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바람과 바다, 오름과 마을, 그리고 그 안에서 삶을 이어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여성합창의 깊고 따뜻한 울림으로 되살아난다. 제주한소리여성합창단(단장 홍성숙)은 오는 8월 27일 (목) 오후 7시 30분 제주대학교 아라뮤즈홀에서 제20회 정기연주회 ‘제주, 多(다)’를 개최한다. ‘제주, 多’에는 눈에 보이는 풍경을 넘어 수많은 이야기와 기억, 사랑과 우정, 서로 다른 삶의 결이 공존하는 섬 제주를 노래하겠다는 뜻이 담겼다.

이번 공연은 제주를 단순한 관광의 대상이나 아름다운 자연경관으로 바라보는 데 머물지 않는다. 제주도민이 살아온 시간과 마을을 지켜온 기억, 자연과 더불어 형성된 삶의 방식, 사람과 사람이 서로를 부르며 이어온 관계를 음악으로 조명한다. 관객들은 제주로 들어서는 순간부터 해가 뜨고 지는 풍경, 마을과 섬의 이야기, 오름과 바당을 지나 다시 제주를 품고 돌아가는 여정까지 한 바퀴 여행하듯 만나게 된다.
아마추어의 열정과 전문예술의 품격을 함께 세워온 스무 번째 무대
제주한소리여성합창단은 20대의 맑고 생기 있는 음색부터 60대의 깊고 원숙한 울림까지 여러 세대가 한 무대에서 조화를 이루는 여성합창단이다. 직업도, 삶의 배경도, 살아온 이야기도 서로 다르지만 ‘노래’라는 하나의 마음으로 모여 매주 목소리를 맞추며 제주에 따뜻한 울림을 전해 왔다.

특히 제주지역 아마추어 여성합창단 가운데 전문예술단체로 지정된 합창단으로서, 생활예술의 순수한 열정과 전문예술의 완성도를 함께 추구해 왔다. 2017년 제주특별자치도 전문예술법인·단체로 지정됐으며, 같은 해 창작음악극 ‘해녀의 길’을 기획·제작해 제주 여성의 강인한 생명력과 해녀 공동체의 삶을 무대 위에 펼쳐 보였다.
이후 정기연주회뿐 아니라 제주합창단 기획연주, 제주합창제, 국제합창제, 탐라합창제, 창작합창페스티벌, 국제교류공연 등 다채로운 무대에 참여하며 활동의 폭을 넓혀 왔다. 독일 사이티탄생 기념 페스티벌 초청공연과 국제교류, 제주국제합창축제·심포지엄 연주, 제주음악제 100인의 합창 등에도 참여했다. 탐라합창제에서는 여러 차례 우수상과 최우수상을 받으며 음악적 역량을 인정받았다.
무엇보다 합창단은 지난 4년 동안 제주의 여러 마을에 깃든 설화와 생활사, 주민들의 기억을 노래로 만드는 작업에 각별한 공을 들여왔다. 마을 주민들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듣고, 그 이야기를 창작합창곡으로 완성해 다시 지역사회와 나누는 활동을 이어왔고, 홍수미 부단장의 기획으로 올해 세번째 제주문화예술재단에 선정되어 지속성과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안현순 작곡가와 함께 작업한 음악극 ‘해녀의 길’을 비롯해 제주 마을과 사람들의 삶을 담은 여러 작품은 공연이 끝난 뒤에도 지역의 문화적 기억을 보존하고 전하는 음악 자산으로 남았다. 제20회 정기연주회는 그동안 축적해 온 창작곡을 한자리에 모으는 동시에 새로운 두 작품을 세계 초연하는 무대라는 점에서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제주로 들어가 마을과 사람을 만나고, 다시 제주를 안고 돌아오다
공연은 한 편의 여행 서사를 따라 여섯 개의 장면으로 전개된다.
첫 장 ‘제주로 들어가는 문’에서는 김동률의 ‘출발’과 조용필의 ‘여행을 떠나요’를 통해 관객을 음악 속 제주 여행으로 초대한다. 익숙하고 경쾌한 선율은 여행을 앞둔 설렘을 불러일으키며, 고경서의 드럼과 현지만의 기타가 더해져 무대에 힘찬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두 번째 장 ‘해가 뜨고, 해가 지는 제주’에서는 최성원의 ‘제주도 푸른 밤’과 전송이 작곡의 창작 초연곡 ‘제주의 하루’가 연주된다. ‘제주의 하루’는 아침빛이 섬을 깨우고, 낮의 풍경과 사람들의 움직임을 지나 저녁의 고요에 이르는 제주의 시간을 음악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제주에서 반복되는 평범한 하루가 실은 자연과 사람, 노동과 휴식이 함께 빚어내는 귀중한 삶의 순간임을 일깨운다.
이어지는 ‘사랑은 오래 바라보는 일’에서는 안현순이 작곡하고 전송이가 편곡한 ‘부부석 이야기’와 전송이 편곡의 ‘서쪽 마을 이야기’를 선보인다. 돌과 바람, 오래된 마을길에 스며 있는 삶의 흔적을 합창으로 되살리며, 한 마을을 지켜온 사람들의 기다림과 사랑, 세대를 이어 축적된 기억을 섬세하게 풀어낸다. 화려한 사건보다 오랜 시간 한자리를 지킨 존재들의 마음에 귀 기울인다는 점에서 이번 연주회의 주제의식을 깊게 드러내는 대목이다.
네 번째 장 ‘섬 안의 섬, 그리고 삶’에서는 강중훈의 시에 안현순이 곡을 붙이고 전송이가 편곡한 ‘주간명월’이 무대에 오른다. 소프라노 이정하·홍수연·좌보나·김지수가 여성 4중창으로 참여해 우도의 아름다운 풍광과 신비로운 정취를 맑고 섬세한 화음으로 전한다. ‘섬 속의 섬’ 우도에 깃든 자연과 설화를 네 사람의 서로 다른 음색이 하나의 화음으로 엮어내며 특별한 울림을 선사할 예정이다.
다섯 번째 장 ‘제주에 머무는 숨’은 다음 세대를 위한 무대다. 소리풍경어린이합창단이 특별출연해 김광석의 ‘바람이 불어오는 곳’과 박진영의 ‘노래하는 친구들’을 들려준다. 김지혜 단장이 이끄는 소리풍경어린이합창단은 김수연 지휘자, 박현지 반주자와 함께 아이들 특유의 투명하고 해맑은 목소리로 관객에게 따뜻한 쉼과 치유의 시간을 선물한다.
2011년 도내 초등학생들로 창단된 소리풍경어린이합창단은 현재 약 30명의 단원으로 구성돼 있다. 국내외 합창 무대와 음악축제에 꾸준히 참여하는 한편, 제주를 소재로 한 작품을 어린이의 시선으로 재해석하고 제주어 동요 부르기에도 앞장서며 소멸 위기에 놓인 제주어와 지역문화의 가치를 다음 세대에 전하고 있다.
여섯 번째 장 ‘높은 곳과 낮은 곳, 모두가 제주’에서는 이번 공연의 또 다른 세계 초연곡인 안현순 작곡의 ‘오름과 바당’이 공개된다. 높이 솟은 오름과 가장 낮은 곳에서 섬을 품는 바당은 서로 다른 모습으로 존재하지만, 결국 하나의 제주를 이룬다. 작품은 높고 낮음, 크고 작음, 강함과 부드러움이 서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공존하고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온전한 아름다움이 완성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박정필의 ‘조아마시’가 이어지며 제주 특유의 친근한 정서와 흥겨움을 더하고, 마지막 장 ‘제주를 안고 돌아가다’에서는 최진의 ‘아름다운 날’과 이영훈의 ‘이 세상 살아가다 보면’이 연주된다. 드럼과 기타가 다시 합류하는 마지막 무대는 여행의 끝에서 제주가 건넨 위로와 사랑을 마음에 품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관객들에게 밝고 힘찬 인사를 전한다.

창작자와 연주자, 다음 세대가 함께 완성하는 ‘제주의 합창’
전체 무대는 김훈석 지휘자가 이끈다. 김 지휘자는 제주대학교 음악학과와 교육대학원 음악교육과를 졸업하고 이탈리아 스쿠올라 디 무지카 신포니아와 피렌체 아르모니아 아카데미에서 전문과정을 이수했다. ‘돈 조반니’, ‘라 보엠’, ‘코지 판 투테’ 등 다수의 오페라에서 주요 배역으로 출연했으며, 제주와 대구의 교류음악회, 오페라 갈라콘서트, 메시아와 대관식미사 등 여러 무대를 통해 성악가와 지휘자로서 폭넓은 음악 활동을 펼쳐왔다. 한국합창총연합회 제주특별자치도지회 회장을 역임하였고 현재는 제주성악협회 부회장과 제주한소리여성합창단 지휘자를 맡고 있다.

피아노는 김민정 반주자가 맡는다. 제주 피아노앙상블과 오블레스 피아노앙상블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민정은 국내외 독주 및 앙상블 무대를 통해 쌓아온 안정적인 연주력을 바탕으로 합창단의 호흡을 섬세하게 뒷받침한다. 오랜 시간 제주한소리여성합창단과 함께해 온 반주자로서 단원들의 음색과 음악적 흐름을 깊이 이해하고 있다는 점도 이번 무대의 완성도를 높이는 요소다.
세계 초연곡 ‘제주의 하루’를 작곡한 전송이는 컴퓨터음악과 뉴미디어 음악을 전공했으며, 동아연극대상과 서울연극제 수상작을 비롯해 영화·다큐멘터리·공연예술 분야에서 음악감독과 작·편곡가로 활동해 왔다. KBS ‘시사기획 창’ 음악감독을 역임했고, ‘아름다운 제주해녀 음원공모전’ 작사·작곡 우수상을 수상했다. 현재 사단법인 제주작곡가협회 이사로 활동하며 제주적 소재를 현대적 음악언어로 확장하고 있다.
‘오름과 바당’과 ‘주간명월’, ‘부부석 이야기’ 등을 작곡한 안현순은 제주대학교에서 작곡을 전공하고 합창지휘와 작곡 분야의 전문과정을 이수한 작곡가다. 국립합창단과 여러 시립·도립합창단의 위촉작곡가로 활동했으며, 국내 창작합창페스티벌과 국제 초청공연에서 작품을 선보여 왔다. 제주어와 제주 민요, 설화와 역사 등 지역의 언어와 기억을 합창음악으로 기록하는 작업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유채연은 공연의 연출과 예술감독을 맡아 각 곡을 하나의 서사로 연결한다. 오페라 ‘마술피리’, ‘코지 판 투테’를 비롯해 어린이 뮤지컬과 연극, 뮤지컬 무대에서 활동해 온 경험을 바탕으로 음악과 장면 전환, 출연진의 움직임을 유기적으로 구성해 공연 전체에 극적 생동감을 더한다.
특별출연하는 소프라노 이정하·홍수연·좌보나·김지수는 제주대학교와 동덕여자대학교에서 성악을 전공하며 오페라와 정기연주회, 국제무대 등에 출연해 온 젊은 성악도들이다. 이번 여성 4중창은 신진 음악가들에게 실제 공연 경험을 제공하고 다음 세대의 성장을 돕고자 하는 제주한소리여성합창단의 뜻을 보여준다. 드럼 고경서와 기타 현지만 역시 제주대학교에서 수학하며 대학 밴드 활동을 이어가는 청년 연주자들로, 합창의 정제된 음색에 젊고 역동적인 리듬을 더한다.
풍경을 넘어 제주의 기억과 관계를 노래하다
이번 연주회의 가장 큰 의의는 제주를 배경으로 삼는 데 그치지 않고, 제주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목소리를 예술적 언어로 기록한다는 데 있다. 마을 주민에게 들은 이야기와 지역의 설화, 제주인의 노동과 기다림, 자연과 사람이 맺어온 관계가 작곡가의 음악과 합창단의 목소리를 거쳐 새로운 공동체의 기억으로 남는다.
또한 기성세대와 청년 음악가, 어린이합창단이 한 무대에 오르는 구성은 제주 문화예술의 지속가능성을 보여준다. 스무 번째 정기연주회는 지난 시간을 기념하는 자리에 머무르지 않고, 제주 창작합창의 다음 스무 해를 준비하는 출발점이기도 하다.
홍성숙 단장은 “해마다 연주회를 준비하며 설레기도 했고, 때로는 힘들고 지치는 순간도 있었지만 그 시간마다 함께 마음을 모아 노래해 온 단원들이 있었기에 스무 번째 무대까지 올 수 있었다”며 “세계 초연으로 선보이는 두 곡의 창작곡과 제주 마을의 노래들을 통해, 볼수록 좋은 제주의 오름과 바당, 느낄수록 깊어지는 제주의 사랑과 우정을 한소리의 노래 속에서 만나보시길 바란다”고 전했다.
김훈석 지휘자는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내고, 각기 다른 목소리를 모아 온전한 곡으로 완성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며 “단원들과 창작자, 연주자들이 한마음으로 함께했기에 스무 번째라는 귀한 무대를 마련할 수 있었다. 제주 여성들의 목소리가 모여 빚어낸 이 음악이 관객들에게 따뜻한 제주의 선물이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제주한소리여성합창단의 제20회 정기연주회 ‘제주, 多’는 제주특별자치도와 제주문화예술재단의 2026년도 제주문화예술지원사업 후원으로 마련된다. 서로 다른 목소리가 하나의 화음이 되고, 높고 낮은 모든 삶이 모여 하나의 제주가 되는 시간. 이번 무대는 제주의 아름다운 풍경뿐 아니라 그 풍경을 지키며 살아온 사람들의 마음까지 오래 기억하게 하는 깊은 울림의 공연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대한민국예술신문 현동헌 보도국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