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민의 마음 클래식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 마지막을 따뜻하고 아름답게


 

성숙과 인내의 단내가 어우러지는 계절을 맞이한다.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은 우리의 시공간을 말없이 흘러가고 있다. 봄이 지나기에 다가오는 여름이 있고, 겨울이란 이름이 있기에 다시 맞이할 수 있는 봄이 있듯 이들은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직선형 운동이 아니라 원을 그리듯 순환하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흐름 역시 유아기, 청소년기를 지나 노년기에 이르기까지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삶이 유한하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게 왜 이리 힘든지….’ 갑작스럽게 어머니는 암을 진단받았고, 자식으로서 미리 챙겨드리지 못한 죄책감으로 마음이 무너지는 한 중년여성이 상담을 요청하였다. 호스피스 병동에 계신 어머니의 온기가 서서히 식어가는 것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 마냥 고통스럽다는 그녀, 사는 게 뭐가 그리 급했는지 미리 병원 한번 모시고 가지 못한 지난날에 후회가 그녀를 짓누르고 있는 듯했다.

 

어머니의 인생이 메말라가는 것을 곁에서 지켜보는 일은 형언할 수 없는 고통, ‘내 마음도 바스락거리는 낙엽 같아요’라는 그녀와 함께 오늘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네 개의 마지막 노래(Vier Letzte Lieder)>를 함께 듣는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Richard Strauss, 1864~1949)는 독일 뮌헨에서 태어나 뮌헨 궁정 관현악단의 호른 주자였던 아버지에게 음악교육을 받았고 4세 때 피아노를 쳤으며 6살 때 <시나이더 폴카>를 작곡하여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할 정도로 음악적 재능이 뛰어났다. 19살 때는 당시 유명한 지휘자였던 한스 폰 뷜로를 만나 정통 독일 관현악의 음악을 공부한다. 또한 바이올리니스트 알레산더 리터에게서 리스트와 바그너의 혁신적인 표현법에 영향을 받아 교향시와 오페라처럼 큰 규모의 곡에서 충실한 구조와 현란한 관현악의 다채로운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능력이 뛰어났다.

 

그는 200여곡의 가곡을 작곡하였으며 그중 15개 정도는 오케스트라를 수반한 성악곡으로 작곡했다. 그 외 피아노 반주곡 또한 풍부한 화음과 오페라적인 성격을 담고 있다. 그런 그가 생의 마지막에 작곡한 <네 개의 마지막 노래>는 젊은 날에 보여주었던 화려한 오케스트레이션을 배제하고 가장 단순하면서도 감각적인 요소들만 선택했다. 간결한 멜로디에 세련된 오케스트라의 음향이 어우러져 청중을 홀린 듯 시적인 감흥으로 이끌어가는 매력이 돋보이는 곡이다.

 

<네 개의 마지막 노래(Vier Letzte Lieder)>는 <봄(Frühling)>, <9월(September)>, <잠들기 전에(Beim Schlafengehen)>, <저녁노을(Im Abendrot)> 이렇게 4개의 곡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모든 재산을 빼앗겼고 명예는 추락하였으며, 폐허가 된 자신의 고향을 바라보며 큰 상처를 받았다. 1946년, 그가 82살 때 19세기 독일의 시인 아이헨도르프의 시 ‘저녁노을’에 깊은 감동을 받아 마지막 온 힘을 다해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악기인 사람의 목소리로 작품을 쓰게 되었다. 이어 헤르만 헤세의 세 개의 시에 곡을 붙이고 <봄>, <잠들기 전에> 그리고 <9월>을 완성하였다. <네 개의 마지막 노래>라는 제목은 출판사가 작곡가 사후에 붙인 이름으로 제목에 의해 일종의 형식적 순환과 내용적 연관이 있는 연가곡적인 성격을 갖게 되었다.

 

이 곡을 완성한 지 1년도 채 지나지 않은 1949년 9월 8일, 그는 초연조차 보지도 못한 채 85세의 나이로 세상과 이별하게 되었다.

 

우리는 역경과 기쁨의 순간에

손을 맞잡고 견디어 왔다.

이제 방황을 지나

저 높고 고요한 곳에서 안식을 누리리.

 

주위의 계곡은 깊게 패이고

어느새 어둠이 내려앉았다.

종달새 두 마리만 꿈꾸는 듯

노래하며 안개 속을 날아오른다.

 

곧 잠잘 시간이 오리니

우리가 이 적막 속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종달새들이 지저귀게 두어라.

 

아! 광활하고 고요한 평화로움 이여!

저녁노을 속 깊이

느껴지는 나그네의 피곤함

이것이 아마 죽음이 아닐까?

 

4/4박자의 밝고 온화한 느낌에서 점차 3/2박자로 바뀌고 어두운 느낌을 주는 <저녁노을>을 함께 듣는 순간, 그녀의 뺨 위에는 하염없이 눈물이 흐른다. 어려움과 즐거움을 함께하며 보낸 삶의 여정을 끝내고 평화롭게 안주하고자 하는 시인의 심경을 그린 소프라노의 선율과 오케스트라의 화음에 감정이 북받쳐 오르는 듯 보인다.

 

어둠이 깃들어가는 골짜기를 표현하는듯한 반주부가 순차적 하행을 하고 플루트의 트릴로 두 마리의 종달새가 지저귐을 표현하는 부분에서 ‘마치 시가 나에게 다가오는 느낌이 들었어요’라고 한다. 종달새의 노랫소리가 네 번 울리며 이 곡은 끝을 맺는다.

 

어머니가 가시는 길에 종달새의 지저귐이 따뜻하게 함께하는 느낌이 든다며... 남은 시간을 종달새가 지저귀듯 어머니의 귓전에 즐거웠던 추억들을 많이 전해드리고 싶다고 한다. ‘어머니의 삶이 곱고 찬란할 수 있도록 나부터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겠어요.’라며 조금은 편해진 얼굴로 어머니를 만나러 가겠다는 그녀.

 

어머니의 마지막 순간으로 명암의 갈림길에 섰던 그녀에게 가을의 빛처럼 부드럽고 황혼의 향기처럼 그윽한 선율이 휴식과 평화를 선물한다. 이것이 바로 음악이 전하는 삶의 숭고한 진심이 아닐까.

 


 

 

최영민 작가

 

[학력]

경북대 예술대학 음악학과 석사

대구한의대 치유과학과 박사(ABD)

 

[경력]

전 대구과학대학출강

법무보호복지공단 대구지부 심리위원

아카데미 예송 대표

'마음이 머무는 클래식' 진행

 

[시상]

2024 대한민국 眞心예술대상 수상

 

[저서]

'마음이 머무는 클래식' (에듀래더 글로벌 출판사, 2025)

 

 

 

[대한민국예술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