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 닐센 – 이해의 확장 봄은 참 오묘하다. 아직 겨울인가 생각하다 벌써 여름이 되었는지 때로는 계절을 종잡을 수가 없다. 이 계절 사이에 끼어 있는 봄, 예측하기 어렵기에 유독 설레는 걸까? 아들 둘 키우는 엄마가 나에게 상담을 신청하며 찾아왔다. 봄 날씨만큼이나 알기 힘든 게 아들의 마음이라며….‘정말 이해가 안 돼요.’, ‘그 둘의 마음을 도저히 알 수가 없어요….’라는 말이 계속 반복되어 들린다. 아들 둘의 성향은 완전히 반대였다. 큰아들은 뭐든 몸으로 부딪치며 일단 해보는 성향이라 ‘어떤 문제라도 만들지는 않을까?’ 항상 걱정된다고 하고, 작은아들은 뭘 하나 하려면 열두 번도 더 생각하는 아이라 속에서 불이 난다고 했다. 이 두 아들 키우느라 자신의 영혼까지 늙겠다며 힘듦을 토로했다. 대화를 나누던 중 그녀의 성장기에 겪었던 이야기로 이어졌다. 자매로 자란 그녀는 그중 첫째로 늘 엄마의 기대에 부응해야 하는 처지였고 둘째인 동생은 자유롭게 자기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아이였다고 한다. 그녀의 엄마는 ‘둘이 반씩 섞었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셨다고 하며 나도 똑같은 심정이라 했다. 잠시의 시간이 흐른 뒤 ‘아하, 엄마의 심정이 이런 심정이었
베버 음악에서 배우는 존중 누구나 가끔 혼자 있고 싶은 시간이 존재한다. 그런 날은 촉촉한 봄비가 오는 날일 수도 있고, 우연히 길에서 들리는 음악 소리에 발길을 멈추는 날이 될 수도 있다. 마음이 이유 없이 멈추는 날이면 난 집 근처 조용한 카페를 찾는다. 그곳에 가면 나와 마음의 결이 비슷한 주인이 이름 모를 커피 한잔을 말없이 건넨다. 그러던 어느 날 옆 테이블에서 중년 여성 한 분이 언젠가 내가 수업하는 모습을 보았다며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수업을 듣고 난 후, 꼭 한번 만나고 싶었던 사람이라는 말에 감사함이 스며 들어온다. 그분 역시 혼자 커피를 마시러 왔기에 즉석에서 함께 하는 시간이 자연스레 이뤄졌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신기하게도 결혼한 해가 같았다. 결혼이라는 단어에서 시작하여 남편분의 좋은 점, 불편한 점에 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양치할 때 치약을 중간부터 짜는 남편과 끝부분부터 깔끔하게 짜는 아내, 옷을 벗어 편하게 어딘가 툭 걸쳐놓는 남편과 옷걸이에 정리하는 아내, 식사를 마치고 여유를 즐기는 남편과 일단 치워놓고 싶은 아내…. 어느 하나 맞는 구석이 없다며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런 그녀와 함께 음악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
모차르트가 전하는 폭삭 속았수다 벚꽃이 만개하고 바람이 불 때면 벚꽃 비가 날린다. 따뜻한 봄바람이 마음을 간지럽히듯 추억들이 봄 내음에 실려 마음에서 살랑인다. 살아오면서 추억 하나쯤 떠올린다면, 누구 할 것 없이 가족이 먼저 떠오르지 않을까? 어느 날 한 통의 전화가 온다. 마음이 아프고 우울해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며…. 2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의 기일이 며칠 뒤라며 벚꽃이 필 때면 아버지가 너무 보고 싶어 눈물을 흘렸다 한다. ‘아버지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무엇일까요?’라는 질문에 ‘벅찬 사랑’이라 대답한다. 얼마 전 ‘폭삭 속았수다’ 드라마를 보는 중, 등장인물 관식이가 본인의 아버지와 비슷하다며 통곡하듯 울었다고 아버지의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가족들에게 헌신적인 사랑을 전한 아버지였건만, ‘긴병에 효자 없다’라는 말이 있듯, 편찮으신 지난 10여 년 동안 어느새 가족들은 점점 지쳐 가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아버지께 괜스레 짜증도 내고, 보내드리기 전까지 정성을 다하지 못한 게 자식으로 정말 후회된다 했다. 아버지와의 추억을 생각하며 지난번 연주회 가기 전 곡에 대해 잠시 설명해주었던 나의 이야기가 생각났다며 “지난번 연주회에 함께 갔
호른의 따뜻함으로 전하는 격려 중학교에 다니는 남학생이 어느 날 상담으로 엄마 손에 이끌려 나를 찾아오게 되었다. 유명하다는 상담센터를 인터넷에서 찾아 몇 군데 가보아도 달라지지 않았다며 어떤 질문에도 답을 않던 그는 상담이 필요 없다고 말한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가 말문을 열었다. ‘난 엄마 친구 아들이 젤 싫어요’ 이유가 뭔지 물어보았더니 ‘엄마 친구 아들은 뭐든 다 잘하거든요!’ 그의 대답을 들으니 한동안 힘들었을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참 많이 힘들었구나’ 하며 잠시 침묵이 흐르다가 그는 소통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는지, 자신의 마음을 이해받았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부모님의 기대치를 따라갈 수 없는 자신이 싫어 모든 것이 의미 없는 것 같다며 우울해했다. 그러면서 나지막하게 들려오는 호른의 소리에 관심을 보이며 어떤 악기의 소리인지, 무슨 곡인지 궁금해했다. 그 곡은 바로 모차르트 <호른 협주곡 3번> K.447 2악장 Romance, Larghetto였다. 모차르트는 잘츠부르크 궁정악단의 호른 주자였던 요제프 로이트게프Joseph Leutgeb를 위해 호른 협주곡 4곡을 작곡했다. 그는 모차르트와
하이든에게 배우는 유연한 공감 학생이 있는 집에서의 아침 시간이란, 1분 1초조차 다투는 긴박한 시간일 수 있다. 직장인들도 역시 그러할 것이다. 시간 맞춰 버스나 지하철을 타야하니 아침을 챙겨 먹고 간다는 것은 보기 드문 학생과 부모의 모습인 것 같다. 우리 집만 해도 그러하다. ‘10분만 일찍 일어나도 밥을 챙겨 먹을 수 있을 텐데’라는 중얼거림은 나의 아침 단골 메뉴였다. 빈속으로 등교하거나 출근하는 가족들의 뒷모습을 보는 주부는 누구랄 것 없이 온종일 걱정되고 마음이 편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고민이 있는 나는 음악을 들으며 작은 지혜를 얻었다. 나에게 도움을 준 음악, 바로 하이든 Franz Joseph Haydn <교향곡 45번> Symphony No. 45 in F sharp minor 4악장이다. 하이든은 에스테르하지 가문의 음악감독으로 30년 가까이 일한 음악가이다. 당시 음악감독은 귀족의 하인이나 다름없는 직책으로 귀족이 원하는 음악을 작곡하고 연주하며 악단의 단원들도 책임지고 악기도 관리하는 만만치 않은 일과를 소화해야 했다. 에스테르하지 후작은 여름 휴가 기간에 베르사유 궁전을 보고 감동하여 지은 노이지들러 호수에 있는 별궁으
브람스와 함께하는 소중한 인연 햇볕이 내리쬐는 요즘에는 어느새 봄의 향기가 느껴진다. 새싹이 돋아나는 계절에 누군가를 만나 새로운 인연을 시작하는 사람들도 있고, 새 학기, 새 친구를 만나는 아이들도 있듯 새로움이란 이름이 우리들의 일상에 스며드는 시기이다. 여러분은 그동안 만난 사람 중 고마운 사람이 있다면 누구일까요? ‘아! 그 사람을 생각하면 진짜 감사하지….’라고 기억나는 분, 혹시 있을까요? 어느 날 무거운 짐을 양손에 들고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려는데 어떤 학생이 “제가 눌러 드릴까요? 몇 층 가세요?”라며 버튼을 대신 눌러주었다. 새로 이사 간 아파트라 아는 사람도 없었는데, 먼저 손을 내밀어준 학생이 정말 고마웠다. 그 후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있었다. 따뜻한 눈빛으로 인사를 나누고는 그가 잘 자라길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했다. 이렇듯 우리는 일상에서 마주하는 작은 만남에서 삶의 전환점을 만들어주는 만남까지 많은 인연을 만나게 된다. 나 역시, 오늘의 내가 있기까지 많은 그리고 귀한 만남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인연들에 의해 나 또한 서서히 성장하고 변화되고 있었으리라…. 정경화 바이올리니스트의 연주를 보고 음악을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처럼, 아름답고 푸른 3월을 “3월이 시작되었구나!” 했는데 벌써 2주가 지났다. 새로움이라는 의미로 분주한 3월이다. 아이들이 새 학교, 새 학기를 맞이하는 시기가 되면 담임 선생님이 어떨까? 새로운 친구들과는 잘 적응할까? 혹시 학기 초 학급 임원 선출이 있는데 어떤 결과가 나올까? 하는 고민 등…. 엄마의 자리에서 고민과 걱정을 내려놓지 못하는듯하다. 이런저런 생각들과 함께 따뜻한 커피 한잔에 아침의 여유를 누리는 나에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내가 우리 아이 나이였을 때 (저만할 때) 부모님의 지적이나 충고가 반갑지 않았던 기억이 스쳐 지나간다. 특히 장녀였던 나는 동생들에게 모범이 되어야 한다며 더욱 강하게 행동의 제약을 받았던 것 같다. 그때 나는 부모님에게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봐주고 내가 하는 일을 믿어주고 기다려주기를 원했었는데 막상 내가 엄마가 되고 나니 좋지만은 않았던 엄마의 모습과 그다지 다르지 않은 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몇백 년 전에도 부모의 고민은 같았나 보다. 아들이 궁정 음악가와 같은 안정적인 직업을 구했으면 하는 모차르트의 아버지도, 아들이 모차르트처럼 유명한 음악가가 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5번 <봄>과 함께 내 마음의 봄을 찾아라. 사람들과의 만남 속에서 듣는 말이 있다. “보기에는 걱정 하나 없을 것 같은 너도 걱정거리가 있니?” 다른 사람들에겐 아무 걱정 없이 잘 먹고 잘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 마음에는 겨울 속 찬바람으로 에이는 듯한 시간이 있었다. ‘어떻게 나에게 이런 일이….’ 하는 힘든 일이 다가온 것이었다. 누구에게 말할 수도 없고 말하고 싶지도 않은 일이라 혼자 전전긍긍할 때였다. 그때 자주 들으며 희망을 잃지 않게 도와준 곡이 있다. ‘너는 헤쳐나갈 힘이 있어….’ ‘나는 청력상실도 이겨내고 음악가로 나아갔잖아! 너도 이겨낼 수 있어.’ 라고 말해주듯 바이올린 선율과 피아노 선율이 위로해주는 듯한 곡, 바로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5번 <봄> Op. 24이다. 이 곡을 작곡할 당시 1801년 즈음은 베토벤이 음악적으로 큰 성장을 거듭하는 시기였다.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영향 아래에서 벗어나 그의 개성을 표현할 때였고, 귀족들의 후원도 받고 악보도 출판하여 생계 걱정 없이 피아니스트로 작곡가로 인정받고 있던 때였다. 반면 혼자 감내하기에 벅찬 청력상실을 느끼고 힘들어하던 때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