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 – 목표가 아닌 과정에서 의미 찾기 불면증으로 고생하던 청년이 조금 나아졌다는 반가운 소식에 덩달아 나도 기분 좋은 하루를 맞이한다. 그동안 전화로 꾸준히 상담해온 그는 더욱 편안하고 밝은 목소리로 인사한다. 고난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그와의 이야기는 오늘도 시작된다. 어릴 적부터 국가대표를 목표로 운동에 전념했다. 경제적 형편이 여의치 않아 트레이너조차 함께 할 수 없었던 상황, 그렇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준비했던 어느 대회에서 그는 생각지도 못한 실수로 패하게 되었다. 그간 쌓아 올린 명성은 그렇게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처참함을 경험하게 된다. 힘든 시간 속에서 ‘내 마음을 알아주는 누군가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그렇게 시절 인연은 우리를 만나게 했다. 부모님께 경제적 도움을 드리고 싶어 훈련 시간 외에는 공장에서 일해 번 돈을 한 푼도 쓰지 않고 어머니께 전했던 효자 아들, 그는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힘든 현실을 이겨나가야 한다는 강박에 자신을 스스로 더 강하게 몰아붙였다. 어느 날 열흘이 넘는 시간 동안 잠을 이루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러서야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한 분야에서 최고가 되면 현실의
엘가 – 당당히 나아가고자 하는 이를 위한 응원가 장대 같은 빗줄기가 차창을 쉴 새 없이 두드린다. 일기예보에서 비가 온다고 했지만 이렇게 폭우일지는 생각 못 했다. 갑자기 쏟아지는 강한 빗방울의 두드림이 긴장감으로 전해진다. 익숙한 것에 편안함을 느끼고 새롭거나 예기치 못한 일에 불안을 느끼는 나를 만나게 되는 순간. 비슷한 감정을 가진 젊은 직장인을 만났다. ‘나만의 고민이 아니구나’라는 공감이 안정감을 주는 분위기를 만든다. 그 안에서 ‘시도에 대한 실패의 두려움’을 편안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10여 년간 같은 업무로 때론 따분할 때도 있었지만, 편안함을 느끼며 살아오다가 회사에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맡게 되어 관리자로서 해야 할 역할을 제안받았다는 그, 처음에는 거절할 생각이었으나 이 일을 잘 끝내면 승진할 기회가 주어짐에 고민된다고 했다. 그가 느낀 가장 큰 두려움은 “낯선 도전에 실패하면 어떻게 될까?”였다. 새로운 역할이 본인에게 잘 맞을지에 대한 자신감이 부족했고 무엇보다 실패가 두렵다는 그는 어릴 적 기억을 조심스레 꺼내놓았다. 어머니의 퇴근 시간에 맞춰 식사를 챙겨드리고 싶어 볶음밥을 해놓았는데 칭찬은커녕 맛에 대한 부정적 평가와 어질
조지 거슈윈 – 너 자신이 되어라. 연일 계속되는 무더위에 시원한 것만 찾게 된다. 눈이 부신 햇살보단 그늘을 찾게 되고 속을 달래주는 따뜻한 차 한잔보단 아이스 커피를 주문하게 되는 날이다. 상황에 따라 좋아하는 것을 찾고, 결정하는 의지를 지닌 우리라지만 그렇지 못한 때도 있는듯하다. 오랜만에 만난 지인과 창밖의 장렬한 태양을 바라보며 시원한 카페에서 차가운 커피 한 모금에 행복을 느끼는 시간. “어린 시절을 생각해보면 뭐가 가장 먼저 떠올라?”라는 질문에 잠시 오래된 기억을 떠올리며 답을 찾고 있는데…. 종일 일하고 돌아온 엄마의 땀 냄새가 가득했던 치마폭으로 얼굴을 묻고 안겼던 기억이 떠오른다는 말을 전하는 그녀. 형제자매가 많았던 이유로 엄마와 둘만의 포근한 시간이 고팠고, 늘 양보해야만 했었던 2남 2녀의 중간, 그래서 외로움을 더 많이 느끼고 소외되었던 기억으로 가득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린다. 언니, 오빠는 그들과 다른 생각을 내비칠 때면 “그럼 너 혼자 하고 와, 우린 이거 할게.”라고 말해, 마치 어떤 원에서 밀려난 작은 점이 된 순간들로 차갑고 서운함으로 회상했다. 자신의 의견을 당당히 내세울 수 있는 사람으로 거듭나고 싶은데 쉽지 않다는
슈베르트 – 소외된 나에서 진정한 나로 나아가는 여정 구름마저 녹여 버릴 듯한, 뜨거운 태양에 눈이 부신 날이다. 그러나 햇빛의 강렬함과는 대조적으로 입꼬리도 눈매도 한껏 처져있는 모습이 어디선가 꼭 소나기를 만난 듯한 청년이 들어온다. 인사를 나누고는 앞에 놓인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말없이 들이켰다. 얼음 하나를 입에 물고 녹을 때까지 기다리는 듯한 모습이 감정의 평정을 찾고자 노력 중인 듯 보였다. 그에겐 몇 년간 사귄 여자친구가 있었다. 그녀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결혼을 생각하며 진지한 만남을 이어갔으나 여자친구와 그녀의 부모님 마음은 달랐다고 한다. 아직 안정된 직장이 없었던 그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셨고 그녀 또한 결혼까지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고 그의 마음을 거절했다. 그의 간절한 마음을 나누며 함께 들었던 곡은 슈베르트 Franz Peter Schubert <겨울 나그네> Die Winterreise D. 911이다. <겨울 나그네>는 슈베르트의 대표적인 연가곡으로 1827년 그의 나이 30세에 뮐러의 시에 곡을 붙인 24개 노래로 이루어져 있다. 사랑에 실패한 청년이 추운 겨울 연인의 집 앞에서 이별을 고하고 정처 없는 방랑의
페르난도 소르 – 서로 다름을 안아주는 연습 따스한 햇볕이 여름의 문을 열 듯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햇빛이 강렬하지만, 건물 뒤에 드리운 그늘은 서늘함을 머금고 있다. 이렇듯 우리는 일상에서 오는 서로 다른 상황을 마주하게 되는데 그것을 받아들이는 태도는 사람에 따라 다양하게 표현되는 듯하다. 40대로 보이는 아름다운 커플과의 만남으로 하루를 열었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그들은, 다름으로 인한 갈등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몰라 혼란스러워했다. 남자는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가정에서 자랐고, 여자는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환경에서 자랐다. 함께 살면서 연애할 때와는 다른 모습이 보이고, 서로에게 요구하는 것 또한 너무나 다르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결혼 전에는 나에게 없는 모습과 성향이 강렬한 이끌림이었지만, 이제는 다름으로 인해 불편하고 어색한 감정이 싹트기 시작한 것 같다고 한다. 서로 다른 곳을 향해있던 두 사람의 시선을 한곳에 모은 곡이 있다. 그 곡은 페르난도 소르 Fernando Sor <위안> L` Encouragement Op. 34이다. 이 곡은 ‘기타의 베토벤’이라 불리는 뛰어난 작곡가이자 기타 연주자인 소르(1778-1839)의
지아코모 마이어베어 – 배신의 아픔이 아닌 베품의 따뜻함 얼굴이 잔뜩 찌푸려진 젊은 직장인이 무거운 발걸음으로 들어온다. 이쁜 얼굴에 그늘이 가득한 그녀가 무슨 일인지 궁금했는데 먼저 말을 건넨다. “내 마음 같지 않네요! 세상 사는 게 왜 이리 힘든지….”라며 본인의 고민과 마음이 상한 이유를 전한다. 40대를 바라보는 나이에도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한 고등학교 시절 친구 Y를 만났는데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앞섰다고 한다. 본인이 일하는 직장에 자리를 알아봐 주고 함께 일하게 되었다. 처음 직장생활에 어려움이 크던 Y에게 많은 도움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던 탓인지, Y의 회사생활은 무리 없이 수년이 이어질 수 있었다. 그로부터 어느 날 상사에게서 승진의 기회가 있는 프로젝트 이야기를 전해 들은 Y는 별도의 상의도 없이 혼자서 진행한 것이다. 상사는 당연히 Y가 친구인 저랑 함께 할 거로 생각하고 말을 건넸지만, 금시초문이었다. 살짝 배신감이 들어 사실을 확인했더니, Y는 단독으로 진행할 의사를 보였다. 고등학교 때에도 함께 지내는 친구 없이 늘 혼자인 그녀인지라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느껴진 친구였다고 한다. 그런 친구가 자신의 뒤통수를 친 느낌이 들어
차이코프스키 – 이별을 위한 위로 가까운 이의 상실로 인해 우울함이 심하다며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전화가 연결되었다. 사회에서 만났지만 자매 이상으로 가깝게 지낸 친구가 얼마 전 세상을 떠났다는 이야기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일 년 전 사별한 남편과 금술이 너무 좋아 그의 빈자리에 슬픔이 컸던 친구가 겨우 일상을 회복하자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 치료를 받던 중 세상을 떠난 그녀를 생각하면 가슴 한 켠이 텅 빈 것 같다는 공허함에 자신의 감정을 털어놓았다.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고 뭘 해도 즐겁지 않다는 그녀, 우울한 기분이 들 때는 무언가를 하려는 마음을 잠시 내려놓는 것도 좋을듯하다. 서둘러 빠져나오려는 노력보다는 이럴 때 나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기회로 생각해보면 어떨까 한다. 그녀와 함께 듣게 된 곡은 차이코프스키의 <우울한 세레나데> Sérénade mélancolique Op. 26이다.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그의 첫 작품으로 1875년 차이코프스키가 35세 때 작곡하여 레오폴드 아우어에게 헌정한 곡이나 초연은 아돌프 브로드스키가 했다. 그는 아우어가 공연하는 것을 보고 ‘훌륭한 표현력, 사려 깊은 기교, 시적인 해석’이라며
보로딘 – 아내를 위한 사랑의 선율 갑작스러운 소나기와 큰 울림의 천둥소리에 놀라 가슴을 쓸어내리던 중 한 통의 전화가 울린다. 바로 상담할 수 있는지를 물어보는 중년남성의 목소리가 간절하게 떨렸다. 그의 아내가 자궁암이라며…. 잠시 말을 잇지 못하고 울먹이는 듯했다. “명랑하고 쾌활한 성격의 초등학교 선생님인 아내는 날마다 즐거운 사람이었죠. 그런데 건강검진 받은 후 암이라는 말을 듣고 하늘이 무너지는 게 이런 거구나”라며 그날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운동을 좋아하고 다른 사람들과도 잘 어울려 평생 몸도 마음도 건강할 것만 같았던 아내가 수술실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그동안 남편으로서 나는 어땠나? 뒤돌아보니 잘한 것이 하나도 없더라’라고 한다. “아내가 음악을 좋아하는데, 함께 들으며 이야기 나눌 만한 곡이 없을까요?” 그분에게 권해드린 곡은 보로딘(BORODIN) 현악 4중주 2번 D장조 (String Quartet No. 2 in D major) 3악장이다. 작곡가 알렉산드르 보로딘(1833~1887)은 아버지가 귀족이었지만 사생아로 태어나 귀족 아버지의 성이 아닌 농노의 성을 따라야만 했다. 어린 시절 어머니는 보로딘에게 첼로 레슨 등 음
파니 멘델스존 – 원망하지 않고 능력을 발휘하는 법 새싹의 성장을 재촉하는 비가 나뭇잎을 격려하듯 토닥인다. 고민이 많은 듯 보이는 중년 여성 한 분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은데 소문이라도 날까 조심스러워 말하지 못한 일이 있다며 나를 찾아온 것이다. 삼 남매 중 맏이로 태어나 부모의 말이 곧 법이라 생각하며 살았다고 한다. 대학 졸업 후 유학을 가려고 준비하는데 막내 남동생이 어학연수를 가겠다고 하여 꿈을 접게 된 이야기였다. 어머니는 “아들을 낳지 못하면 천덕꾸러기의 며느리로 살아야 하는 시대였지, 막내아들이 아니었으면 나는 시댁에서 쫓겨났을 거야!”라며…. 본인의 존재 의미를 막내아들에게 두며 살아오셨다. 그래서인지 어떤 상황에서나 어떤 결정에서 어머니에겐 아들이 최우선이었다. 그렇게 귀한 남동생이 지금 많이 아프다며 눈물을 흘린다. 창문에 흐르는 빗줄기가 그녀의 마음에 내리듯…. 흙냄새와 풀냄새를 가득 머금은 봄비가 그녀에겐 슬픔과 안타까움이 가득한 온기로 뿜어내는듯했다. ‘내가 그동안 유학하지 못한 아쉬움과 원망을 마음속에 담고 있어 동생이 아픈 건 아닌지….’ 자신의 나쁜 마음에 대해 후회가 된다고 했다. 빗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풀랑크 – 힘든 나를 위로하는 토닥임 사랑을 표현하고 나누는 날들이 많은 5월이지만, 표현하고 싶어도 표현할 수 없는 이들도 있다. 사랑하는 이가 멀리 있다며 눈시울을 적시는 만남으로 사랑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시간이었다. 평소 늘 웃으며 걱정 하나 없을 것 같은 70대 고운 분이 조심스레 고민을 꺼내 놓았다. “내 평생 살아오면서 장성한 자식이 아픈 지금이 가장 힘든데, 이때 떠오르는 얼굴이 있어요.” 어릴 때 본인을 낳고 얼마 되지 않아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한다. 아버지는 재혼하여 5남매를 낳으셨지만, 본인이 혹여나 서운함이 있진 않은지 늘 주목하고 관심을 가져주셨다며 많은 사랑을 받아 감사하다고 한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새어머니의 입장에서 생각하게 되었다며…. 아버지와 결혼하였으나 본인의 존재로 인해 새어머니는 온전한 사랑을 받지 못하는 처지였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먼저 배려하고 생각해주는 것이 느껴졌다고 한다. 철이 없던 시절 때론 새어머니의 행동에 ‘내가 친딸이 아니어서 그러나?’라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지만, 나이가 들어 아이를 낳고 키우다 보니 그렇게 진심으로 대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나의 새어머니밖엔 없다고 하며…. 돌아가실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