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머무는 클래식>저자 최영민은 클래식 음악을 통해 예술가의 삶을 바라보는 글을 써왔다. 그렇게 음악을 이야기하면서 늘 궁금했던 것이 있다.
좋은 음악은 우리에게 무엇을 남기는가.
아름다운 선율일 수도 있고, 잊고 있던 기억일 수도 있다. 때로는 한 사람의 삶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질문 하나일 수도 있다.
26년 8월 25일 대구콘서트하우스 챔버홀에서 열린 ‘이육사 시노래 축제 - 강철무지개’ 공연. 한 시인의 삶과 문학이 80년이라는 시간을 지나 오늘의 작곡가와 연주자를 만나고 다시 우리의 마음으로 들어오는 순간을 보았기에, 궁금했던 질문의 잔잔한 대답과 그날의 감동을 이 글에 담고 싶었다.

'한 사람의 삶은 무엇으로 기억되는가.'
이름일 수도 있고, 사진일 수도 있다. 역사책에 남은 몇 줄의 기록일 수도 있다. 그러나 때로 한 사람의 삶은 문장이 되어 남는다. 그리고 그 문장이 다시 누군가의 목소리를 만나 노래가 될 때, 한 사람의 삶은 새로운 시간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이육사가 그렇다.
그는 일제강점기라는 가장 어두운 시대를 살았고, 독립운동가였으며 시인이었다. 그러나 이육사를 ‘저항시인’이라는 하나의 이름으로만 기억하는 순간, 그의 문학이 품고 있는 더 넓은 세계를 놓치게 된다.
그의 시에는 절망이 있지만 절망만 있지는 않다.
고통이 있지만 고통만을 말하지 않는다.
끝을 바라보는 순간에도 그는 언제나 아직 오지 않은 시간, 미래를 바라본다.
그래서 이육사의 시는 지금도 살아 있다.
그리고 이제 그의 시는 다시 노래가 되고 있다.
이육사의 시에서 우리가 만나야 할 것은 ‘저항’만이 아니다
이육사의 문학을 이해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저항’이라는 단어를 꺼내는 것이다.
‘광야’, ‘절정’, ‘교목’에는 극한의 현실을 견디는 인간의 의지가 있다. 그의 삶 자체가 독립을 향한 실천이었기에 그의 시를 시대의 역사와 분리해 읽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의 시는 역사적 구호가 아니다.
오히려 역사의 가장 깊은 곳에서 한 인간이 느꼈던 감정을 보여준다.
‘청포도’에서 우리가 만나는 것은 단순한 자연의 풍경이 아니다. 익어가는 포도와 푸른 하늘, 찾아올 손님을 기다리는 마음이 있다.
‘황혼’에서는 또 다른 이육사를 만난다.
강한 목소리로 시대를 꾸짖는 시인이 아니라, 세상의 가장자리에서 살아가는 존재를 바라보는 시인의 마음이다.
이육사의 증손녀인 소프라노 이영규가 이육사의 시를 노래하는 작업을 하면서 가장 새롭게 발견한 작품도 ‘황혼’이었다. 처음에는 그 시가 지닌 의미를 깊이 생각하지 않았지만, 노래로 부르면서 시를 다시 들여다보게 되었고, 그 안에서 소외된 사람에게 손을 내미는 듯한 따뜻함을 발견했다고 했다.
그의 이야기는 이육사의 문학을 새롭게 바라보게 한다.
이육사는 강했기 때문에 사랑한 것이 아니라, 사랑했기 때문에 강해졌던 사람은 아니었을까.
지켜야 할 사람이 있었고, 지켜야 할 세상이 있었기에 자신의 삶을 내놓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그의 저항은 차가운 의지가 아니다.
그 바탕에는 인간에 대한 사랑의 온기가 있었다.
이육사의 시를 오늘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한 사람의 시가 노래로 된다는 것
이번 ‘이육사 시노래 축제’에서 눈여겨볼 부분은 여러 작곡가가 이육사의 시를 각자의 음악적 언어로 해석했다는 점이다.
작곡가는 시를 읽으며 자신이 발견한 이육사를 음악으로 옮긴다.
시어의 리듬은 선율이 되고,말과 말 사이의 침묵은 쉼이 되고,시 속의 이미지와 긴장은 화성과 음색으로 변한다.
그리고 성악가의 호흡을 통과하면서 문학은 비로소 소리의 시간이 된다.
이것이 시가곡의 매력이다.
시는 생각하게 하지만, 노래는 느끼게 한다.
시는 한 문장을 우리 눈앞에 놓지만, 음악은 그 문장이 마음속에서 머물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준다.
그래서 이육사의 시를 노래로 만든다는 것은 단순히 새로운 가곡을 만드는 작업이 아니다.
한 시인의 언어를 오늘의 감각으로 번역하는 작업이다.
80년 전 쓰인 시가 오늘의 작곡가와 연주자를 만나 새로운 음악이 되는 순간, 이육사는 더 이상 과거의 인물이 아니다.
그는 다시 현재에 있다.
가족들이 기억하는 이육사
이육사의 가족에게 전해지는 한 이야기는 그래서 더욱 흥미롭다.
그는 상당한 멋쟁이였다고 한다.
바지를 구김 하나 없이 다려 입었고, 아이보리 수트를 입을 정도로 옷차림에 세련된 감각을 지닌 사람이었다.
죽음을 가까이 두고 살았던 당시의 독립운동가들에게 좋은 옷을 입는 것은 하나의 궤율과도 같았다고 한다.
역사책 속에서 내가 상상한 이육사의 모습과는 조금 다르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이런 이야기가 한 사람을 더 가깝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죽음을 생각해야 했던 사람이 아침에 옷의 주름을 펴고, 단정하게 옷을 갖춰 입고 세상으로 나간다는 것.
그것은 어쩌면 작은 의식이었을 것이다.
이육사의 강인함도 거대한 사건 속에서만 찾을 필요는 없다.
그의 문학과 삶을 조금 가까이 들여다보면, 한 시대를 견뎌낸 한 인간의 아주 섬세한 마음과 태도가 보인다.
그리고 그 인간적인 면모가 오히려 그의 시를 오늘의 우리에게 더 가깝게 만든다.
후손의 아쉬움에서 시작된 ‘이육사 시노래’
이번 음악회의 시작에는 이영규 소프라노의 개인적인 아쉬움이 있었다.
성악가로 활동하면서 수많은 시인의 시를 노래했지만, 정작 자신의 할아버지인 이육사의 시를 대표할 만한 가곡이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이었다.
그는 누군가 만들어주기를 기다리지 않았다.
작곡가 홍신주와 함께 이육사 시가곡을 만들고, 독창회에서 초연했다.
그리고 그 작업은 이어졌다.
지난해부터 이육사 문학관과 함께 여러 작곡가의 이육사 시노래를 무대화하는 작업을 하고있다.
그가 표현한 ‘이육사 시노래 컬렉션’이라는 말에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한두 곡의 기념곡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육사의 시가 지속적으로 불릴 수 있는 음악적 레퍼토리를 만들어가는 일이기 때문이다.
문학도 음악도 결국 시간 속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초연되었다는 사실보다 중요한 것은 다시 연주되는 것이다.
오늘 만들어진 노래가 내년에 다시 불리고, 다른 성악가가 부르고, 또 다른 음악가가 그 악보를 펼치는 순간 작품은 비로소 자기 생명을 갖는다.

이육사의 시를 음악으로 기억해야 하는 이유
우리는 이육사를 역사로 배운다.
그가 어떤 시대를 살았는지, 어떤 일을 했는지, 어떤 시를 남겼는지 배운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을 아는 것과 한 인간을 이해하는 것은 다르다.
예술은 그 사이에 놓인다.
음악은 우리에게 이육사가 무엇을 했는지를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그가 무엇을 느꼈을지 생각하게 한다.
‘광야’를 들으며 우리는 한 인간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무엇인가를 믿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청포도’를 들으며 기다림에 대해 생각하고
‘황혼’을 들으며 누군가의 외로움을 바라보는 마음에 대해 떠올린다.
이것이 예술이 역사를 기억하는 방식이다.
역사를 지식으로 남기는 것이 아니라 감정으로 건네는 것.
특히 미래 세대에게 이육사를 전하고자 한다면 더욱 그렇다.
이육사를 외워야 하는 시인으로 만들기보다, 한 번이라도 그의 시를 귀담아듣게 하는 것.
그리고 그 노래를 들으며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것.
어쩌면 그것이 가장 오래가는 교육일 것이다.
노래는 때때로 한 사람의 삶을 움직인다
이영규 소프라노가 이육사 시가곡을 초연했던 독창회에는 잊지 못할 관객이 있었다.
그 연주를 통해 자신의 삶의 방향을 정하게 되었다는 사람이었다.
예술이 가진 힘을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다.
음악은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무엇이 옳은지 설득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어느 순간 우리의 가장 깊은 곳에 닿는다.
말로 설명하지 못했던 감정을 대신 말해주고, 잊고 있던 마음을 다시 불러내며, 때로는 앞으로의 삶을 생각하게 한다.
그래서 이영규 소프라노는 음악을 ‘나를 만나는 일’이라 말한다.
예술가는 자신의 한계와 만나고 그것을 넘어서는 일을 반복하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과 기쁨을 소리로 승화할 때 비로소 자신이 세상과 온전히 연결된다고 했다.
그 말은 이육사의 시와도 닮아 있다.
이육사 역시 자신의 한계와 시대의 한계 앞에 서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 자리에서 자신의 언어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 언어가 시가 되었고,그 시가 오늘 다시 음악이 되어 우리에게 다가온다.

이육사의 노래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앞으로의 과제는 분명하다.
이육사의 시가 기념행사의 음악으로만 남지 않는 것이다.
광복절이나 특정한 역사적 기념일에만 불리는 노래가 아니라, 평범한 음악회에서도 연주되고 음악대학의 성악 전공자가 레퍼토리로 선택하며 젊은 작곡가들이 다시 해석할 수 있는 작품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이육사의 시는 살아 있는 문학으로 남는다.
이영규 소프라노 역시 앞으로 역사와 문학, 음악이 유기적으로 만나는 창작 작업을 지속하고 싶다고 말했다.
우리 시대의 서사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풀어낸 무대를 만들고, 성악가로서는 무대 위에서 기억되는 노래를 하고 싶다는 것이다.
그가 자신의 할아버지 시를 음악이라는 언어로 ‘통역’하고 싶다고 말한 것은 의미가 깊다.
통역은 원문을 대신하는 일이 아니다.
원래의 의미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다른 언어로 건네는 일이다.
이육사의 시를 음악으로 옮기는 작업 역시 그러해야 할 것이다.
시인의 시대를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남긴 가치가 오늘의 청중에게 닿도록 새로운 언어를 찾는 것.
그것이 앞으로 이육사 시노래가 걸어가야 할 길이다.
삶은 시가 되고, 노래로 이어진다
이육사를 생각하면 우리는 한 시대의 비극을 떠올린다.
그러나 그곳에서 멈추고 싶지는 않다.
그가 남긴 것은 절망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는 어둠 속에서도 미래를 생각했고, 인간을 바라보았으며, 자신의 언어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삶은 시가 되었다.
그리고 그 시는 이제 다시 노래가 되고 있다.
한 사람이 살아낸 시간이 시인의 문장이 되고, 그 문장이 작곡가의 선율을 만나고, 성악가의 호흡을 지나
우리의 가슴에 남는다.
그 순간 80년 전의 시간이 지금의 시간이 된다.
이육사의 시가 우리에게 필요한 이유는 그가 살았던 시대가 다시 오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에도 여전히 지켜야 할 것이 있고, 사랑해야 할 사람이 있고, 끝까지 놓지 말아야 할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이육사의 시가 노래가 되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삶은 시가 되고, 시는 노래가 되고, 노래는 다시 누군가의 마음에 머문다.
그리고 마음에 머문 것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80년의 시간을 건너온 이육사의 시가 지금도 우리 곁에 있는 것처럼.
그의 시는 이제 책장에만 머물지 않는다.
오늘의 목소리로 불리고, 오늘의 마음으로 다시 읽히며, 아직 오지 않은 세대에게로 천천히 건너가고 있다.
그렇게 이육사의 삶은 끝나지 않는다.
시가 되었고, 이제 노래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영규 소프라노>
경북대학교 예술대학 음악학과 졸업
이탈리아 밀라노 아카데미아, 도니제티 아카데미아 디플롬
이탈리아 AIDM, 오스트리아 Mozarteum 마스터클래스
[대한민국예술신문 최영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