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어느 날, 수성아트피아 대극장 로비. 오페라를 사랑하는 이들의 기대는 막이 오르기 전의 침묵과 함께 잔잔히 겹쳐졌다. <마음이 머무는 클래식>저자 최영민은 <내가 사랑하는 오페라> '로비 톡톡' 특강에서 대구가톨릭대학교 성악과 이병삼 교수를 만나 오페라를 통한 모차르트 삶의 이야기를 들었다. 강연 후 그는 한 예술가가 인생을 견디며 노래를 지켜온 시간에 대해 들려주었다.
이탈리아 오페라 무대의 환호, 깊은 상실, 그리고 다시 노래하기까지. 대구가톨릭대학교 이병삼 교수는 예술가의 길을 '재능'보다 '인내'의 역사라고 말한다. 그는 오늘도 후학들에게 묻는다.
'지금 당신의 구두는 찢어져 있는가?'
운명처럼 찾아온 성악의 길
어린 시절의 이병삼 교수는 언제나 노래하는 아이였다. 음악을 듣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즐거웠고, 흘러나오는 멜로디를 따라 부르는 것이 일상이었다. 교회 성가대와 학교 합창단 활동 역시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하지만 당시의 음악은 어디까지나 삶을 아름답게 채우는 배경음악에 가까웠다. 그의 인생을 바꾼 결정적 순간은 고등학교 1학년 때 찾아왔다. 당시 음악 선생님은 그의 목소리를 유심히 들은 뒤 '성악을 해야 할 목소리'라며 전공을 강하게 권유했다. 그 한마디는 잠들어 있던 재능을 깨운 운명의 울림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신기합니다. 큰 고민도 망설임도 없었습니다. 마치 오래전부터 정해진 길을 찾아가는 느낌이었죠." 그렇게 그는 자연스럽고도 필연적으로 성악의 길에 들어섰다.
오페라의 본고장에서 울려 퍼진 한국인의 목소리
성악가로서 가장 빛나는 순간을 묻자 이 교수는 주저 없이 이탈리아 데뷔 무대를 꼽았다. 오페라의 본고장 이탈리아에서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 주역으로 무대에 올랐던 순간이다. 낯선 동양인 성악가를 향해 냉정하던 현지 관객들은 공연이 끝난 뒤 뜨거운 기립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그 순간 그는 단순히 한 명의 유학생이 아닌, 오페라 무대가 인정한 성악가로서 존재하고 있음을 실감했다. "막이 내린 뒤 객석에서 쏟아지던 박수를 잊을 수 없습니다. 오페라의 심장부에서 성악가 이병삼으로 인정받았다는 사실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습니다."
상실은 그의 목소리를 멈추게 했다.
그러나 예술가의 삶은 언제나 환호만으로 채워지지 않는다. 빛이 깊은 만큼 어둠도 짙었다. 이 교수는 유학 시절 인생에서 큰 시련을 경험했다. 이미 스물세 살의 나이에 아버지를 여읜 그는 이탈리아 유학 중 어머니마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들었다. 급히 귀국했지만 결국 마지막 순간을 함께하지 못했다. 장례를 마친 뒤 다시 이탈리아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그는 인생의 방향을 잃었다. "부모님을 모두 잃었다는 거대한 상실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무엇을 위해 이토록 처절하게 노래해야 하는지조차 알 수 없었습니다." 그 후 1년이 넘도록 제대로 소리를 내지 못했다. 무대도, 연습실도, 음악도 모두 멀어졌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깊은 상실은 훗날 그의 예술을 더욱 깊고 단단하게 만드는 밑거름이 되었다.
'스승은 기술이 아니라 삶을 가르치는 사람'
이병삼 교수의 음악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 있다. 세계적 바리톤이자 스승인 미켈레 포르첼리(Michele Porcelli) 교수다. 늦은 나이에 시작한 유학 생활은 결코 녹록하지 않았다. 언어와 문화의 장벽, 경제적 어려움은 젊은 유학생을 끊임없이 압박했다. 그때 포르첼리 교수는 단순히 발성과 테크닉을 지도하는 교수가 아니었다. 그는 학생의 형편을 이해했고, 삶의 태도와 예술가 정신을 몸소 보여주었다. "교수님은 제 텅 빈 주머니와 얼어붙은 제 마음을 보셨습니다. 음악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아니라 삶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셨죠." 그의 따뜻한 지지와 격려는 결국 조기 수석 졸업이라는 결실로 이어졌다.
'예술은 고통을 통과하며 깊어진다'
현재 대구가톨릭대학교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는 그는 학생들에게 두 가지 가치를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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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겸손'과 '인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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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른 성공과 즉각적인 결과를 추구하는 시대지만, 예술은 결코 서두른다고 완성되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다. "위대한 예술의 꽃은 깊은 고통과 척박한 환경이라는 어두운 밑거름을 먹고 자랍니다. 삶이 던지는 시련을 온몸으로 이겨내고 헤쳐나갈 때, 비로소 목소리를 뚫고 그 사람만의 진짜 '예술혼'이 뿜어져나오기 때문입니다." 이탈리아 극장가에서 백 년이 넘도록 전승되어 내려오는 격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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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찢어진 구두로 커리어는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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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장 주머니가 가볍고, 내 미래가 불투명하며, 현실의 벽이 너무 높아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제자들에게 그는 이 말을 꼭 전하고 싶다고... 화려한 무대 뒤에는 언제나 가난과 좌절, 인내의 시간이 존재한다는 의미다.
"지금의 어려움은 실패의 증거가 아니라, 진짜 예술가로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니 인내로 그 무대를 견뎌내길 바랍니다."
대구 클래식의 미래, 인재는 있지만 무대가 부족하다
대구는 오랫동안 대한민국 성악의 중심 도시 가운데 하나였다. 수많은 음악대학과 우수한 인재들이 지역에서 배출되고 있으며, 해외 유학을 마치고 돌아오는 젊은 음악가들도 꾸준히 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클래식 시장은 축소되고 있으며, 젊은 음악가들이 설 수 있는 무대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실력 있는 제자들이 돌아와도 무대가 없습니다. 결국 많은 인재들이 지역을 떠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그는 대구오페라하우스와 대구콘서트하우스, 수성아트피아 등 지역 문화 거점들이 깨어나야 한다고 강조한다. 각 지자체 아트센터들이 예술 교육기관과 손을 잡고, 젊은 클래식 음악가들이 시민들과 만날 수 있는 혁신적인 무대를 끊임없이 기획하고 열어주길 바라며...
대구는 '글로벌 클래식 메카'가 될 수 있다
영재 교육과 대학 교육, 그리고 전문 공연 시장이 하나의 생태계로 이어지는 것을 핵심으로 본다. 이를 위해서는 지방자치단체와 문화재단, 공공 공연장이 선진적인 문화 예술 마인드로 무장하길 바란다. 이렇게 힘을 합쳐 시민들에게 수준 높은 정서적 문화 환경을 제공하고, 젊은 연주자들에게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안정적인 무대를 지속해서 제공하길 그는 간곡히 제안한다. 예술은 효율성의 논리만으로 평가할 수 없는 영역이다. 젊은 예술가들이 미래를 꿈꿀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결국 도시의 경쟁력이 된다고 볼 수 있다. 그는 대구가 이미 세계적 수준의 음악 인프라와 교육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며.... 대구는 단순히 인재를 배출하는 도시를 넘어, 전 세계 클래식 음악가들이 찾아오고 싶어하는 '글로벌 클래식의 메카'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이제 필요한 것은 이 구슬들을 하나로 꿰어 보배로 만들 지자체와 문화계의 강력한 연대와 실천이라 강조한다.
인터뷰를 마치며
이병삼 교수의 이야기는 상실과 방황, 외로움, 그리고 인내를 견디며 끝내 자신의 목소리를 찾아낸 한 예술가의 기록이다. 오페라의 본고장에서 울려 퍼졌던 그의 노래는 이제 대구의 강단에서 다음 세대의 꿈을 깨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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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너의 구두가 찢어져 있다면 두려워하지 마라. 그것은 끝이 아니라, 예술가로서 진짜 시작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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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너 이병삼 교수>
○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성악과졸업
○ 이태리 '움베르또 죠르다노' 국립음악원 수석졸업
○ 카루소국제콩쿨등 다수 입상
○ 짤츠부르크 대극장, 린츠극장, 이태리 파르마왕립극장, 피렌체국립극장, 마드리드극장, 바르셀로나극장, 독일 본극장, 프랑크부르트극장 등에서 주역출연
○ 이태리 아르투로 토스카니니협회 초청 주역성악가
○ 국립오페라단, 서울시오페라단, 대구오페라하우스 등에서 주역출연
○ 현 대구가톨릭대학교 음악공연예술대학 음악학과 성악전공교수
○ 대구경북성악인협회 부회장
○ 스페인 Concerlirica 소속 성악가
[대한민국예술신문 최영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