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민의 마음 클래식

베버 음악에서 배우는 존중


누구나 가끔 혼자 있고 싶은 시간이 존재한다. 그런 날은 촉촉한 봄비가 오는 날일 수도 있고, 우연히 길에서 들리는 음악 소리에 발길을 멈추는 날이 될 수도 있다. 마음이 이유 없이 멈추는 날이면 난 집 근처 조용한 카페를 찾는다. 그곳에 가면 나와 마음의 결이 비슷한 주인이 이름 모를 커피 한잔을 말없이 건넨다. 그러던 어느 날 옆 테이블에서 중년 여성 한 분이 언젠가 내가 수업하는 모습을 보았다며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수업을 듣고 난 후, 꼭 한번 만나고 싶었던 사람이라는 말에 감사함이 스며 들어온다. 그분 역시 혼자 커피를 마시러 왔기에 즉석에서 함께 하는 시간이 자연스레 이뤄졌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신기하게도 결혼한 해가 같았다. 결혼이라는 단어에서 시작하여 남편분의 좋은 점, 불편한 점에 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양치할 때 치약을 중간부터 짜는 남편과 끝부분부터 깔끔하게 짜는 아내, 옷을 벗어 편하게 어딘가 툭 걸쳐놓는 남편과 옷걸이에 정리하는 아내, 식사를 마치고 여유를 즐기는 남편과 일단 치워놓고 싶은 아내…. 어느 하나 맞는 구석이 없다며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런 그녀와 함께 음악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 곡 아세요?’하고 질문했다.

 

그 곡은 바로 베버 Carl Maria von Weber <무도회에의 초대> Invitation To The Dance, Op. 65 이다.

독일 국민 오페라의 창시자로 불리는 카를 마리아 폰 베버(1786-1826)는 독일 오페라의 전통을 세운 작곡가로서 중요한 인물인 동시에 지휘자로도 유명하다. 그는 음악 사상 최초로 지휘봉을 사용하였으며, 근대 지휘법의 확립에도 크게 기여했다. 베버가 오페라에서 자신의 이름을 드높일 수 있었던 것은 극단의 음악 감독을 맡았던 아버지로부터 음악을 배워 극과 음악에 대한 경험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사랑하는 사람에게 마음을 전하는 방법 또한 특별했다. ‘화려한 론도(Rondo Brillante)’를 원제로 한 피아노곡인 이 곡을 작곡하고 직접 다음과 같은 해설을 덧붙여 아내에게 생일 선물로 헌정했다. 이 곡은 특유의 왈츠 형식을 구사하는 동시에 표제적인 줄거리를 사용해 큰 인기를 얻었다.

 

“어느 무도회에서 한 신사가 젊은 숙녀에게 다가가 춤을 청한다. (첼로)

그녀는 수줍음이 많아 처음에는 얼굴을 붉히며 거절한다. (클라리넷과 여러 관악기)

그러나 신사가 공손히 다시 요청하자 승낙한다. (첼로)

한동안 그 자리에서 대화를 나누다가 신사는 그녀를 이끌고 플로어로 나가 음악이 시작되기를 기다린다. 이윽고 화려한 무곡과 함께 춤을 추기 시작한다.

흥겨운 시간이 흐른 뒤 춤이 끝나면 신사는 그녀에게 고마운 뜻을 전하고 두 사람은 퇴장한다.”

 

1841년 베를리오즈가 관현악 버전으로 편곡한 곡도 유명하니 비교해서 들어보면 좋을 것 같다. 마지막에 곡이 끝난 것 같은 부분이 있다. 그러나 음악은 끝나지 않았다. 첼로의 음성으로 신사의 인사가 있고 숙녀의 인사가 오고 간 후 음악은 온전히 끝난다. 나의 감정 표현도 중요하지만, 상대의 의견도 물어보는 존중과 배려가 돋보이는 곡이다.

 

곡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녀는 남편과의 연애 시절을 떠올리며 남편이 쑥스러워하며 마음을 표현했던 일, 부모님께 결혼 허락을 받기 위해 애쓴 일 등 아름다운 추억을 떠올리며 ‘그땐 그랬었는데….’ 라며 회상했다. 그러면서 일상에서 불편함을 참지 못하고 잔소리한 본인의 변한 모습에 관해 이야기하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땐 이쁘게 보이고 싶어 상대가 듣고 싶어 하는 말만 하고 맞장구도 잘 쳤는데 이제는 ‘너는 그래라, 나는 싫다!’라는 퉁명함으로 대한 것을 뉘우쳤다.

 

‘남편의 마음을 들여다보려 하지 않고 내 마음만 바라보려 했네요….’

 

이야기 속에서 남편의 변한 모습과 보기 싫은 모습만 나무라고 정작 내가 변한 모습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못한 자신의 어리석음에 대해 알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는 서로에게 소중한 존재임을 때론 일상이라는 이름으로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고 소홀히 대했던 것 같다. 그녀는 ‘오늘은 집에 가서 맛있는 반찬을 해서 기다리고 싶어요’라며 자리를 떴다. 함께한 소중한 날들을 되짚어보며 서로의 관심과 사랑을 확인하고 새로운 추억을 만들기로 하였다.

 

나는 그녀와 만날 때의 표정과 헤어질 때의 표정이 사뭇 다른 것을 보며 같은 상황임에도 태도에 따라 마음이 저렇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혼자만의 시간을 원해 커피 마시러 갔지만, 누군가와 소통을 통해 좋음으로 변화하는 모습 덕분에 나도 덩달아 기분 좋고 보람된 시간을 보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행복은 때론 우연히 생각지 못한 곳에서 찾을 수 있는 감동이 있는 것 같다. 그 행복은 상황을 어떻게 대하는가에 대한 나의 태도에서 나온다는 것을 그녀 덕분에 또 한 번 깨닫게 된다. 행복은 언제, 어디서나 존재하고 있으니 나의 것으로 누리길…. 상대의 의견과 마음에 귀 기울여주고 서로 존중하고 존중받는 연습을 베버의 음악을 통해 배운다. 누군가와 마주하는 이 순간, 진심으로 대하고 마음을 나누며 행복을 발견하는 하루가 되시길 바란다.

 


 

 

최영민 작가

경북대 예술대학 음악학과 석사

대구한의대 치유과학과 박사과정중

전 대구과학대학출강

법무보호복지공단 대구지부 심리위원

아카데미 예송 대표

'마음이 머무는 클래식' 진행

2024 대한민국 眞心예술대상 수상

 

 

 

[대한민국예술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