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5일 11시 수성아트피아 소극장, 첼로 양성원 연주 후 인터뷰

무대 위에서 울리는 첼로의 음색은 한 인간의 시간을 담는다. 깊은 울림 속에는 시간과 기억, 그리고 인간의 감정이 켜켜이 쌓여 있다. 첼리스트 양성원의 연주는 바로 그런 음악이다. 그의 연주는 단순한 해석이나 기교를 넘어 때로는 깊은 고독처럼, 때로는 삶을 끌어안는 따뜻한 숨결처럼, 삶과 존재에 대한 사유를 담고 있다.
이날 그가 선보인 프로그램의 주제는 ‘낭만’이다. ‘낭만의 원형(바흐) - 낭만의 확장(카사도) - 낭만적 표현의 극대화(코다이)’라는 흐름을 통해 시대를 관통하는 ‘낭만적 정신을 조명한다.
J. S. Bach | Cello Suite No. 1 in G major, BWV 1007
G. Cassadó | Suite for Solo Cello
Z. Kodály | Sonata for Solo Cello, Op. 8
그러나 그가 말하는 낭만은 특정 시대의 음악 양식을 지칭하는 개념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 존재의 가장 근원적인 감정에 가까운 것이다.
“우리는 낭만을 흔히 슈만이나 브람스 같은 작곡가와 연결해 생각합니다. 하지만 바흐 음악도 저에게는 낭만적인 부분이 있고, 그 낭만이 바로크 음악이 혼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낭만은 결국 우리의 희망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 희망은 우리 인류에 항상 함께했다고 생각합니다.”
그에게 낭만이란 결국 희망에서 비롯되는 감정이다. 그 희망은 특정 시대나 민족에게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가 공유해 온 감정이라 보았다. 그래서 그의 프로그램은 서로 다른 문화권의 음악을 하나의 서사로 엮는다. 스페인의 정열적인 색채와 동유럽 트란실바니아 음악의 거친 뿌리, 그리고 다양한 시대의 음악이 하나의 무대에서 만난다. 서로 다른 문화 속에서도 인간의 감정은 결국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 음악가의 시간, 삶이 음악이 되는 순간
양성원은 음악가의 성장 과정을 인간의 삶과 깊이 연결해 이야기한다.
“20대의 음악가는 무엇보다 잘해야 합니다. 기술적으로 완성도를 보여주는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음악가에게 진정한 변화는 그 이후에 시작된다고 그는 말한다.
“30대에서 40대 초반이 되면 자신의 목소리를 찾아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40대 후반에 이르면 그동안 살아온 삶 자체가 음악 속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납니다.”
그는 음악 표현을 설명할 때 ‘삶의 세포’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수많은 감정과 경험을 축적합니다. 저는 그것을 삶의 세포라고 생각합니다. 그 세포들을 얼마나 과감하게 음악 속에 담아낼 수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그에게 음악은 의지를 내포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길이라 한다. 결국 삶이 하나가 되고 무르익어 순간들이 모여 자신의 스토리텔링이 되는 것으로 보면 시간이 축적될수록 연주는 하나의 서사가 된다.
“지금이 음악가로서 제 삶을 가장 즐길 수 있는 시기가 아닐까 합니다.”
오랜 시간 무대에 서온 예술가의 말 속에는 여유와 확신이 동시에 담겨 있었다.
○ 클래식 음악, 인류의 목소리를 이어가는 일
양성원의 음악 세계에는 강한 책임 의식이 자리하고 있다.
그에게 클래식 음악은 단순한 작품의 집합이 아니라 인류가 남긴 목소리의 기록이다.
“클래식 음악에는 몇 세기에 걸친 인간의 목소리가 담겨 있습니다.”
연주자는 그 목소리를 현재로 다시 불러오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그 목소리를 들려주고 또 다음 세대가 계속 이어갈 수 있도록 전달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그가 스승에게서 배운 중요한 가르침이기도 하다. 음악가의 커리어를 개인의 성공이 아니라 인류의 유산을 이어가는 과정으로 바라보는 시선이다. 그래서 그는 여전히 새로운 작품과 해석에 도전한다. 예술가에게 호기심은 단순한 창작의 동기가 아니라 문화적 책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예술은 육체의 한계를 넘어선다
연주자는 결국 육체적 한계를 마주하게 된다. 양성원 역시 그 사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첼로 연주는 결국 몸을 사용하는 일이기 때문에 언젠가는 한계가 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술이 육체적 능력의 한계와 함께 사라지지는 않는다고 믿는다. 이 지점에서 그는 한 화가를 떠올린다.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 Claude Monet이다.
“모네는 시력이 크게 나빠진 이후에도 솔직한 표현으로 새로운 아름다움을 작품에 남겼습니다.”
그에게 모네의 예술은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예술은 어떤 한계 속에서도 새로운 표현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 예술가의 시선은 10년 후를 향한다
양성원이 삶과 예술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시간을 바라보는 관점이다.
“저는 항상 이번 주보다 다음 달이 중요하고, 다음 달보다 내년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내년보다 더 중요한 것은 10년 후입니다.”
지금 당장의 결과와 성과에 집중하는 시대 속에서 아쉬운 선택을 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드러낸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활동을 미래 세대의 시간 속에서 바라본다.
“제가 지금 쌓는 벽돌 하나하나를 밟고 누군가가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있다면 그것이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에게 교육과 공연, 그리고 다양한 음악 활동은 결국 다음 세대를 위한 토대를 만드는 일이다.
○ 음악가에게 필요한 것, 균형
음악가의 삶은 깊은 집중을 요구한다. 연습과 연구를 위해 오랜 시간 혼자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연주자는 일정한 ‘이기적인 시간’을, 오롯이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시간은 결국 사회로 돌려주기 위한 준비이기도 하다.
“그 시간을 통해 더 좋은 음악을 찾고, 청중에게 더 깊은 연주를 들려주고, 후배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오감 중 한 부분이 지쳐있을 때, 예를 들어 청각이 지쳐있을 때 시각적으로 좋은 그림을 보며 충전하는 그는 이러한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폭넓은 독서도 이어간다. 역사와 소설, 종교와 철학, 그리고 미래 기술까지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는다.
“책만큼 넓은 세상을 보여주는 것은 없습니다.”
한국어, 영어, 프랑스어책을 번갈아 읽는 것도 그의 습관이다. 다양한 언어와 시선을 통해 사고의 균형을 유지하려는 노력이다.
○ 음악은 결국 인간의 이야기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그는 다시 음악의 본질을 이야기했다.
“클래식 음악은 인류의 목소리가 담긴 예술입니다.”
그래서 음악은 단지 과거의 작품이 아니라 인간이 살아온 시간과 감정, 그리고 희망을 이어가는 기록이다. 특히 첼로는 인간의 음성과 가장 닮은 악기로 불리며 깊은 정서적 공명을 만들어 낸다.
첼리스트 양성원의 음악은 삶을 이해하는 하나의 언어로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으며, 그 삶은 어떤 목소리로 다음 세대에 전해질 것인가."
[대한민국예술신문 최영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