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에 서는 연주자에서, 아이를 무대에 세우는 교육자로...

20여 년 동요교육의 길에서 만난 임현주 선생의 음악과 아이들

'제가 직접 무대에 서는 것보다, 제가 가르친 아이들이 무대에 서고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더 큰 기쁨이었습니다.'

 

한 사람의 음악 인생에는 때때로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 전환이 찾아온다.
임현주 선생에게 그 전환점은 ‘아이들’이었다.

대학을 졸업한 뒤 큰 꿈을 품고 독일로 유학을 떠났던 그는 처음부터 동요교육자를 꿈꾸었던 것은 아니었다. 음악을 배우고 연주하며 자신의 음악적 세계를 넓혀가던 시기, 잠시 한국에 들어와 교수님의 조카들을 가르치게 된 일이 그의 삶의 방향을 바꾸어놓았다.

처음에는 자신이 무대에 서서 연주하는 것에서 음악가로서의 보람을 찾았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자신이 배운 것을 하나씩 전하고, 그 아이들이 연습을 통해 어려운 것을 해내며 무대 위에서 자신 있게 노래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새로운 기쁨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때 그는 알게 되었다.

음악을 직접 연주하는 기쁨과 음악가를 길러내는 기쁨은 서로 다른 깊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그렇게 연주자의 길에서 교육자의 길로.
임현주 선생의 20여 년 동요교육은 시작되었다.

 

한 아이의 성장이 한 음악가의 보람이 될 때

20여 년 동안 아이들과 음악을 나눈다는 것은 수많은 만남과 이별, 성장과 변화의 시간을 함께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임현주 선생에게 가장 뿌듯한 기억 중 하나는 어린 시절부터 가르쳤던 아이가 성장해 예중과 예고를 거쳐 예술대학에 진학하고, 마침내 음악가의 길을 걷는 모습을 바라보았던 순간이다.

처음 음악을 배우던 어린아이가 자신의 꿈을 발견하고, 한 단계씩 자신의 길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가까이에서 지켜본다는 것.

교사에게 그것은 단순한 ‘제자의 성공’과는 다른 의미를 가진다.
한 사람의 인생에서 음악이 하나의 언어가 되어가는 과정을 함께했다는 기억이기 때문이다.

그에게 또 다른 보람으로 남아 있는 제자는 음악을 좋아했지만 가정 형편 때문에 음악을 배우기 어려웠던 아이였다.

아이의 음악에 대한 의지가 강했던 만큼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음악을 계속할 수 있도록 도왔고, 시간이 흐른 뒤에도 그 제자는 스승을 잊지 않고 찾아오거나 연락을 이어왔다.

임현주 선생에게 그 기억은 특별하다.

음악교육의 결과가 반드시 콩쿠르의 상장이나 무대의 순위로만 남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음악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삶 속에서 계속 이어가는 것.

어쩌면 교사가 바랄 수 있는 가장 오래된 결과는 바로 그것인지도 모른다.

 

‘잘하는 아이’보다 ‘좋아하는 아이’를 바라보다

그러나 모든 만남이 기쁨으로만 기억되는 것은 아니다.

충분한 재능과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고 성악가의 길로 나아갈 수 있을 만큼 음악적으로 성장한 아이가 결국 음악을 그만두게 된 경험은 임현주 선생에게 오래 남아 있는 아쉬움이다.

부모의 기대가 커지고 아이에게 주어지는 부담 역시 커지면서 음악을 포기하게 된 제자를 바라보며 그는 중요한 교육적 질문을 마주하게 되었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실력인가, 결과인가, 아니면 음악을 좋아하는 마음인가?'

이 경험은 그의 교육철학에도 깊은 영향을 주었다.

실력과 결과가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러나 어린 시절의 음악교육에서 더욱 근본적인 것은 아이가 음악을 좋아하는 마음을 잃지 않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이 지점에서 임현주 선생의 교육은 단순한 가창교육을 넘어선다.

노래를 정확하게 부르게 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음악을 대하는 아이의 마음을 어떻게 지켜줄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중창, 함께 노래한다는 것의 음악적 의미

임현주 선생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또 하나의 영역은 중창이다.

중창은 여러 사람이 하나의 음악을 함께 만들어가는 장르다. 같은 음을 내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목소리가 자신의 역할을 이해하고, 다른 사람의 소리를 들으며 하나의 음악적 구조 안에서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중창은 음악적으로도 특별한 교육적 경험이 된다.

임현주 선생은 오늘날 어린이들이 과거보다 또래와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들고 있다고 말한다. 외동인 가정이 늘어나고 부모가 모두 일하는 가정이 많아지면서 혼자 지내는 시간이 늘어났고, 미디어를 접하는 시간 역시 많아졌다는 것이다.

그런 환경에서 중창은 아이들에게 또 다른 공동체의 경험을 제공한다.

서로 다른 성격과 개성을 가진 아이들이 함께 연습하고, 친구를 기다리고 배려하며, 다른 친구가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도 함께 성장한다.

특히 중창에서는 자신의 목소리만 들을 수 없다.
다른 사람의 소리를 들어야 하고, 자신의 소리를 조절해야 하며, 전체의 음악을 위해 자신의 역할을 이해해야 한다.

혼자 잘 부르는 것과 함께 잘 부르는 것은 전혀 다른 음악적 능력이다.

임현주 선생이 중창에서 발견하는 교육적 의미도 바로 여기에 있다.

아이들은 함께 노래하면서 음악적 성장뿐 아니라 사회성과 협동심을 경험한다. 그리고 무대 위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호흡을 맞추고 하나의 음악을 완성하는 순간, 혼자 노래할 때와는 다른 성취감을 경험한다.

 

 

20년이 지나고서야 알게 된 것

20여 년 동안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은 무엇일까.

임현주 선생의 대답은 ‘가르치는 방법’에 관한 것이면서 동시에 ‘아이를 바라보는 시선’에 관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자신이 알고 있는 음악을 아이들에게 잘 전달하고, 아이들의 실력을 빠르게 향상시키는 데 집중했다.

그러나 수많은 아이들을 만나면서 아이마다 배우는 속도가 다르고, 성격이 다르며, 음악을 받아들이는 방식 역시 다르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었다.

예전에는 아이가 잘 따라오지 못하면
‘어떻게 하면 더 잘 가르칠 수 있을까’를 먼저 생각했다.

이제는 질문이 달라졌다.

‘왜 이 아이가 어려워할까.’
‘이 아이에게는 어떤 방법이 더 맞을까.’

교육자의 시선이 ‘가르치는 사람’에서 ‘배우는 아이’에게로 이동한 것이다.

조금 기다려주는 것.
아이의 눈높이에 맞추는 것.
아이마다 다른 속도를 인정하는 것.

임현주 선생은 20여 년의 시간을 통해 이것이 오히려 더 큰 성장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고 말한다.

그래서 지금 그가 지향하는 교사는 단순히 노래를 잘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다.

아이의 성향과 마음을 이해하고, 각자의 속도에 맞춰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사람.

그것이 오랜 시간 아이들과 함께한 음악교육자가 도달한 교육의 언어다.

 

동요는 ‘배워야 할 음악’이기 전에  ‘좋아서 부르는 음악’이어야 한다

임현주 선생이 바라보는 동요의 미래 역시 교육철학과 맞닿아 있다.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이들이 음악을 좋아하는 마음을 잃지 않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실력과 결과에 지나치게 집중하면 음악은 즐거움이 아니라 부담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잘 부르는 것과 함께 음악을 하면서 느끼는 즐거움과 행복을 지켜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는 오늘날 동요가 놓인 환경을 생각하게 한다.

과거에는 아이들이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동요를 접하고 따라 부르는 일이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다양한 장르의 음악과 영상 콘텐츠가 넘쳐나면서 어린이가 동요를 만날 기회가 상대적으로 줄어들었다.

그래서 임현주 선생은 지금의 아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와 정서를 담은 새로운 동요가 더 많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동요가 ‘교육을 위해 불러야 하는 노래’가 아니라
아이들이 자신의 이야기처럼 느끼고 자연스럽게 좋아할 수 있는 노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에게 동요교육은 과거의 노래를 전달하는 데 머무르지 않는다.

아이들이 오늘의 언어로 음악을 만나고, 노래를 통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며, 어린 시절의 음악적 기억을 오래 간직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이다.

 

동요 한 곡이 아이의 삶에 남기는 것

임현주 선생은 음악을 전공하려는 아이만 동요를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모든 아이가 한 번쯤 동요를 배워보았으면 좋겠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노래를 잘 부르게 되는 것 이상의 경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고 무대에 서는 경험은 아이에게 자신의 모습을 다른 사람 앞에서 표현하는 경험을 준다.

처음에는 부끄러워하던 아이도 연습하고 무대에 서는 경험이 반복되면서 조금씩 자신 있게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

그 경험은 무대에서 끝나지 않는다.

학교생활에서도, 친구와의 관계에서도,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순간에도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데 필요한 자신감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래서 임현주 선생에게 동요는 단순한 어린이 노래가 아니다.

한 아이가 세상 앞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보는 첫 번째 음악적 경험일 수 있다.


아이들이 더 넓은 무대를 꿈꾸게 하는 대한민국예술신문 대구지사 전국동요콩쿨

2026 대한민국예술신문 대구지사 전국동요콩쿨에서 우수지도자상과 최우수지도자상을 수상한 임현주 선생.

그가 이번 콩쿨에서 의미 있게 느낀 것은 아이의 조건이나 배경이 아니라 무대에서 보여준 실력과 노력 자체로 평가받는 대회의 취지였다. 콩쿨이라는 특성상 심사 결과에 대해 아쉬움이 남는 경우도 있지만, 이번 대회에서는 아이들이 무대에서 보여준 음악적 역량을 중심으로 평가하고 있다는 점이 분명하게 느껴졌다는 것이다. 또한 참가자와 지도자들이 불편함 없이 대회에 집중할 수 있도록 전체적인 진행이 안정적이고 매끄럽게 이루어진 점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결국 좋은 콩쿠르란 순위를 정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자신의 음악을 온전히 보여주고 그 과정이 공정하게 존중받을 수 있는 무대여야 한다는 의미로 읽힌다.

 

2026 대한민국예술신문 대구지사 전국동요콩쿨에 참여한 소감에서도 임현주 선생의 교육철학은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그가 또하나 의미 있게 바라본 부분은 이번 대회가 단순히 순위를 정하는 데 그치지 않고 어린이들에게 다양한 음악적 경험을 제공한다는 점에도 의미를 두었다. 그 가운데 해외 연주 기회는 어린 연주자들에게 특별한 경험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성인 음악가에 비해 어린이들이 해외 무대에 직접 서볼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의 무대에 서고 새로운 환경에서 공연한다는 경험은 음악적인 성장뿐 아니라 한 사람의 기억 속에도 오래 남을 수 있다.

 

특히 윤학준 작곡가의 작품을 직접 초연할 수 있는 기회에 대해서도 의미를 높게 평가했다.

이미 존재하는 작품을 배우고 부르는 것과, 새로운 작품을 처음 세상에 선보이는 것은 음악가에게 전혀 다른 경험이다. 어린이들이 새로운 작품의 첫 번째 목소리가 된다는 것.

그것은 단순한 콩쿠르 특전을 넘어 어린 음악가에게 ‘나도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가는 사람’이라는 경험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임현주 선생이 바라본 이번 대회의 의미는 결국 여기에 닿아 있다.

순위를 넘어 아이들에게 경험을 주는 것.
경험을 넘어 더 넓은 무대를 꿈꾸게 하는 것.

 


수상의 순간도 소중하지만 더 오래 남는 것은 ‘아이의 음악적 기억’이다

임현주 선생의 제자들은 여러 전국 동요대회와 음악콩쿠르에서 꾸준히 성과를 보여왔다. 2023년부터 2026년까지 독창과 중창, 창작동요 등 여러 분야에서 대상과 최우수상, 1위 등의 수상 기록을 이어왔으며, 2026년에는 전국환경에너지동요대회에서 전체대상(독창)으로 환경부장관상을 비롯해 여러 대회에서 지속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임현주 선생의 이야기를 이 수상 기록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무언가 빠져 있다.

그가 20여 년 동안 아이들과 함께하며 중요하게 생각해온 것은 상의 개수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 아이가 음악을 좋아하게 되는 것.

처음에는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는 것을 부끄러워하던 아이가 무대에 서는 것.

친구의 목소리를 듣고 자신의 목소리를 조절하는 것.

잘되지 않는 순간에도 다시 연습하는 것.

그리고 훗날 어른이 되어 스승을 찾아와
“선생님, 저 음악 계속하고 있어요”라고 말할 수 있는 것.

어쩌면 음악교육의 진짜 성과는 이런 순간들 속에 있는지도 모른다.

 

아이의 목소리를 키운다는 것

그의 이름 뒤에는 수많은 수상 기록이 있지만, 그 기록보다 먼저 보아야 할 것은 20여 년 동안 아이들의 목소리를 기다려온 한 음악교육자의 시간이다. 그는 자신의 음악을 아이에게 주었다.

그리고 아이는 그 음악을 다시 자신의 목소리로 돌려주었다.

교육이란 어쩌면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교사가 알고 있는 것을 학생에게 그대로 전달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그 사람이 자신의 목소리를 찾도록 기다려주는 것.

임현주 선생이 처음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했을 때와 지금의 모습은 분명 다르다.

처음에는 ‘어떻게 잘 가르칠 것인가’를 고민했다면, 지금은 ‘이 아이에게 무엇이 필요한가’를 먼저 생각하는 교육자가 되었다.

그리고 그 변화의 중심에는 아이들이 있었다.

그래서 그의 음악교육을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아마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이에게 노래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자신의 목소리를 찾도록 돕는 일.'

무대의 조명이 꺼진 뒤에도 아이의 삶에 남는 음악은 바로 그런 음악일 것이다.

그리고 그 음악을 위해 오늘도 한 사람의 선생은 아이들 곁에서 기다리고, 듣고, 함께 노래한다.

 

 

 

 

 

[대한민국예술신문 최영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