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민의 마음 클래식

계절이 바뀔 때쯤이면 우리는 묘한 감정을 느끼곤 한다. 햇볕은 여전히 여름을 기억하게 하지만, 바람결엔 가을의 향기가 전해지는 듯하다. 내면을 들여다보기에 좋은 시간. 소위 ‘가을을 탄다’, ‘계절을 탄다’라는 말로 우리의 멜랑콜리(Melancholy -우울 또는 비관주의에 해당하는 인간의 기본적인 감정)를 설명하려 한다.

 

요즘 여러분의 마음은 어떠한가요?

 

‘탄다’는 ‘어떤 감정이나 상태를 타고 흐른다’ 또는 ‘정서에 영향을 받는다’라는 뜻으로 확장 해석할 수 있다. 사람의 마음도 계절처럼 변한다. 오늘의 공허가 내일의 설렘으로 이어지고, 어제의 상처가 불현듯 되살아나기도 한다.

 

그러한 내적 파동 속에서 늘 흔들리며 살아가고 있는 우리, 이 흔들림을 가만히 받아들일 때 음악은 언어보다 더 깊은 위로가 되어 다가오나 보다.

 

얼마 전 갑작스러운 사고로 다리를 다친 60대 건장한 청년 같은 중년을 만난 오늘, 그와 함께 삶의 의미를 묻고 답해보는 시간을 가진다. 평소 건강에 대해서는 자신감으로 충만한 그였지만, 생각지 못한 골절로 몇 주간 깁스하면서 자신을 새롭게 바라보게 되었다고 한다. 그 사유(思惟) 안에서 느낀 몇 가지의 감정, 그리고 잘한 것보다 잘못한 것이 더 많이 떠올라 우울하다 그.

 

그런 그와 함께 들어본 곡은 슈베르트(Schubert) 피아노 소나타 21번(Piano Sonata No. 21 B Flat Major D.960)이다. 슈베르트가 세상을 떠나기 두 달 전 피아노 소나타 3곡을 작곡하게 되는데, 그중 마지막 곡이 바로 이 작품이다. 베토벤의 드라마틱한 소나타와 달리 깊은 사색과 부드러운 서정성을 선물하여 내면의 평화와 울림을 전한다.

 

1악장 (Molto moderato)의 시작 부분은 온화하면서도 냉철한 기운이 느껴진다. 이는 생의 마지막을 직면하고, 삶에 대한 진중함과 초연함 모두를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간 부분에서는 불안과 번민을 불러일으키는 감정을 폭발시키려 하지만 자신의 길을 찾은 듯 담담하게 마무리한다.

 

2악장 (Andante sostenuto)은 지치고 무거운 마음을 표현하는듯한 공허함과 진지함이 동시에 담겨있다. 단조에서 장조로의 변화는 다가올 행복을 꿈꾸는듯하다.

 

3악장 (Scherzo. Allegro vivace con delicatezza – Trio) 베토벤적인 분위기에서 완전히 벗어나 슈베르트의 독자적인 고귀함을 연주하는 부분이다. 밝고 가벼운 리듬과 함께 강하지 않고 속삭이듯 섬세한 정감을 표현한다.

 

4악장 (Allegro ma non troppo) C단조의 진지한 질문을 던지는 듯한 짧은 도입부와 이에 대한 화답으로서 긍정으로 가득 찬 B플랫 장조의 주제 선율이 만들어내는 여정은 험난한 삶을 살아가는 자에 대해 숭고함을 표현하는듯하다.

 

‘슈베르트의 음악’이라 하면 우리는 흔히 ‘가곡의 왕’답게 아름다운 선율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고전주의의 완성된 형식을 성취하기 위한 노력 또한 멈추지 않았다. 슈베르트가 존경한 베토벤이 세상을 떠난 1828년, 바로 그다음 해 그의 마지막 세 개의 피아노 소나타는 완성되었다.

 

그는 음악을 시작할 무렵 남긴 수많은 아이디어의 단편들과 미완성된 소나타들에서 알 수 있듯이, 젊은 슈베르트는 피아노 소나타를 통해 전통적인 소나타 형식의 한계를 탐색하고 자신만의 서정성을 융합하려는 고뇌가 연속이었다. 그의 참된 자아를 담고 있는 모든 피아노 작품들은 슈베르트만의 응축된 사색의 결과물이다.

 

‘변화’는 자신에게 또 다른 시작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는 그는 가만히 4악장까지 말없이 듣는 동안 깊은 생각에 잠긴듯했다. ‘불안과 우울을 억누르지 않고, 그 감정과 차분히 마주하게 하네요.’ 건강의 문제가 자신에게도 올 수 있음을... 그동안 자만한 부분에 대한 반성과 앞으로 다가올 삶에 대한 계획을 다짐한다.

 

슈베르트의 리듬은 일정하지만, 그 위에 얹힌 선율은 끊임없이 변주된다. 이는 마치 우리의 일상이 반복되더라도, 그 속에서 각자의 감정과 해석이 달라지듯 그의 마지막 피아노 소나타는 감정을 분리하지 않고 통합하는 힘을 갖는다. 기쁨과 슬픔, 불안과 평온이 동시에 존재하며, 그 모든 것이 결국 ‘나’라는 한 인간의 삶으로 귀결됨을 일깨워준다는 그는 음악에서 받는 위로와 자기반성에 결국 눈시울을 붉힌다.

 

쇼펜하우어는 음악을 ‘세계의 본질적 의지를 직접 드러내는 예술’이라 했다. 이 곡을 듣다 보면, 자각하지 못한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받아들이고 불운한 삶 속에서도 여전히 꺼지지 않는 진심의 빛을 발견하게 된다.

 

흔들리는 감정 속에서도 내가 지켜야 할 ‘본질’은 무엇인가?

덧없음이란 결국, 순간의 소중함을 더 선명하게 드러내는 것은 아닌가?

 

계절이 선물한 속도로 이 곡을 마주한다. 일상의 예기치 못한 불운과 모르고 행한 어리석음으로 인해 삶의 궤적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음악은 그에게 다시 시작할 용기와 격려를 선물하는듯하다.

 

마음먹은 대로 살아지지 않는다는 삶의 진실을 받아들이고 지금, 이 순간을 더욱 충실하게 살아야 할 근원적인 이유를 깨닫게 해주는 슈베르트 음악의 울림을 전한다.

 

‘슈베르트의 피아노 작품 중 왕관을 쓰고 있는 것은 바로 B Flat Major 소나타이며

베토벤 이후에 만들어진 작품 중 가장 아름다운 소나타이다.’

- W. 게오르기 -

 


 

 

최영민 작가

 

[학력]

경북대 예술대학 음악학과 석사

대구한의대 치유과학과 박사(ABD)

 

[경력]

전 대구과학대학출강

법무보호복지공단 대구지부 심리위원

아카데미 예송 대표

'마음이 머무는 클래식' 진행

 

[시상]

2024 대한민국 眞心예술대상 수상

 

[저서]

'마음이 머무는 클래식' (에듀래더 글로벌 출판사, 2025)

 

 

 

[대한민국예술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