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민의 마음 클래식

차이코프스키 – 이별을 위한 위로


가까운 이의 상실로 인해 우울함이 심하다며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전화가 연결되었다. 사회에서 만났지만 자매 이상으로 가깝게 지낸 친구가 얼마 전 세상을 떠났다는 이야기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일 년 전 사별한 남편과 금술이 너무 좋아 그의 빈자리에 슬픔이 컸던 친구가 겨우 일상을 회복하자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 치료를 받던 중 세상을 떠난 그녀를 생각하면 가슴 한 켠이 텅 빈 것 같다는 공허함에 자신의 감정을 털어놓았다.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고 뭘 해도 즐겁지 않다는 그녀, 우울한 기분이 들 때는 무언가를 하려는 마음을 잠시 내려놓는 것도 좋을듯하다. 서둘러 빠져나오려는 노력보다는 이럴 때 나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기회로 생각해보면 어떨까 한다.

 

그녀와 함께 듣게 된 곡은 차이코프스키의 <우울한 세레나데> Sérénade mélancolique Op. 26이다.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그의 첫 작품으로 1875년 차이코프스키가 35세 때 작곡하여 레오폴드 아우어에게 헌정한 곡이나 초연은 아돌프 브로드스키가 했다. 그는 아우어가 공연하는 것을 보고 ‘훌륭한 표현력, 사려 깊은 기교, 시적인 해석’이라며 연주에 감탄하고 바이올린을 위한 작품을 쓰기로 결심하여 작곡했다. 이 곡은 3년 후 탄생할 차이코프스키의 불후의 명작인 바이올린 협주곡 라장조 violin concerto in D major op.35를 예고한 것이라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감성이 넘친다.

 

<우울한 세레나데>는 따뜻한 관현악의 서주로 시작되고, 낮게 연주되는 침울한 첼로 소리에 목관이 상냥하게 위로하는 듯 소리를 더한다. 이어 바이올린이 우울한 주제를 연주하며 슬픔과 상심의 긴장감은 마지막까지 템포를 늦추지 않고 계속되어, 마주한 상실의 아픔과 절망을 그리는 듯하다. 희망을 간절히 원하나 번번이 좌절되는 모습을 그리듯 선율의 상승은 거듭 하강한다. 그러나 낮은 음으로 이어지는 선율은 스스로 애처로워하는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듯하다. 그리고 선율이 서서히 상승하며 달래고 어루만지는듯한 부드러운 선율이 위안을 준다. 우울한 주제 선율 사이에 빛이 드리우고 다채로운 표정이 나타나는 듯한 모습에 마음의 무지개를 바라볼 수 있는 곡이다.

 

계속해서 음악에 귀 기울여 듣고만 있던 그녀는 입을 열었다. “그동안 갇혀버린 마음을 풀어주는 느낌이 드네요.”라는 그녀, 힘들었던 순간들을 이야기했다.

 

“감각에 대한 의지도, 기쁨이나 슬픔을 경험할 의지도 없었던 것 같았는데….”

10분도 채 안 되는 곡이 그동안 10년 같았던 내 마음을 달래주는 듯한 느낌을 준다고 한다. 슬프지만 아름답고, 우울하지만 따뜻한 음악이 그녀의 마음을 다독이고 있다.

 

이런 우울감을 가지는 나 자신에게 ‘왜 그럴까? 함께 어울렸던 다른 사람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잘 지내는데….’라고 되뇌이며 나를 힘들게 했네요…. ‘내가 느끼는 감정이 당연한 거였군요….’ 라며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감정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친구와의 좋았던 기억을 회상하며 그녀에게 전했던 진심들을 이야기했다. 남편을 잃고 힘들어할 때 그에게 따뜻함을 전하는 본인의 마음을 바라보며, 사랑을 나누는 것을 좋아하는 자신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고 했다.

 

다음 주 오랜만에 친구들과 모임 약속, 그동안 힘들었던 이야기도 나누고 서로 위로와 공감하는 시간을 가지고 싶다며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집에 가서 사랑하는 그 친구를 기리며, 좋은 곳에 가리라 믿고 기도하겠다고 한다. 딱딱하게 굳어버린 마음을 무장 해제시켜준 이 곡을 다시 듣고 싶다는 말을 전하고 다음 만남을 기약했다.

 

‘아프다’ ‘힘들다’ 말할 수 있고, 함께 감정과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음악이 있어 참 감사한 하루였다.

 

 

 


 

 

최영민 작가

경북대 예술대학 음악학과 석사

대구한의대 치유과학과 박사(ABD)

전 대구과학대학출강

법무보호복지공단 대구지부 심리위원

아카데미 예송 대표

'마음이 머무는 클래식' 진행

2024 대한민국 眞心예술대상 수상

저서 '마음이 머무는 클래식' (에듀래더 글로벌 출판사, 2025)

 

 

 

[대한민국예술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