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하르트 슈트라우스 – 마지막을 따뜻하고 아름답게 성숙과 인내의 단내가 어우러지는 계절을 맞이한다.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은 우리의 시공간을 말없이 흘러가고 있다. 봄이 지나기에 다가오는 여름이 있고, 겨울이란 이름이 있기에 다시 맞이할 수 있는 봄이 있듯 이들은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직선형 운동이 아니라 원을 그리듯 순환하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흐름 역시 유아기, 청소년기를 지나 노년기에 이르기까지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삶이 유한하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게 왜 이리 힘든지….’ 갑작스럽게 어머니는 암을 진단받았고, 자식으로서 미리 챙겨드리지 못한 죄책감으로 마음이 무너지는 한 중년여성이 상담을 요청하였다. 호스피스 병동에 계신 어머니의 온기가 서서히 식어가는 것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 마냥 고통스럽다는 그녀, 사는 게 뭐가 그리 급했는지 미리 병원 한번 모시고 가지 못한 지난날에 후회가 그녀를 짓누르고 있는 듯했다. 어머니의 인생이 메말라가는 것을 곁에서 지켜보는 일은 형언할 수 없는 고통, ‘내 마음도 바스락거리는 낙엽 같아요’라는 그녀와 함께 오늘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네 개의 마지막 노래(Vier Letzte Lie
“음악은 누구에게나 열린 언어 — 전공자와 비전공자를 위한 교육법” 기교보다 ‘소리의 진심’을 가르치는 교육 현장 비전공 - 늦게 배워도, 천천히 가도 괜찮다.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 하나면 충분하다. 음악을 가르치다 보면, 한 공간 안에서 전혀 다른 두 부류의 학생들을 만나게 된다. 누군가는 예중·예고, 음대•대학원 입시를 목표로 매일 새벽부터 연습을 이어가는 ‘전공자’. 음악은 과목에서도 필수니까 혹은 본인이 좋아서 배우는 어린 학생들과 오랜 세월 마음속에 담아둔 꿈을 이제야 꺼내어 조심스럽게 악기 앞에 앉는 어른들인 ‘비전공자’다. 피아니스트 고유미의 스튜디오에서는 이 두 길이 자연스럽게 교차한다. 그녀는 말한다. “전공자와 비전공자의 차이는 목적이 아니라 태도예요.” 필자가 어렸을 때만 해도 초등 저학년까지만 피아노를 배우고 그만두는 학생들이 대거했다. 자연스레 본인만 학교에서 피아노를 치고있으니 학교 반주나 행사를 도맡아 하는 일이 허다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음악의 문턱은 낮아지고 삶의 품격을 높이려는 학생들과 성인 학습자들이 빠르게 늘고 있다. 학생들은 전공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콩쿠르에 나가 상을 많이 타거나 연주회를 여는 일들이 많아졌다
베토벤 – 상실 속에서 배운 깨달음 계절의 온도에 따라 마음의 색채는 각기 달라질 수 있다. 단풍잎의 존재는 길을 걷는 이로 하여금 변화하는 계절을 선물하기에 충분하다. 가을은 선선한 바람과 함께 사색의 여유를 안겨준다. 최근 며칠간 시니어를 대상으로 하는 특강에 초대되어서인지, 삶의 의미에 관한 생각이 많아진다. 수업 전 특히 우울해 보이던 한 분이 수업 후 변화된 모습을 보며, 과연 삶이란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한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일깨우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나이가 들었다는 왠지 모를 상실감으로 ‘이제 희망이 없구나!’라고 느끼며 존재의 무력감을 느낀다는 그분은 ‘오늘도 친구가 가자 하니 왔지.’라며 수업 참여 동기를 말씀해주셨다. 그리고 한마디 덧붙이셨다. ‘나 신경 쓰지 말고 수업해요.’ 넌지시 남기신 그 말에는 ‘남은 삶을 좀 더 의미 있게 보내고 싶은데 쉽지 않네.’라는 간절함이 어려있었다. 노화를 신체적 관점에서 보면 성장이 끝나고 쇠퇴하는 시기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정신적 관점에서 노화를 바라본다면 오늘도 성숙한 변화로 조금씩 나아가는 희망으로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감사일기를 함께 써 보며 음악을 듣는다. 그 곡은 바로 베토벤
존 케이지 – 침묵은 또 다른 시작 계절과 계절 사이에는 환절기가 있고, 악장과 악장 사이에는 다음을 준비하는 시간이 숨 고르기가 있다. 우리 삶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그 시간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에 대한 사유 또한 기다림이 필요하지 않을까? 확고한 의지로 본인의 삶을 성공적으로 이끌고자 최선을 다했다는 60대 가장, 충분히 예전처럼 일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단지 그의 생각일 뿐, 회사의 입장은 확연히 달랐다. 퇴직 후 그동안 하고 싶었던 일에 대한 설레임은 생각일 뿐, 현실로 다가온 달라진 일상에서 나를 위한 시간을 가진다는 것은 사치처럼 느껴졌고, 가장으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한 무기력함과 공허가 자리했다. 아직 대학생인 아이의 뒷바라지며 노모의 생활비 등 걱정할 것이 많다는 그와 함께 음악을 듣고 이야기를 나누고자 내가 건넨 곡은 현대 음악 작곡가 존 케이지(John Cage)의 <4분 33초>이다. 무대에 등장한 연주자는 피아노를 앞에 두고 4분 33초 동안 어떤 건반도 두드리지 않고 퇴장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악보에는 '침묵'을 뜻하는 음악 용어 'TACET(연주하지 말고 쉬어라)'이 적혀 있다. 악장도 나뉘어 있어 1악장부터
브루흐 – 가을, 비올라 그리고 그녀 서늘한 바람에 책장을 넘기며 흔들리는 마음을 어루만지고 싶은 계절이 다가온다. 발걸음은 자연스레 서점을 향하고, 내면을 향한 진지한 대화를 준비할 책 한 권을 고른다. 바람이 반주해주고 마음이 속삭이는 대로 흥얼거리며 주차장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고등학교 시절 친구를 우연히 만났다. 30년이란 세월이 흘러 한눈에 알아보기는 힘들었지만, 활짝 웃을 때 미소 짓는 표정에서 그녀임을 확신했다. 우리는 반가운 인사를 건네며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서로 다음 일정이 있었던 이유로 연락처를 주고받아야만 했다. 아쉬움 가득한 순간을 품고 돌아서는 발걸음에 아련함이 잦아든다. 공부를 특별히 잘하거나 다른 재능이 있어 돋보였던 것도 아닌데, 왠지 모를 존재감이 있었던 그녀. 조금 더 친하게 지내고 함께 모둠도 하고 싶었지만,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던 그녀를 떠올리며... 잠깐 스쳤던 순간이 나의 하루를 설레게 했던 그 날의 음악을 들어 본다. 따뜻한 미소, 부드러운 말투, 그리고 그 속에 흐르는 단단함이 느껴지는 그녀와 닮은 곡은 바로 막스 브루흐(Max Bruch, 1838-1920)의 <Romance for Viola
에릭사티 – 반복 속에 담긴 간절함 부모에게는 아이의 탄생만으로도 무한한 사랑을 깨닫게 하는 축복이 된다. 태어난 아이가 옹알이를 시작할 때 그들의 얼굴에는 자연스레 함박웃음이 피어나고, 같은 소리를 수백 번 수천 번 계속해도 미소는 한결같다. ‘엄마’라는 단어를 말하기까지 그들은 얼마나 많은 반복과 연습이 있었을까? 그의 부모님도 다르지 않았다. 오랜만에 찾아뵌 부모님과 따뜻한 시간을 기대한 그는, 끊임없는 회상으로 반복되는 옛이야기의 지루함을 견디다 못해 어머니께 화낸 일을 떠올린다. 자신의 행동을 바꾸기 쉽지 않아 힘들다고 찾아온 분을 상담으로 만나게 된 오늘. 마흔을 갓 넘긴 나이의 그는 쳇바퀴 돌 듯 비슷한 이야기를 되풀이하는 부모님과 갈등이 계속되었다. 좋은 마음으로 다가간 만남이 피로감으로 쌓여버린 날들을 떠올리며 얼굴을 찌푸린다. 사랑하는 마음이 제대로 표현되지 못해 속상한 그와 함께 들어본 곡은 에릭 사티(Erik Satie, 1866-1925)의 <벡사시옹(Vexations)>이다. ‘짜증’(Vexations)이라 해석할 수 있는 이 곡을 작곡한 에릭 사티는 몇 가지 기행(奇行)으로도 유명하다. 몽마르트르의 카바레에서 피아노를 치
계절이 바뀔 때쯤이면 우리는 묘한 감정을 느끼곤 한다. 햇볕은 여전히 여름을 기억하게 하지만, 바람결엔 가을의 향기가 전해지는 듯하다. 내면을 들여다보기에 좋은 시간. 소위 ‘가을을 탄다’, ‘계절을 탄다’라는 말로 우리의 멜랑콜리(Melancholy -우울 또는 비관주의에 해당하는 인간의 기본적인 감정)를 설명하려 한다. 요즘 여러분의 마음은 어떠한가요? ‘탄다’는 ‘어떤 감정이나 상태를 타고 흐른다’ 또는 ‘정서에 영향을 받는다’라는 뜻으로 확장 해석할 수 있다. 사람의 마음도 계절처럼 변한다. 오늘의 공허가 내일의 설렘으로 이어지고, 어제의 상처가 불현듯 되살아나기도 한다. 그러한 내적 파동 속에서 늘 흔들리며 살아가고 있는 우리, 이 흔들림을 가만히 받아들일 때 음악은 언어보다 더 깊은 위로가 되어 다가오나 보다. 얼마 전 갑작스러운 사고로 다리를 다친 60대 건장한 청년 같은 중년을 만난 오늘, 그와 함께 삶의 의미를 묻고 답해보는 시간을 가진다. 평소 건강에 대해서는 자신감으로 충만한 그였지만, 생각지 못한 골절로 몇 주간 깁스하면서 자신을 새롭게 바라보게 되었다고 한다. 그 사유(思惟) 안에서 느낀 몇 가지의 감정, 그리고 잘한 것보다 잘못한 것
스메타나 현악 4중주 1번 – 불안 속에서 찾은 삶의 선율 우리는 고통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으며, 그것을 어떻게 마주할지에 대한 자유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불안과 상실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살아온 시간에 대한 의미를 한 번쯤 되짚어보게 된다. 오늘 만난 분이 바로 그러했다. 30대 후반, 평범한 직장인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는 언제부터인가 회사에서 남들의 작은 행동에도 지나치게 예민하게 반응하고, 집에서는 아이의 사소한 말투까지 분석하고 살피다 보니 늘 긴장의 연속이었다 한다. 스트레스가 얼마나 심했던지, 지난달부터는 이명현상으로 고생하면서 자신을 돌봐야 한다는 생각이 더욱 들었다며…. 무엇보다 일상이 무너질 것 같은 예감이 자주 드는 요즘 ‘자꾸만 불길한 생각이 드네.’라며 어두운 그림자가 하루를 채운다는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삶의 무게를 초과한 신호임을 알아차린 그는, 자신을 위한 휴식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에게 추천하고 싶은 곡은 베드르지흐 스메타나(Bedrich Smetana)의 현악 4중주 1번 E단조 ‘나의 생애로부터’(String Quartet No. 1 in E minor ‘From My Life’)이다. 스메타나는 1824년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 멈추지 말고 끝까지 나아가라 ‘당신의 삶을 위해, 당신은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나요?’ 누군가가 던진 질문에 찬찬히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진다. 귀한 선물을 받은 듯한 느낌으로 며칠이란 시간을 집중하며 보낸다. 누구보다 열심히 자신의 목표를 향해 달려왔고 여전히 잘하고 있다고 자부하지만, 요즘 들어 정체기에 머문 듯이 하는 일마다 더디고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기분에 힘들다는 내담자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철학적 사유를 좋아하는 분이라 덕분에 나 또한 깊은 사고의 숲으로 향하게 된다. 그를 위해 준비한 곡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교향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Op. 30이다. 이 곡은 슈트라우스가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의 철학 소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고 영감을 받아 1896년 작곡한 곡이다.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도입부에 사용되어 우리에게도 가깝게 다가오는 작품이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1864년 태어난 독일의 작곡가이자 지휘자이다. 당시 유명한 뮌헨 궁정악단의 호른 주자인 아버지와 양조업자의 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유복하게 자랐다. 아버지 덕분에 일찍 음악을 접
[대한민국예술신문] 부산시립합창단(예술감독 이기선)은 광복 80주년을 기념해 오는 9월 18일 오후 7시 30분 부산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영·호남 교류연주회 '송 오브 아리랑(Song of Arirang)'을 개최한다. 이번 공연은 부산·광주·대구시립합창단을 비롯해 해운대구립소년소녀합창단, 부산시립국악관현악단, 유나이티드 코리안 오케스트라 단원 250여 명의 출연진이 함께하는 대규모 무대로 꾸며진다. 총 6부로 구성된 임준희 작곡, 탁계석 작사 '송 오브 아리랑'은 진도아리랑·밀양아리랑·강원도아리랑 등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선율뿐 아니라 다양한 지역의 잘 알려지지 않은 30여 종의 아리랑을 집대성해 만든 대작이다. 합창과 서양악기, 국악기가 어우러져 다채롭고 웅장한 화음을 선사하며, 우리 민족이 걸어온 역사 속 ‘극복과 치유’의 메시지를 음악으로 풀어낸다. 특히 마지막 6악장에서는 전 출연진이 함께 새로운 시대, 미래를 열어가는 아리랑을 노래하며 ‘평화와 사랑’의 의미를 전한다. 이번 공연은 영·호남 교류연주회의 일환으로, 9월 5일 광주시립합창단(상임지휘자 임창은)을 시작으로 9월 18일 부산시립합창단(예술감독 이기선), 9월 25일 대구시립합창단(예술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