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민의 마음 클래식

지아코모 마이어베어 – 배신의 아픔이 아닌 베품의 따뜻함


얼굴이 잔뜩 찌푸려진 젊은 직장인이 무거운 발걸음으로 들어온다. 이쁜 얼굴에 그늘이 가득한 그녀가 무슨 일인지 궁금했는데 먼저 말을 건넨다. “내 마음 같지 않네요! 세상 사는 게 왜 이리 힘든지….”라며 본인의 고민과 마음이 상한 이유를 전한다.

 

40대를 바라보는 나이에도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한 고등학교 시절 친구 Y를 만났는데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앞섰다고 한다. 본인이 일하는 직장에 자리를 알아봐 주고 함께 일하게 되었다. 처음 직장생활에 어려움이 크던 Y에게 많은 도움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던 탓인지, Y의 회사생활은 무리 없이 수년이 이어질 수 있었다. 그로부터 어느 날 상사에게서 승진의 기회가 있는 프로젝트 이야기를 전해 들은 Y는 별도의 상의도 없이 혼자서 진행한 것이다. 상사는 당연히 Y가 친구인 저랑 함께 할 거로 생각하고 말을 건넸지만, 금시초문이었다. 살짝 배신감이 들어 사실을 확인했더니, Y는 단독으로 진행할 의사를 보였다.

 

고등학교 때에도 함께 지내는 친구 없이 늘 혼자인 그녀인지라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느껴진 친구였다고 한다. 그런 친구가 자신의 뒤통수를 친 느낌이 들어 많이 분하고 속상하다며 힘든 속내를 드러냈다.

 

그런 그녀와 함께 들어본 곡은 지아코모 마이어베어의 오페라 <예언자> 중 제4막에 나오는 ‘대관식 행진곡’이었다.

마이어베어는 1791년 독일 베를린 근교의 탄스도르프의 유대계 은행가의 아들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유복한 가정에서 음악 교육을 받아 재능을 일찍 펼쳤다. 7살 때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으로 데뷔했고 천재성을 인정받아 연주자로서뿐만 아니라 작곡가로 음악 활동을 이어나갔다. 그는 로시니의 오페라를 롤모델로 삼아 <이집트의 십자군> <악마 로베르>등 오페라를 작곡하여 파리에서 음악 활동을 하며 큰 성공을 거두었다.

 

당시 리하르트 바그너가 1849년 드레스덴 폭동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강제 망명길에 오르면서 경제적으로나 음악적으로 위기에 처했다. 그때 이미 프랑스 오페라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마이어베어는 힘든 상황의 바그너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었다. 그러나 훗날 망명을 끝내고 돌아온 바그너는 자신을 후원해 준 마이어베어가 유대인이라며 맹비난했다. 실상은 마이어베어의 오페라 <예언자>가 대성공을 거두면서 바그너의 질투심이 걷잡을 수 없었던 것이다.

 

작곡가 삶의 이야기와 웅장하면서도 선율이 아름다운 음악을 듣고 난 그녀는 당시 느꼈던 감정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했다. ‘내가 그 친구를 배려하고 위해준 만큼 친구가 똑같은 마음으로 대하지 않았음에 억울하고 분함이 강했는데…. 이 음악을 들으니 그 친구에게 따뜻함을 전했을 때 느낀 원인 모를 책임감과 강렬한 의지가 느껴지네요.’라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친구가 나에게 자주 했던 말 ‘나는 너와 상황이 다르잖아!’였다. ‘친구가 보기엔 결혼도 하고 직장생활도 안정된 나와 비교가 되었나 보다’며 지나온 시간 속에 그녀와의 대화와 함께한 시간을 돌이켜보았다. 친구의 관점에서 관계를 바라보는 시도를 하고 다름에 대한 이해가 이어졌다. 상대방이 느끼는 마음의 크기가 나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이 아님을…. 건강한 관계를 위해 다른 이와 적절한 경계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친구를 도우려 했던 순수한 마음만은 스스로 귀하게 여겨야겠다고 생각해요.’라며 그 진심이 온전히 전달되기를 바랐지만, 그것은 친구의 몫으로 남겨두고 싶다고 했다. ‘내가 이만큼 사랑하니 너도 이만큼 사랑해야 한다’라는 조건을 내세우고 스스로 마음을 가두었다는 생각에 슬픔이 밀려온 듯하다는 이야기로 이어나갔다. 사랑은 주는 것, 그것이 진정한 사랑의 의미임을 다시 한번 새겨보는 시간이었다.

 

마르틴 부버의 책, <나와 너>에서 나와 너는 단지 서로를 바라보는 존재가 아니라 서로를 인정하고, 그 존재 자체를 존중하는 관계라는 것에서 우리에 대한 의미를 찾아보았다. 우리는 누구와 만나고 그 인연으로 자신의 존재에 대해 생각하고 의미를 발견하는 기회를 얻는다. 그리고 그 속에서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게 된다. 나와 너에 관한 생각과 시간 속에서 우리는 자신을 넘어서 타인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법을 배우나 보다. 마이어베어처럼….

 

“사람은 타인을 만날 때, 그의 존재를 그대로 받아들이며, 그 존재와 완전히 마주한 순간, 진정한 인간적인 관계가 시작된다.” -마르틴 부버-


 

최영민 작가

 

[학력]

경북대 예술대학 음악학과 석사

대구한의대 치유과학과 박사(ABD)

 

[경력]

전 대구과학대학출강

법무보호복지공단 대구지부 심리위원

아카데미 예송 대표

'마음이 머무는 클래식' 진행

 

[시상]

2024 대한민국 眞心예술대상 수상

 

[저서]

'마음이 머무는 클래식' (에듀래더 글로벌 출판사, 2025)

 

 

[대한민국예술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