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민의 마음 클래식

베토벤과 함께 다시 일어서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 호탕한 웃음이 돋보이는 중년 남성은 니체의 말 중 한 구절로 인사를 대신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누구의 이야기도 들으려 하지 않고, 자신이 살아가는 방식이 옳다고 생각했던 그였다. 생각지 못했던 사업의 실패를 겪으며 세상이 ‘이럴 수도 있구나’라는 혹독한 시련을 마주하고 그 속에서 진정한 자신을 맞이하게 되었다.

 

처음엔 술로 세월을 보내며 현실을 부정했던 그였지만, 아내의 권유로 책도 읽고 음악을 듣게 되면서 그 인연으로 나를 만나게 되었다.

 

누군가의 조언도 가식처럼 느껴졌고, 믿었던 이의 배신으로 일상의 대화조차 줄인 그였다. 하지만 베토벤 음악을 들으며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내면 소통을 시작하게 된다.

 

그동안 함께 해온 베토벤과의 대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곡을 꼽으라니 이 곡을 선택한다. 바로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의 피아노 협주곡 5번<Piano Concerto No. 5 in E flat major op. 73 "Emperor">이다.

 

이 곡이 작곡된 해인 1809년 5월, 나폴레옹 군대가 빈을 점령했다. 오스트리아의 바이에른 침공에 대한 대응에 나선 프랑스군이 에크뮐 전투에서 오스트리아군을 격파한 다음 빈까지 진격해오자 오스트리아의 왕족과 귀족, 부유층들은 서둘러 빈을 탈출했다. 베토벤의 평생 연금을 약속했던 후원자들이 빈을 떠나면서, 그의 경제적 지원은 끊어지고, 청력 이상 증세도 심각한 상황이었다. 안팎으로 매우 힘든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화려한 색채의 음향과 영웅적인 기상을 담고 있는 위풍당당한 곡이 탄생했다.

 

오케스트라와 피아노 독주가 긴밀하고 역동적으로 음악을 펼쳐나간다. 우리가 알고 있는 ‘황제협주곡’이라는 별칭은 그의 친구인, 영국 피아니스트 겸 출판업자 ‘요한 밥티스트 크라머’가 런던에서의 출판을 위해 붙였다고 전해진다.

 

전 3악장으로 이루어진 이 곡에서 1악장은 관현악의 거센 화음에 이어 곧바로 피아노 독주가 등장하여 연주되는 특이한 구조로 되어 있다. 카덴차 독주 이후 전체 악장은 오케스트라와 피아노가 서로 공존하는 느낌으로 진행된다. 자신의 말만 하던 사람이 어느 순간 상대의 말을 듣기 시작한 순간이라고 할까?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서로를 존중하며 함께 호흡하는 관계의 아름다움을 들려주는 듯하다.

 

2악장에서 흐르는 온화한 오케스트라와 피아노 선율은 내면의 기도가 가능한 시간을 선물한다. 그에게 특별하게 다가온 2악장은 멈추었던 삶이 다시 흐르는 느낌으로 다가온다고 하였다. 고통을 인내한 자만이 느낄 수 있는 새로운 희망을 안겨 준 2악장의 위로에 뜨거운 눈물은 그와 함께한다. 쉬지 않고 이어지는 3악장은 기세를 몰아가는 듯한 승리의 함성을 내뿜듯 시작된다. 피아노와 관현악은 축제와 놀이를 오가며 자유롭게 희망을 표현하는 듯 그에게 머무른다.

 

곡을 들으며 하고픈 이야기가 많은 듯 눈을 감았다가 팬을 찾아 메모지에 긁적이며 자신의 마음을 전한다. 실패의 부끄러움으로 지우고 싶었던 과거였지만 어제가 있었기에 내가 있다는 마음으로 오늘을 부정하지 않고 지난 시간을 돌아보게 되었다.

 

다시 흘러갈 수 있도록 과거를 놓아주는 데 도움이 된 베토벤의 음악이 있어 좋았다며 미소 짓는 그. ‘오늘 들어오면서 건넨 말을 지난 일주일 동안 반복해서 나에게 말해주었어요. 잊어버리기 전에 선생님께 전하고 싶었죠.’

 

‘왜 불행은 나를 향하고 있나?’ ‘왜 내 안의 상처만 이렇게 깊은 건가?’ 우울함으로 가득했던 그는 삶의 위기 앞에서 무너지지 않고, 헤쳐나가는 강력한 의지를 음악에서 찾을 수 있었다.

 

고난이 있어 삶이 더 귀하고 아름다운 것일까?

 

지난여름의 지루하고 찌는 듯한 더위를 이겨낸 나무들의 향연이 바로 우리 집 앞의 단풍일까? 인생에서 아쉬운 부분은 있어도 후회는 없다는 삶의 자세를 베토벤은 가르쳐주는듯하다.

 

진정성 있는 음악은 나를 좀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준다. 가치 있는 삶을 위해 끊임없는 성찰로 숭고함을 일궈내었던 베토벤의 용기에 감사를 전하며...

 

“삶의 최고 영예는 결코 쓰러지지 않은 것에 있지 않고, 쓰러질 때마다 일어나는 것에 있다.”

-넬슨 만델라-

 


 

최영민 작가

 

[학력]

경북대 예술대학 음악학과 석사

대구한의대 치유과학과 박사(ABD)

 

[경력]

전 대구과학대학출강

법무보호복지공단 대구지부 심리위원

아카데미 예송 대표

'마음이 머무는 클래식' 진행

 

[시상]

2024 대한민국 眞心예술대상 수상

 

[저서]

'마음이 머무는 클래식' (에듀래더 글로벌 출판사, 2025)

 

[대한민국예술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