이계석 작곡)와 같은 노래도 있었지만, 아동문학계에서 노랫말이 되기 좋은 정형시보다 자유시를 선호하는 쪽으로 흐르면서 동요는 문학보다는 음악 예술에 더 가까워졌다.

 

동요가 아닌 동요

“어린이는 유행가가 좋아” 1962.11.17. 조선일보

“잃어가는 동심의 세계” 1979.01.13 조선일보

“동요 잊은 어린이들” 1984.10.23. 동아일보

어른들은 민족운동의 차원으로 어린이에게 좋은 글과 곡으로 동요를 만들어 들려주었고, 교육의 차원에서 여러 목적을 가진 노래들을 만들어 부르고자 했다. 그러나 빠르게 산업이 발전하면서 어린이는 더는 동요는 부르지 않아 어른들의 걱정을 샀다. 1960년대, 1970년대를 거쳐 1980년대, 1990년대를 지나도록 어린이가 동요를 부르지 않는다는 신문 기사와 칼럼이 줄이어 나온 것을 보면 세태는 더 심각해졌는데 아무런 걱정이 없는 지금의 어른으로서 부끄럽기까지 하다.

라디오와 텔레비전 보급으로 광고 노래인 CM송을 부르고, TV만화가 유행하면서 만화 주제가를 부르는 아이들이 더 많았다. 학교 운동회나 소풍에서도 아이들은 동요를 부르지 않았다. 아이들 노래가 교육과 생활에서 완전히 분리되는 시기였다. 이런 상황에 덧붙여 건전가요라는 이름으로 어린이도 따라 부를 수 있는 가사와 곡으로 만들어진 노래들이 나와 이런 분위기에 불을 붙였다.

어린이의 마음과 생활과 생각이 담긴 문학적 글에 어울리는 곡을 붙인 동요를 보급하려는 방송국의 노력이 동요 프로그램이 있었으나 지금은 크게 줄었고, 창작동요제와 같은 프로그램도 있었지만 오래가지 못하고 접어야 했다.

 

인터넷이 보급되고 포털에 어린이 페이지가 생기면서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는 ‘00송’이 연이어 나오고, 유튜브 보급으로 더 다양한 노래가 아이들 사이에 퍼지고 있다. 이제 다시 동요는 ‘어린이가 부르는 노래’인지 ‘어린이를 위한 노래’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옛날 아이들은 놀면서, 배우면서 노래를 불렀다. 자연스럽게 생활에서 노래가 흘러나왔다. 창작동요라는 이름으로 어른들이 어린이를 위해 곡을 붙여 노래를 만들어 보급하기 시작한지 100년이 넘었다. 그 시간 동안 어른들이 만든 동요는 그 시대의 ‘어린이를 보는 시선’이 담겨있었다. 나라를 빼앗긴 백성의 향수어린 노래, 아이들 삶을 보듬는 노래, 해방된 나라의 일꾼이 되자는 노래, 배움의 노래 등으로 어린이를 이해하고자 노력했고, 어린이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을 담아 전했다.

지금 이 순간 어린이가 부르는 노래에는 어떤 ‘시선’이 담겨있는지 돌아보자.

어린이의 말과 마음과 감정을 어떻게 담았는지 돌아보자.

그런 노래에 아이들이 반응하여 함께 부르도록 시간과 기회를 주자.

함께 배우고 부르는 어른이 되자.

 

< 우윤희 >

대구가톨릭대학교 문헌정보학과 교수


[대한민국예술신문 최영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