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민의 마음 클래식

작은 변화에 반응할 줄 아는 마음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누군가 놓고 간 젖은 양산 하나가 시야에 들어왔다. 벽에 기댄 채 천천히 마르고 있는 그것은 마치 계절이 바뀌었다는 조용한 신호처럼 느껴졌다. 며칠 전부터 커피가 덜 따뜻하게 느껴졌고, 출근길 셔츠 소매가 반으로 접히기 시작했다. 나무는 훨씬 짙어졌고, 퇴근길에는 바람보다 아스팔트의 온도가 먼저 다가왔다. 그리고 나는 그제야 생각했다. 아, 계절이 바뀌고 있었구나.

 

우리는 대부분 어떤 변화가 이미 한참 진행된 뒤에야 그것을 인지한다. 나무는 어느새 잎을 틔웠고, 해는 늦게까지 지지 않으며, 밤의 공기는 한결 가벼워진다. 하지만 바쁜 일상 속에서는 그 모든 변화가 배경처럼 흐려진다. 사소한 징후들이 실은 삶의 리듬을 이끄는 전조였다는 걸 우리는 뒤늦게 깨닫는다. 그렇기에 계절을 먼저 감지하는 사람은, 어쩌면 아직도 살아 있는 감각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어른이 된다는 건 종종 감각을 잃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의 우리는 계절의 결을 정확히 기억한다. 새 학기 교실의 공기, 여름 장마의 냄새, 선풍기 옆에 길게 누워 있던 오후의 소리. 그러나 이제는 ‘덥다’, ‘춥다’ 같은 기능적인 언어만이 남는다. 감각은 점점 무뎌지고, 우리는 계절을 ‘느끼기’보다 ‘관리’하려 든다. 이유 없는 피로, 설명되지 않는 무기력, 흐릿한 감정의 결들은 어쩌면 계절이 몸에 먼저 말을 거는 방식일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마음의 기후도 계절과 크게 다르지 않다. 늘 겨울일 것 같던 마음에도 언젠가는 바람의 결이 바뀌고, 뭉근한 온기가 예고 없이 스며든다. 그 변화는 때로 말보다 먼저, 아주 조용히 다가온다. 오래 걷지 않고도 기분이 나아진 날, 평소보다 창을 일찍 열고 싶은 날, “오늘은 좀 살 것 같다”는 말이 무심코 흘러나오는 날. 그럴 때 우리는 비로소 깨닫는다. 어느새,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구나.

 

변화는 삶의 외부 조건이 아니라, 감각의 회복에서 시작된다. “요즘 해가 많이 길어졌더라”라는 말은 단순한 계절 감상이 아니다. 그 문장에는 ‘내가 아직 나의 삶을 느끼고 있다’는 중요한 신호가 담겨 있다. 계절의 변화를 인식한다는 건 곧, 자기 삶의 리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뜻이며, 그 감각은 마음의 균형을 조용히 복구시킨다.

 

중요한 건 너무 늦지 않게 그것을 알아차리는 일이다. 우리는 늘 무언가를 통과하고 있다. 누군가는 새로운 결정을 앞두고 있고, 누군가는 상실을 껴안은 채 하루를 살아가고 있으며, 누군가는 오래도록 바람이 불지 않던 마음을 안고 걷고 있다. 그럴 때 계절은 말없이 말을 건넨다. “지금 바뀌고 있어. 괜찮아, 조금만 더 지나면 달라질 거야.”

 

나는 요즘 일부러 하늘을 본다. 햇살의 각도, 구름의 속도, 저녁 공기의 냄새 같은 것들. 그 작은 감각들을 놓치지 않으려 애쓴다. 계절의 변화를 알아차린다는 건 곧 내 마음의 상태를 자각한다는 것이기도 하니까. 삶은 어디론가 흘러가고 있고, 우리는 그 속도를 바꿀 수 없지만, 그 흐름에 반응할 줄 아는 감각만큼은 잃지 않고 싶다.

 

계절이 바뀐다는 걸 안다는 것. 그것은 내가 여전히 살아 있다는 증표다. 그리고 그 감각이 살아 있다는 것은 곧, 내가 내 삶을 무심히 통과하지 않겠다는 태도다. 중요한 건 언제나 거창한 결심이 아니라, 사소한 변화를 감지해내는 능력이다. 삶은 그렇게, 작고 조용한 감각의 회복을 통해 우리에게 조금씩 말을 건넨다.

 


 

최영민 작가

경북대 예술대학 음악학과 석사

대구한의대 치유과학과 박사(ABD)

전 대구과학대학출강

법무보호복지공단 대구지부 심리위원

아카데미 예송 대표

'마음이 머무는 클래식' 진행

2024 대한민국 眞心예술대상 수상

저서 '마음이 머무는 클래식' (에듀래더 글로벌 출판사, 2025)

 

 

 

[대한민국예술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