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델스존 – 편견에서 자유로 나아가는 용기
파란 하늘에 흰 구름이 선명한 색상의 대비를 드러내는 맑은 날이다. 깔끔한 스포츠형으로 머리 모양을 한 대학생이 ‘똑똑’ 노크와 함께 말없이 들어와 조심스레 인사를 한다. 누군가의 소개로 만난 그는 본인의 이야기를 어떻게 전해 들었는지 먼저 물었다. 이름, 나이, 성별 말고는 듣지 못했다고 하니 안심한 듯 편안하게 이야기를 시작한다.
할아버지, 아버지 모두 전문직으로 3대째 대를 이어가길 바라는 집안의 손자인 그는 무거운 마음을 드러낸다. 어른들의 바람을 저버리고 자신이 하고픈 공부로 진로를 결정한 아들이 못내 안타까운 어머니는 대학교 2학년인 그에게 지금도 이렇게 말한다고 그는 전한다.
‘아직 늦지 않았어.’
고등학교 때 ‘아이 성적이 왜 이리 좋지 않냐? 무엇이 문제냐?’라고 할아버지께서 부모님을 불러 야단치시는 모습을 자주 지켜본 그는 반항심에 오히려 할아버지의 뜻에 함께할 수 없었다고 하며 고개를 떨군다.
‘저 집안은 머리가 좋은 집안이야. 당연히 할아버지의 뒤를 아버지가 이은 것처럼, 아버지의 뒤를 또 아들이 이어가겠지.’라는 주변 사람들의 말에 자신을 잃어가고 가정의 전통을 잇지 못하는 죄책감에 노심초사하는 어머니께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한다.
집안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해 힘들어하는 그와 함께 들어본 곡은 멘델스존 <피아노 3중주 1번> Piano Trio No. 1 in d minor, Op. 49이다. 이 곡은 1839년에 작곡되었으며, 낭만주의 시대 실내악의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슈만은 이 작품을 ‘베토벤 이후 최고의 피아노 삼중주’라고 평했고, 고전 음악에서 낭만 음악으로의 가교역할이 돋보이는 곡이다.
멘델스존은 4살 때 피아노를 치고, 8살 때 작곡을 시작했다. 15살 이전에 실내음악 그리고 협주곡 등 수준 높은 작품들을 선보이며 19세기의 모차르트라고 불렸다. 클래식 작곡가 중 최고의 금수저라 불리는 인물로 철학자 모제스 멘델스존의 손자이자 부유한 은행장의 아들로, 그는 어린 시절부터 음악을 포함해 최고 수준의 교육을 받았다. 아버지에게서 오케스트라를 생일 선물로 받을 정도였으니 다른 사람들에게 부러움을 사기에 충분했고, 그 질투의 중심에 바그너가 있다.
26살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로, 작곡뿐만 아니라 지휘로도 큰 발자취를 남기고 그의 오케스트라를 유럽 최고의 오케스트라로 성장시켰다. 그가 38살 일찍 세상을 떠난 이후, 독일 음악계는 리스트와 바그너가 이끌어가고 있었고 이들은 멘델스존에 대한 평가가 그리 긍정적이지 않았다. 대부분 음악가가 어려운 환경이나 사회적 장벽을 뛰어넘어 자신들의 길을 개척한 반면, 멘델스존은 부모의 지원을 받아 어린 시절부터 탄탄대로를 걸었다. 그렇기에 바그너는 ‘곡이 가볍고 깊이가 없다.’라는 평가를 했고, 이런 평가는 독일 국민에게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었다. 꽤 오랫동안 이런 평가가 독일 내에서 지속된다.
베토벤의 뒤를 이어 고전과 낭만의 균형을 갖춘 최초의 작곡가는 멘델스존이라 할 수 있다. 슈만은 이런 멘델스존의 음악에 대해 ‘자신이 살던 시대의 모순을 정확하게 꿰뚫어 보고 그 모순을 화해시키려 했다.’라고 말했다. 그의 곡은 자유롭게 흐르는 낭만 속에 탄탄한 화성의 색채가 빛난다.
멘델스존의 음악과 삶의 이야기를 나누며 그는 4악장의 음악 중 1악장은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울림이 있고, 2악장의 선율은 아픈 마음을 대신 말해주고 보듬어주는 느낌이 든다며 자기 생각을 풀어나갔다. 각자 다른 경험을 기반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마주하기란 쉽지 않지만, 남들의 기준과 기대에서 벗어나 마음속에서 자연스레 만들어진 열정으로 살려 다짐하는 그를 만난다.
‘지금 겪고 있는 이 어려운 순간들도 결국 네가 진정으로 원하는 길을 찾아가는 과정의 한 부분이야. 그 길을 걷는 것 자체가 이미 큰 용기란다.’라는 말에 자신이 듣고 싶었던 말이고 늘 마음속으로 되뇌는 문구라고 했다.
강렬한 리듬과 서정적인 첼로 선율이 함께하는 1악장을 들으며 생각을 정리해보았다며…. 폭풍우처럼 몰아치는 자신의 감정을 정리하고 할아버지와 부모님께 자신의 선택이 가진 ‘의미와 가치’에 관한 이야기를 화내지 않고 솔직하게 말해야겠다고 한다.
누구나 부러워하는 넉넉한 집안의 아들로 태어나 경제적인 고통 없이 살았지만, 멘델스존만이 겪고 견뎌야 했던 고민과 고뇌가 있었을 것이다. 굴곡진 삶을 살지 않아 음악이 가볍다는 편견을 넘어 다양한 감정과 새 시대를 열어가는 도전을 향해 용기 있게 나아간 음악을 들으며 절제된 감정과 지적인 균형을 배운다.
자신의 선택으로 진정한 자유를 실천하는 그를 응원하며, 편견을 깨고 우리의 다양한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멘델스존의 음악이 선물하는 따스하고 섬세한 위로를 전한다.
“새는 알 속에서 빠져나오려고 싸운다.
태어나기를 원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헤르만 헤세-
최영민 작가
[학력]
경북대 예술대학 음악학과 석사
대구한의대 치유과학과 박사(ABD)
[경력]
전 대구과학대학출강
법무보호복지공단 대구지부 심리위원
아카데미 예송 대표
'마음이 머무는 클래식' 진행
[시상]
2024 대한민국 眞心예술대상 수상
[저서]
'마음이 머무는 클래식' (에듀래더 글로벌 출판사, 2025)
[대한민국예술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