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민의 마음 클래식

브람스 – 다정한 선율의 큰 위로


전국 대부분의 지방에 폭염주의보가 발표된 한낮, 가을을 맞이하기 전 지루한 더위로 이마에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힌 눈웃음이 어여쁜 40대 여성이 약속한 시각에 정확히 맞춰 들어온다. 더위에 오는 길이 힘들진 않았는지… 그동안의 안부를 묻고 오랜만에 만난 반가움을 전하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탁자에 놓인 아이스 커피의 위안도 잠시뿐, 움직일 때마다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른다는 그녀. 높은 체감온도는 그녀의 스트레스 지수를 대변해주는 듯하다. 깊은숨을 쉬기조차 힘든 그녀의 일상은 몸과 마음이 함께 쉴 틈 없이 달린다.

 

이야기를 나누던 중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다급히 전화 받는 그녀, 요양병원에 계신 어머니의 간병사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 통화하는 그녀의 태도로 보면 위급상황인 듯 보였으나, 이야기를 들어보니 어머니에게 필요한 물품을 사 오라는 것이었다. 겉으로 보기엔 사소한 집안일 같지만, 혹시나 어머니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지 걱정되는 마음은 늘 시계추 위에 있다.

 

평소 느끼는 그녀의 불안이 그대로 전해지는 순간, 초등학교 6학년인 아이의 학원 픽업 시간을 알리는 알람이 울리고 동시에 요양병원에 계신 어머니의 면회 가능 시간 문자가 온다.

 

아이에게도 엄마에게도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하는 하루를 살고픈 마음에 온종일 단거리 육상선수처럼 살아가고 있다.

 

치열하게 살아가는 그녀와 함께 들어본 곡은 요하네스 브람스의 6 Piano Pieces Op. 118 No. 2, <Intermezzo> in A Major이다. 회상과 그리움, 사색과 고독을 담은 브람스의 후기 피아노 소품 중 하나로 1893년에 출판된 이 곡은 겉으로 화려하지는 않지만, 내면의 정서를 섬세하게 담아내고 있다. 짧은 형식 속에 담긴 안으로 스며드는 감정은, 외부로 표출되기보다 자기 자신과의 밀도 있는 대화를 유도한다.

 

브람스가 이 곡을 작곡할 당시, 그는 스승인 슈만이 세상을 떠난 후 30년 넘는 긴 세월 동안 슈만의 자녀를 돌보며 그의 아내인, 클라라 슈만과 음악적 교감을 이어갔다. 60세의 브람스는 후기 피아노 소품 Op. 116 ~ 119를 연이어 발표하며, 삶의 성찰과 인간관계 속에서 얻은 감정을 간결한 음악적 언어로 응축했다. 클라라에게 헌정된 이 곡에 ‘작고 사적인 형식 속의 시(詩)’라는 말이 붙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배경 때문이다.

 

음악을 반복해서 들으며 이 곡의 앞에 놓인 지시어 ‘Andante teneramente’(느리고 다정하게)는 그녀에게 내면의 호흡과 감정을 정돈하는 데 도움을 준다. 지금 감정을 ‘한 단어로 표현해보세요.’라는 말에 ‘죄책감, 압박, 서운함, 피로…’등 다양한 감정으로 표현된다. 편찮으신 어머니, 아직은 엄마 손이 필요한 아들, 그리고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정작 삶의 주인공인 본인을 위한 시간을 찾기 힘든 일상을 떠올리며 주르륵 눈물로 그녀의 바람을 말한다.

 

음악을 반복해 들으며 프레이징에 깊은 호흡을 안착시킨 후 들숨과 날숨의 속도가 점점 느려짐을 느끼는 그녀, 안정된 숨소리와 함께 정리된 생각들을 이어나간다. 부모님이 당장 돌아가시는 병은 아니지만, 그동안 간병사의 전화에 큰일을 당할듯한 불필요한 불안이 지속되었다며 내쉬는 숨에 마음의 무게를 덜어낸다.

 

아들은 이제 초등 6학년이라 최대한 엄마의 자리에서 필요한 것을 충족시켜주고 싶은 마음이었으나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스스로 하도록 공간을 내어주고자 하는 여유를 말한다. 잔뜩 짊어지고 달린 무거운 짐을 조금은 비운 듯 가벼워진 미소를 짓는 그녀에게서 편안함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압박과 책임 속에서 내면의 평정을 찾아가는 그녀는 브람스 음악을 들으며 삶의 리듬과 감정을 조율한다. 온화하고 따스한 호흡과 섬세한 음영이 주는 선율이 캄캄한 내면에 환한 빛을 비추며 그녀의 마음에 어울리는 속도로 말을 걸어준다. 고군분투하는 일상에서 불안과 사랑, 그리고 책임으로 엉켜버린 삶에 균형을 되찾는 시간을 브람스는 묵묵히 우리 곁에서 함께 하고 있다.

 

‘우리가 상황을 바꿀 수 없을 때, 우리는 자기 자신을 바꾸도록 도전을 받는다.’

— 빅터 프랭클-

 


 

최영민 작가

 

[학력]

경북대 예술대학 음악학과 석사

대구한의대 치유과학과 박사(ABD)

 

[경력]

전 대구과학대학출강

법무보호복지공단 대구지부 심리위원

아카데미 예송 대표

'마음이 머무는 클래식' 진행

 

[시상]

2024 대한민국 眞心예술대상 수상

 

[저서]

'마음이 머무는 클래식' (에듀래더 글로벌 출판사, 2025)

 

 

[대한민국예술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