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케스트라의 튜닝이 끝나고 지휘자가 포디움에 오르는 순간, 적막은 곧 거대한 에너지의 폭풍으로 변한다. 여기, 악보라는 평면의 지도를 입체적인 소리의 건축물로 치환하며 한국 클래식계에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하고 있는 지휘자 박해원이 있다. 독일 라이프치히 음악대학을 거쳐 독일 만하임 국립음대까지 정통 지휘법을 수학한 그는, 서구의 클래식 문법을 완벽히 체득하면서도 그 안에 한국적 열정을 녹여내는 독보적인 해석력을 보여준다. 오페라와 교향곡을 종횡무진하며 ‘예술상’을 거머쥔 그는 이제 단순한 테크니션을 넘어 음악의 본질을 탐구하는 구도자의 길을 걷고 있다. 교향곡이 고수하는 준엄한 정통성부터 오페라가 뿜어내는 탐미적인 긴장감, 나아가 현대 음악의 미로 같은 난해함까지, 그의 지휘봉 끝에서 탄생하는 선율은 언제나 명료하면서도 뜨겁다. <대한민국예술신문>은 이 시대가 주목해야 할 마에스트로 박해원을 만나, 그가 조율하는 음악적 이상향과 포디움 너머의 진솔한 이야기를 담았다. [편집자주] 예술적 근원: 침묵 속에서 설계한 소리의 우주 1. [예술의 시초] 수많은 악기 중 ‘지휘’라는, 소리를 직접 내지 않으면서도 모든 소리를 지배하는 고독하고도 장엄한 길을
예술은 언어를 넘어 영혼을 울리는 힘이 있다. 여기, 4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무대 위에서 찬란한 빛을 발하며, 서양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클래식 무대에 ‘한국 가곡(K-가곡)’의 얼을 심어온 진정한 프리마돈나가 있다. 1993년 네덜란드 왕립음악원 최고학부 전문연주자과정을 한국인 최초로 수석 졸업하며 유럽 무대를 호령했던 소프라노 임청화. 그는 단순한 성악가를 넘어 우리 가곡의 세계화를 이끄는 선구자이자, 시의 언어로 세상을 노래하는 시인이며, 따뜻한 마음으로 후학을 길러내는 백석대학교 문화예술학부 교수다. 데뷔 40주년이라는 거대한 산을 넘고도 여전히 새로운 예술적 영감을 향해 나아가는 임청화 교수. 그가 걸어온 경이로운 음악 인생과 깊은 내면의 철학을 <대한민국예술신문>이 직접 만나 들어보았다. [편집자주] ■ 소프라노 임청화 교수 (현 백석대학교 문화예술학부 교수) ○ 학력 및 수학 • 숙명여자대학교 음악대학 성악과 졸업 • 네덜란드 왕립음악원 최고학부 전문연주자과정(U.M) 한국인 최초 수석 졸업 및 오페라과 졸업 • 단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뮤지컬·연극 석사(M.A) • 백석대학교 신학대학원(M
2026년 3월 5일 11시 수성아트피아 소극장, 첼로 양성원 연주 후 인터뷰 무대 위에서 울리는 첼로의 음색은 한 인간의 시간을 담는다. 깊은 울림 속에는 시간과 기억, 그리고 인간의 감정이 켜켜이 쌓여 있다. 첼리스트 양성원의 연주는 바로 그런 음악이다. 그의 연주는 단순한 해석이나 기교를 넘어 때로는 깊은 고독처럼, 때로는 삶을 끌어안는 따뜻한 숨결처럼, 삶과 존재에 대한 사유를 담고 있다. 이날 그가 선보인 프로그램의 주제는 ‘낭만’이다. ‘낭만의 원형(바흐) - 낭만의 확장(카사도) - 낭만적 표현의 극대화(코다이)’라는 흐름을 통해 시대를 관통하는 ‘낭만적 정신을 조명한다. J. S. Bach | Cello Suite No. 1 in G major, BWV 1007 G. Cassadó | Suite for Solo Cello Z. Kodály | Sonata for Solo Cello, Op. 8 그러나 그가 말하는 낭만은 특정 시대의 음악 양식을 지칭하는 개념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 존재의 가장 근원적인 감정에 가까운 것이다. “우리는 낭만을 흔히 슈만이나 브람스 같은 작곡가와 연결해 생각합니다. 하지만 바흐 음악도 저에게는 낭만적인 부분이 있고
인간의 삶은 전반부와 후반부의 결이 다르다. 젊은 시절 우리는 밖을 향해 달린다. 능력을 증명하고, 자리를 확보하고, 무엇인가를 이루기 위해 스스로를 밀어붙인다. 성취는 분명한 목표가 되고, 속도는 미덕이 된다. 그러나 어느 순간, 질문의 방향이 바뀐다. ‘얼마나 이루었는가?’가 아니라 ‘나는 누구로 살아왔는가?’라는 물음이 고개를 든다. 중년에 이르러 많은 이들이 경험하는 이 전환은, 외적 성공에서 내적 성찰로 이동하는 정신의 구조적 변화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한 음악가를 떠올리게 된다. 루트비히 판 베토벤. 그의 작품 세계는 통상 초기·중기·후기로 구분되며 각 시기는 분명한 양식적 특징을 지닌다. 그러나 이 구분은 단순한 작곡 기법의 발전 단계가 아니다. 그것은 한 인간의 정신이 외부 세계의 질서를 학습하고, 그것과 투쟁하며, 마침내 자기 내면으로 침잠해 가는 발달의 궤적과 닮아 있다. 초기 작품에서 베토벤은 고전주의의 형식과 균형을 충실히 흡수한다. <피아노 소나타 제8번>(Piano Sonata No.8 C minor ‘Pathétique’)은 격정적인 정서를 드러내면서도 여전히 명확한 구조 안에 서 있다. 이는 사회적 언어를 습득하고,
동요로 시작해 오페라에 이르다. 테너 김동녘이 2월 10일(화) 오후 7시 30분, 대구콘서트하우스 챔버홀에서 리사이틀 무대에 오른다. 이번 공연은 대구콘서트하우스 기획 공연으로 마련되어 관객을 만난다. '동요에서 오페라까지'…테너 김동녘, 음악과 인생을 노래하다 테너 김동녘에게 음악은 삶의 흐름이자 성장을 이끄는 힘이었고, 지금도 그는 그 여정을 무대 위에서 이어가고 있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그가 음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부터, 성악가로서 겪은 전환점, 그리고 다가오는 리사이틀에 이르기까지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그의 음악 여정은 동요에서 시작되었다. “어려서부터 공부보단 노래부르는 걸 좋아했어요”라는 그는 초등학교 시절 담임교사의 권유로 동요를 접했고, 기대보다 좋은 성적을 거두며 초·중등 시절 동요와 가요를 부르며 음악을 즐겼다. 중학교 3학년 때 예고 진학을 준비하던 친구의 영향을 받으며 성악의 길을 결심했고, 부모님에게 뜻을 전한 뒤 본격적으로 성악 전공의 궤도에 올라섰다. 오페라와의 운명적인 만남 – ‘알프레도’가 되다. 김동녘의 진로를 결정지은 순간은 대학 진학 당시 경북대학교 개교 60주년 기념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에 출연했던 경험이다.
대구한의대학교 부설 치유과학연구소의 겸임, 객원연구원과 함께 경주박물관 금관전시회를 다녀왔다. 치유과학연구소에 대해 알아보고, 그들이 예술과 함께 지향하는 치유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본다. 치유과학연구소는 ‘치유’를 특정 치료기법 하나로 한정하지 않고, 심리·신체·생활·문화·기술을 포괄하는 삶의 전반적인 회복 과정으로 바라보는 학제 간 융합 연구기관이다. 연구소는 치유를 문제가 발생한 이후의 ‘치료’가 아니라, 삶의 리듬과 환경 속에서 미리 돌보고 예방하는 통합적 역량으로 이해한다. 그 문제의식은 박물관·미술관 경험을 ‘지식 전달’이 아닌 ‘자아 회복의 경험’으로 재해석한 신라 금관 탐방 세미나에서 구체적 실천으로 구현됐다. 연구소가 던지는 질문은 명료하다. '치유는 어떻게 과학이 될 수 있는가, 그리고 그 과학은 어떻게 다시 사람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는가.' 1. 치유를 '삶의 회복 과정'으로 정의하는 학제 간 융합 연구기관 설립 목적은 분명하다. 치유과학 기반의 융복합 연구를 통해 예방 중심의 통합심리치유 모델을 구축하고, 연구 성과가 학문에 머무르지 않고 지역사회와 정신건강 증진으로 연결되도록 하는 것이다. 즉, 연구실 안에서 끝나는 치유가 아니라 사람
삶은 어느 순간부터 반복이 되고, 반복은 무감각을 낳는다. 특히 중년의 삶은 책임과 수고로 빼곡하게 채워지면서도 정작 ‘나’를 위한 시간은 희미해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 ‘잊힌 시간’ 위에, 조용히 반짝이는 일이 있었다. 바로 노래, ‘가곡’을 배우는 일이었다. 이번 2025 대한민국예술신문 Winter 음악콩쿠르 [일반부 & 시니어부]에서 입상한 이경옥, 김수련, 김미향 세 명은 모두 성악을 전공하지 않은 일반인이지만, 중년의 어느 날부터 가곡을 배우며 음악을 생활 속으로 가져왔다. 처음엔 호기심으로 시작한 음악이었지만, 무대는 떨림과 설렘의 공간이 되었다. ‘노래하는 순간, 내 안의 또 다른 내가 태어난다.’ 가족과 일, 책임과 역할이 겹겹이 쌓이면서 삶은 성실해지지만, 마음은 무뎌지기 쉽다. 그런데 이번 대회에 참가한 세 사람의 이야기는 그 고정관념을 조용히 뒤집는다. 전문 연주자가 아닌 ‘생활인’으로서 노래를 시작했고, 그 노래는 삶의 리듬을 되돌리고 관계의 온도를 회복시키는 통로가 되었다. 이번 인터뷰는 입상자 이경옥·김수련·김미향 세 명을 통해, 중년기 음악 활동이 어떻게 일상을 일으키고, 감정을 조율하며, 삶의 품위를 유지하는지 기록한다
제주라는 삶의 자리에서 작곡가 안현순은 언제나 '음악이 사람에게 무엇이 될 수 있는지'를 먼저 묻는다. 화려한 기교보다 진심을, 완성된 형식보다 삶의 온기를 선택해 온 그의 합창은 웃음과 위로, 그리고 조용한 행복을 관객에게 건넨다. 이번 인터뷰는 제주의 자연과 역사, 이웃의 삶 속에서 길어 올린 그의 음악 세계를 따라가며, 예술이 삶과 만날 때 비로소 생겨나는 깊은 울림을 들여다본다. [인터뷰/글. 조정인 발행인, 최영민 이사, 황유진 편집장] [궁금해요 (1)] '꼬마 반주자의 설렘' - 초등학교 5학년이라는 어린 나이에 작은 교회의 반주자로 음악을 시작하셨지요. 당시 발이 겨우 닿는 피아노 앞에 앉아 찬송가를 연주하던 어린 안현순의 마음은 어땠나요? 그때 느꼈던 순수한 행복이 지금 작곡하시는 곡들에도 여전히 어떻게 녹아 있는지 궁금합니다. 네, 그 시절을 떠올리니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는데요, 어린시절에 처음 반주를 하게 됐을 때, 찬송가 반주 자체도 정말 떨렸지만 기도가 끝나는 '아~멘!' 후에 기도송의 전주를 자신있게 차고 나갈 수 있을까 엄청 콩닥거렸던 그 순간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네요~. 찬송가 반주 연습을 통해
새해는 흘러간 시간을 매듭짓고 다가오는 날들을 맞이하는 시기로 누구에게나 기대와 설렘을 불러온다. 이 새로움을 단지 이전과의 단절이 아니라 그 시간을 품고 다시 살아내는 의지로 본다면 떠오르는 이가 있다. 바로 배우 이지민이다. 목소리는 부드럽고 차분하다. 그러나 그 느린 호흡이 가벼운 유순함으로 흐르지만은 않는 이유가 있다. 그녀의 말 사이에는 오래 견딘 시간의 밀도, 삶을 쉽게 단정하지 않는 신중함, 그리고 흔들리며 다져진 단단함이 배어있다. 포기한 적 없습니다. 잠시 접어둔 것뿐이에요. 어릴 절부터 막연한 동경이 아니라 배우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또렷했던 그녀는 누군가의 삶을 살아보고 감정을 건네는 일이 자연스러운 꿈이었다. 현실 때문에 안정적인 길을 택해 영어 교사가 되었지만, 배우에 대한 마음은 늘 그녀 안에 남아 있었다. 20대에 연극배우로 7년간 활동했지만, 생계를 위해 연기를 그만두게 된 후 결혼하고 교사, 엄마, 아내, 며느리로 사는 삶을 살았다. 하지만 그 시간은 배우로서의 공백이 아니었다. 그 모든 일상이 삶의 감정과 경험으로 축적되어 결국 지금의 ‘이지민’ 배우로 서 있게 했다. “제 삶을 통과하며 만들어진 감정들이 무대 위에서 더 진정
이강소 작가의 전시가 한창인 대구미술관은 차가운 겨울바람과 달리 잔잔한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다. 평소 관심 있게 지켜보던 작가의 작품을 직접 마주한다는 설렘 속에 유난히 포근한 음성의 해설이 들려온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도슨트 정희선이다. 그녀는 고등학교 시절 미술을 전공하고 싶다는 마음은 있었지만, 가정 형편상 꿈을 접어야 했고 결국 문학을 전공했다. 결혼 후 아이를 키우고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면서 미술은 취미의 형태로 남겨두었다. 미술 관련 책을 읽고, 취미 미술 수업을 들으며, 아트페어에서 그림을 즐기는 것이 그녀에게 미술과의 접점이었다. 그러던 중 코로나 시기에 우연히 접한 대구미술관의 ‘도슨트 양성 교육’ 공지를 본 그녀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저 미술이 좋아서 시작한 도슨트란 직업이 정확히 뭔지도 모른 채 무식해서 용감하게 시작했다며 조심스레 고백한다. 막상 시작해 보니 도슨트는 ‘가벼운 설명’의 일이 아니었다. 그녀는 도슨트 활동의 관문을 ‘세 개의 고개’로 정리한다. 첫 고개는 전시 스크립트를 쓰는 일, 다음은 시연, 마지막은 처음 관객 앞에서 말하는 순간이다. ‘매 전시가 시작될 때마다 고개를 세 번 넘는다’라는 말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