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민의 마음 클래식

슈베르트 – 소외된 나에서 진정한 나로 나아가는 여정


구름마저 녹여 버릴 듯한, 뜨거운 태양에 눈이 부신 날이다. 그러나 햇빛의 강렬함과는 대조적으로 입꼬리도 눈매도 한껏 처져있는 모습이 어디선가 꼭 소나기를 만난 듯한 청년이 들어온다. 인사를 나누고는 앞에 놓인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말없이 들이켰다. 얼음 하나를 입에 물고 녹을 때까지 기다리는 듯한 모습이 감정의 평정을 찾고자 노력 중인 듯 보였다.

 

그에겐 몇 년간 사귄 여자친구가 있었다. 그녀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결혼을 생각하며 진지한 만남을 이어갔으나 여자친구와 그녀의 부모님 마음은 달랐다고 한다. 아직 안정된 직장이 없었던 그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셨고 그녀 또한 결혼까지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고 그의 마음을 거절했다.

 

그의 간절한 마음을 나누며 함께 들었던 곡은 슈베르트 Franz Peter Schubert <겨울 나그네> Die Winterreise D. 911이다. <겨울 나그네>는 슈베르트의 대표적인 연가곡으로 1827년 그의 나이 30세에 뮐러의 시에 곡을 붙인 24개 노래로 이루어져 있다. 사랑에 실패한 청년이 추운 겨울 연인의 집 앞에서 이별을 고하고 정처 없는 방랑의 길을 떠난다. 마이어호퍼는 <겨울 나그네>에 대해 “절망에 뿌리를 둔 시인의 얄궂은 처지에 마음이 동한 슈베르트가 가슴을 찌르는 날카로운 음으로 그 절망을 표현했다”라고 기록했다.

 

당시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를 접한 그의 친구들은 이 음악에 담긴 끈질긴 우울함과 쓸쓸함이 지닌 힘에 뭐라 말할 수 없었다고 한다. 다양한 분위기를 섞는 것이 음악에 필요한 덕목으로 여겨지던 시절에 슈베르트는 한가지 기조로 시작과 마무리를 한 것이다.

 

이 곡을 작곡할 당시 슈베르트는 건강이 좋지 않았고 존경하던 베토벤과 뮐러가 세상을 떠나 기댈 곳 없이 방랑하는 본인의 모습을 시에서 노래한듯하다. 눈을 감은 채 반주와 노래가 어우러진 연가곡을 듣고 있던 시린 가슴의 청년은 5번째 곡인 ‘보리수’(Der Lindenbaum)를 다시 듣고 싶다고 한다. 연인과 함께했던 어떤 장소에서 그녀와의 달콤한 추억을 회상하다 현실로 돌아오는 갈등을 노래하는 느낌이 든다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우물가 성문 그 앞이었네.

거기 보리수 한 그루 서 있었네.

꿈꾸었네 그 드리운 그늘에서

그리도 많은 감미로운 꿈을.

 

새겨 넣었네 그 껍질에

그리도 많은 사랑의 말을.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그 말들 그리로 날 데려갔다네.

 

나는 오늘도 방랑하겠네.

이 깊은 밤을 지나

거기 여전한 어두움 속에

나는 눈을 감았네.

 

<중략>

 

그곳에서 멀어져 온 지도

이제 오랜 시간이 흘렀네.

그래도 속삭이는 소리 들려오네.

거기서 너는 안식을 얻었을 텐데.

 

중세의 연가 시인 발터 폰 데어 포겔바이데(1170~1230)때부터 보리수는 자연의 안식과 연인의 사랑이 하나로 이어지는 완전한 장소였다. 장조에서 단조로 변했다 장조로 가는 분위기에서 편안한 서정과 평온의 보리수 이미지를 노래하는 듯, 그러나 곡의 마지막에 셋잇단음표와 부점 리듬은 아련히 떠오르는 추억이 사라지는듯한 느낌이 든다며 현실과 이상이 다른 자신의 처지에 관해 이야기했다.

 

슈베르트 음악을 들으며 깊은 슬픔에 공감받는 느낌이 들었다고 하는 그는 이별을 통해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었고 부족한 부분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지만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한다.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더 나은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다고 하며 다음 만남을 약속하는 그.

 

희망은 단순히 낙관적인 감정이 아니라 절망을 인식하고 그 속에서 끊임없이 투쟁하는 정신적 산물이다. 과거와 현재, 꿈과 현실 사이를 오가며 고독과 절망 속에서 자신의 존재 의미를 생각해보기로 한 그의 용기를 응원한 하루, 침울한 현실에서도 아름다운 선율을 노래한 슈베르트의 음악을 들으며 따뜻한 공감과 새로운 기대를 찾는다.

 

상처는 빛이 들어오는 자리다.

-루미-

 


 

최영민 작가

 

[학력]

경북대 예술대학 음악학과 석사

대구한의대 치유과학과 박사(ABD)

 

[경력]

전 대구과학대학출강

법무보호복지공단 대구지부 심리위원

아카데미 예송 대표

'마음이 머무는 클래식' 진행

 

[시상]

2024 대한민국 眞心예술대상 수상

 

[저서]

'마음이 머무는 클래식' (에듀래더 글로벌 출판사, 2025)

 

 

 

[대한민국예술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