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삶은 전반부와 후반부의 결이 다르다. 젊은 시절 우리는 밖을 향해 달린다. 능력을 증명하고, 자리를 확보하고, 무엇인가를 이루기 위해 스스로를 밀어붙인다.
성취는 분명한 목표가 되고, 속도는 미덕이 된다. 그러나 어느 순간, 질문의 방향이 바뀐다. ‘얼마나 이루었는가?’가 아니라 ‘나는 누구로 살아왔는가?’라는 물음이 고개를 든다. 중년에 이르러 많은 이들이 경험하는 이 전환은, 외적 성공에서 내적 성찰로 이동하는 정신의 구조적 변화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한 음악가를 떠올리게 된다. 루트비히 판 베토벤. 그의 작품 세계는 통상 초기·중기·후기로 구분되며 각 시기는 분명한 양식적 특징을 지닌다. 그러나 이 구분은 단순한 작곡 기법의 발전 단계가 아니다. 그것은 한 인간의 정신이 외부 세계의 질서를 학습하고, 그것과 투쟁하며, 마침내 자기 내면으로 침잠해 가는 발달의 궤적과 닮아 있다.
초기 작품에서 베토벤은 고전주의의 형식과 균형을 충실히 흡수한다. <피아노 소나타 제8번>(Piano Sonata No.8 C minor ‘Pathétique’)은 격정적인 정서를 드러내면서도 여전히 명확한 구조 안에 서 있다. 이는 사회적 언어를 습득하고, 기존 질서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보하려는 젊은 정신의 태도와 유사하다. 감정은 강렬하지만 틀은 유지된다.
중기에 이르면 음악은 급격히 확장된다. 형식은 길어지고, 긴장은 증폭되며, 인간 의지의 서사가 전면에 등장한다. <교향곡 제3번>는 단순한 교향곡이 아니라 ‘영웅’이라는 개념을 통해 세계와 맞서는 자아의 선언처럼 들린다. 이는 삶의 한복판에서 성취와 투쟁을 통해 자신을 증명하려는 시기의 정신과 겹쳐진다. 이 단계에서 인간은 외부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힘을 확인한다.
그러나 후기의 베토벤은 다른 차원에 서 있다. 형식은 해체와 재구성을 반복하고, 시간은 느슨해지며, 음악은 명상적 깊이를 획득한다. <피아노 소나타 제32번>(Piano Sonata No. 32 in C minor Op.111)의 2악장에서 들려오는 변주들은 더 이상 투쟁을 외치지 않는다. 그것은 승리의 환호가 아니라 존재에 대한 사유다. 외부의 박수 대신 내면의 울림을 택한 음악, 성취 이후에 찾아오는 통합의 단계다.
중년에 접어든 이들이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내면을 들여다보기 시작할 때, 베토벤의 후기 음악은 낯설면서도 깊은 공명을 일으킨다. 그것은 ‘더 많이’가 아니라 ‘더 깊이’를 향한 전환의 소리이기 때문이다. 초기의 질서 습득, 중기의 의지와 확장, 후기의 내적 통합이라는 구조는 인간 정신 발달의 상징적 지도처럼 읽힌다.
우리가 오늘 다시 베토벤을 듣는 이유는 그가 위대한 작곡가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의 음악 속에는 인간이 어떻게 성장하고, 어떻게 방향을 바꾸며, 어떻게 자기 자신과 화해해 가는지가 응축되어 있다. 빠른 성취를 요구하는 시대일수록, 우리는 그의 후기 작품에서 한 걸음 멈추는 법을 배운다.
상담을 위해 찾아온 중년 이후 상실을 경험한 내담자는 사회적 인정, 역할 수행, 성과 창출의 중심에서 내면을 바라보게 되는 계기를 베토벤 음악과 함께 한다. 건강, 관계, 부모님의 죽음을 겪은 고통에서 고요를 찾아가는 과정을 베토벤 음악을 들으며 이해하고 경험하게 된다. 위대한 작곡가가 나와 같은 길을 걷는 인간으로 다가오는 시간은 그에게 특별함을 선사했다.
그래서 지금, 베토벤은 과거의 인물이 아니라 현재의 질문이 된다. 그의 음악은 묻고 있다. 우리는 아직도 밖을 향해 달리고 있는가, 아니면 이제 스스로의 내면을 들을 준비가 되었는가.


최영민 작가
[학력]
경북대 예술대학 음악학과 석사
대구한의대 치유과학과 박사(ABD)
[경력]
전 대구과학대학출강
법무보호복지공단 대구지부 심리위원
아카데미 예송 대표
'마음이 머무는 클래식' 진행
[시상]
2024 대한민국 眞心예술대상 수상
[저서]
'마음이 머무는 클래식' (에듀래더 글로벌 출판사, 20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