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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의 울림, K-가곡의 혼(魂)을 세계에 심다… 소프라노 임청화 교수를 만나다

유럽이 찬사한 프리마돈나, K-가곡의 전도사로 40년을 걷다
노래하는 성악가에서 시인과 교육자로, 경계를 허문 예술 여정
한국인 최초 네덜란드 왕립음악원 수석, 그 영광을 우리 가곡에 바치다

예술은 언어를 넘어 영혼을 울리는 힘이 있다. 여기, 4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무대 위에서 찬란한 빛을 발하며, 서양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클래식 무대에 ‘한국 가곡(K-가곡)’의 얼을 심어온 진정한 프리마돈나가 있다.

1993년 네덜란드 왕립음악원 최고학부 전문연주자과정을 한국인 최초로 수석 졸업하며 유럽 무대를 호령했던 소프라노 임청화. 그는 단순한 성악가를 넘어 우리 가곡의 세계화를 이끄는 선구자이자, 시의 언어로 세상을 노래하는 시인이며, 따뜻한 마음으로 후학을 길러내는 백석대학교 문화예술학부 교수다.

데뷔 40주년이라는 거대한 산을 넘고도 여전히 새로운 예술적 영감을 향해 나아가는 임청화 교수. 그가 걸어온 경이로운 음악 인생과 깊은 내면의 철학을 <대한민국예술신문>이 직접 만나 들어보았다. [편집자주]

 


■ 소프라노 임청화 교수 (현 백석대학교 문화예술학부 교수)

○ 학력 및 수학

• 숙명여자대학교 음악대학 성악과 졸업

• 네덜란드 왕립음악원 최고학부 전문연주자과정(U.M) 한국인 최초 수석 졸업 및 오페라과 졸업

• 단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뮤지컬·연극 석사(M.A)

• 백석대학교 신학대학원(M.Div) 졸업

• 단국대학교 일반대학원 문화예술학과 Ph.D Candidate

 

○ 주요 무대 및 경력

• 1993년 오페라 《나비부인》 주역으로 유럽 무대 데뷔

• 네덜란드 여왕 초청 '모차르트 서거 200주년 기념 왕궁음악회' 독창자 (한국인 최 초)

• 오스트리아 비엔나 뮤직페어라인 황금홀 최초 한국 가곡,아리랑 초연 독창자

• 오스트리아 짤츠부르크 모차르테움 대극장 최초 아리랑 초연

• 미국 카네기홀 초청 아리랑 독창회 등 국내외 독창회 29회 이상 개최 및 수천 회 협연

• 2025년 9월 임청화 데뷔 40주년 기념 독창회 개최 (롯데콘서트홀)

• K-클래식 세계화 운영위원회 예술총감독, 홍난파가곡제 예술총감독,대한민국음악제 예술 총감독

 

○ 예술 및 사회 공헌 활동

• 2016년 계간 《열린문학》 시인 등단 및 (사)샘터문학 자문위원

• 국제구호개발 NGO 월드비전 홍보대사 활동

• 사)지구촌 나눔재단 홍보대사

• 사)홍난파가옥 이사

• 사)이승만기념사업회 이사

• GBMK(God Bless Mission Korea)이사장

 

 

 

40년의 음악 여정과 세계 무대

1. [도입 및 소회]

작년 롯데콘서트홀에서 데뷔 40주년 기념 독창회를 성황리에 마치셨습니다. 소회가 어떠신지요?

임청화 교수: 무대 위에서 보낸 40년이라는 시간은 마치 찰나의 꿈처럼 지나갔습니다. 돌아보면 매 순간이 기적이자 은혜였지요. 수많은 관객의 눈빛, 오케스트라의 숨결, 그리고 제 목소리가 허공에서 하나로 얽히던 그 황홀한 순간들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습니다. 40주년은 마침표가 아니라, 제 음악이 지나온 길을 조용히 관조하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다시 가다듬는 쉼표라고 생각합니다. 여전히 무대에 오르기 전엔 가슴이 뛰고, 그 설렘이 저를 살아있게 합니다.

 

 

2. [음악의 기원]

처음 성악의 길에 들어서게 된 계기, 그리고 소프라노로서의 삶을 선택하게 만든 결정적인 매력은 무엇이었나요?

임청화 교수: 고3 늦은 시기에 성악을 시작한 것은 저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노래는 제게 숨을 쉬는 것과 같았습니다.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내면의 깊은 감정들이 선율을 타고 나올 때 비로소 해방감을 느꼈죠. 수많은 악기가 저마다의 아름다운 소리를 내지만, 인간의 '목소리'만큼 영혼의 지문을 가장 선명하게 담아내는 악기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소프라노로서 그 높은 음역의 한계를 넘어설 때 느껴지는 자유로움, 그리고 가장 원초적인 악기인 제 몸을 통해 누군가의 마음에 가닿을 수 있다는 점이 저를 평생 이 길에 머물게 했습니다.

 

 

3. [도전과 성취]

네덜란드 왕립음악원 최고학부 수석 졸업 등, 동양인으로서 유럽 무대에서 인정받기까지의 원동력은 무엇이었습니까?

임청화 교수: 당시만 해도 동양인 성악가가 유럽의 정통 무대 중심에 서는 것은 거대한 유리천장을 깨는 일이었습니다. 언어의 장벽과 문화적 편견을 뛰어넘는 유일한 방법은 '압도적인 실력과 진정성'뿐이었죠. 남들이 한 번 연습할 때 열 번을, 악보가 닳아 없어질 때까지 파고들었습니다. 서양인들이 가진 웅장한 체격과 발성을 쫓아가기보다, 한국인 특유의 섬세한 감수성과 끈기를 제 무기로 삼았습니다. 제 안의 절실함이 결국 그들의 마음을 열게 한 열쇠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4. [역사적 무대]

1991년 모차르드 서거 200주년 기념음악회에 네덜란드 여왕 초청 무대에서의 가장 잊지 못할 에피소드가 있다면요?

임청화 교수: 왕궁극장이라는 공간이 주는 압도감과 여왕 앞이라는 중압감이 엄청났습니다. 하지만 네덜란드 바로크 오케스트라의 깊은 음색과 마에스트로 지히스발트 쿠이켄의 따뜻한 인품으로 이끌어 주는 음악은 편안했던 리허설 그 이상의 완벽한 호흡과 발성으로 첫 음을 내는 순간, 긴장감은 오히려 음악에 집중 할 수 있었고 오직 연주를 통하여 느낄 수 있는 오케스트라와의 하모니는 마치 천상의 음악처럼 황홀 했었지요...왕궁 극장에서의 경이로운 경험은 지금도 생생하기만 합니다. 연주가 끝난 후 쏟아지던 기립박수, 그리고 언론에서 저를 향해 '아시아에서 온 진주'라고 평해주었을 때의 벅찬 감동은 지금도 제가 음악에 게을리 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제 개인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예술가'로서 인정받았다는 자부심이 제 음악 인생의 든든한 닻이 되어주었습니다.

 

 

K-가곡의 선구자, 세계화를 향한 헌신

5. [K-가곡을 향한 애정]

우리 가곡의 세계화에 깊은 애정과 사명감을 가지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임청화 교수: 유럽에서 오페라와 서양 가곡을 부르며 박수갈채를 받을수록, 제 안 깊은 곳에서는 묘한 갈증이 일었습니다. 한국 성악가로서의 Identity(정체성)을 찾고 싶었습니다.'나의 뿌리는 어디인가, 나의 정서는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이었죠. 서양 음악의 화려함도 좋지만, 우리 민족의 한(恨)과 흥(興), 그리고 시적인 정서가 고스란히 녹아있는 한국 가곡을 부를 때 제 영혼이 가장 깊게 공명함을 느꼈습니다. 훌륭한 우리 가곡이 세계의 예술 가곡(Art Song) 반열에 오르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확신, 그것이 제 사명감의 시작이었습니다.

 

 

6. [세계화의 비전]

한국 가곡이 세계 무대에서 어떤 경쟁력을 가지며,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일까요?

임청화 교수: K-가곡의 가장 큰 무기는 우리 언어만이 가질 수 있는 '시어(詩語)의 아름다움'입니다. 아름다운 우리말 시에 서양의 화성학을 접목해 탄생한 선율은 독보적인 서정성을 지닙니다. 슈베르트의 가곡(Lieder)이나 샹송, 칸초네가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듯, 우리 가곡과 아리랑도 고유의 철학과 미학을 잃지 않으면서도 세계인이 공감할 수 있는 현대적인 해석과 편곡을 더해야 합니다. 외국 성악가들이 자신의 독창회 레퍼토리에 한국 가곡을 자연스럽게 올리는 날, 그것이 진정한 세계화의 완성일 것입니다.

 

 

7. [인생 가곡 추천]

교수님의 예술관을 잘 대변하는 '인생 가곡' 한 곡을 추천해 주신다면요?

임청화 교수: 많은 곡을 사랑하지만, 최영섭 작곡가의 '그리운 금강산',‘천년의 그리움’이나 홍난파 작곡가의 ‘봉선화’,‘사랑’ 그리고 제 고향의 노래‘두물머리 아리랑’ 을 꼽고 싶습니다. 특히 무대에 설 때마다 가사 한 줄 한 줄에 담긴 애국심과 민족의 염원이 제 심장을 때립니다. 예술가는 시대의 아픔과 희망을 노래하는 대변자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가곡에는 그런 묵직한 시대정신과 아름다운 위로가 동시에 담겨 있습니다.

 

 

경계를 넘나드는 예술가

8. [시인으로서의 삶]

시인으로 등단하신 문학적 활동이 교수님의 음악에 어떤 영감을 주는지 궁금합니다.

임청화 교수: 노래를 부르는 것은 남의 이야기를 제 목소리로 뿜어내는 '날숨'이라면, 시를 쓰는 것은 세상을 관찰하고 제 내면을 들여다보는 '들숨'과 같습니다. 글을 쓰고 다듬는 과정은 제 음악을 더욱 입체적으로 만들어 줍니다. 악보 이면의 행간을 읽어내는 힘, 단어 하나 하나가 품고 있는 미세한 온도를 찾아내는 감각은 오직 문학을 통해서만 깊어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저에게 글쓰기와 노래는 결국 '인간의 삶'을 이야기하는 씨실과 날줄 같은 언어입니다.

 

 

9. [장르의 융합]

뮤지컬·연극 등을 공부하시며 다른 무대 예술을 접하신 경험이 남긴 통찰은 무엇입니까?

임청화 교수: 정통 클래식은 고도의 테크닉과 형식을 요하지만, 자칫 관객과 유리된 '그들만의 리그'가 될 위험도 있습니다. 연극과 뮤지컬을 공부하며, 무대 위에서 '연기'하고 '소통'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완벽한 발성도 중요하지만,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결국 진실한 감정 전달이라는 것을 깨달았죠. 덕분에 제 무대는 그저 소리를 내는 곳이 아니라, 관객과 삶의 희로애락을 깊이 나누는 드라마틱한 공간으로 진화할 수 있었습니다.

 

 

10. [나눔과 영성]

목사 안수를 받으시고 나눔 활동을 병행하시는 것이 삶과 음악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요?

임청화 교수: 예술의 궁극적인 목적은 '치유와 회복'입니다. 제가 가진 목소리는 제 것이 아니라, 세상을 아름답게 하라고 하나님께서 잠시 빌려주신 도구일 뿐입니다. 13만 경찰 선교의 복음화를 위한 영성 활동과 월드비전 같은 나눔 활동은 예수님의 섬김의 정신을 사랑으로 채우는 과정입니다. 헐벗고 상처받은 이웃을 위해 노래할 때, 카네기홀에서 노래할 때보다 더 크고 뜨거운 예술의 본질을 경험합니다. 제 노래가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와 기도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무대에 오릅니다.

 

 

교육자로서의 철학과 후학 양성

11. [교육 철학]

제자들에게 기술적인 테크닉 외에 가장 강조하시는 무대 위 '마음가짐'은 무엇입니까?

임청화 교수: '인품이 곧 목소리'라는 사실입니다. 기술은 훈련으로 다듬을 수 있지만,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깊은 소리는 오직 성숙한 내면에서만 나옵니다. 제자들에게 항상 '노래하기 전에 먼저 인격을 갖춘 따뜻하고 진실한 사람이 되라'고 가르칩니다. 악보를 기계적으로 읽어내는 가창기계가 아니라, 작곡가의 의도를 읽어내고 관객의 마음에 온기를 전할 줄 아는 인향의 따뜻한 메신저가 되어야 한다고 늘 강조합니다.

 

 

12. [청년 예술가를 위한 조언]

대한민국 예술계를 이끌어갈 청년 예술가들에게 전하고 싶은 조언 부탁드립니다.

임청화 교수: 지금의 예술 시장이 춥고 매섭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겨울이 깊을수록 봄꽃이 화려하게 피어나는 법입니다. 당장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좇기보다, 묵묵히 자신만의 뿌리를 깊게 내리십시오. 남과 비교하지 말고, 스스로의 목소리와 예술 세계에 집중하며 단단해지기를 바랍니다. 진심을 담은 예술은 결국 시대와 환경을 초월하여 누군가의 마음에 반드시 가닿게 되어 있습니다.

 

 

13. [세대를 잇는 사명]

교수님께서 평생을 바쳐 개척해 오신 'K-가곡의 세계화'라는 웅대한 비전을 이제는 강단에서 제자들과 함께 나누고 계실 텐데요. 후학들이 앞으로 국내외 무대에서 어떤 역할과 사명을 감당하는 예술가로 성장하기를 바라시는지요?

임청화 교수: "제가 걸어온 지난 40년의 길은 척박한 들판에 K-가곡이라는 작은 씨앗을 심고 가꾸는 과정이었습니다. 이제 우리 제자들은 그 씨앗이 피워낸 꽃을 들고 전 세계로 나아가는 당당한 '문화 사절단'이 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서양의 훌륭한 오페라 주역으로 무대에 서는 것도 물론 자랑스럽고 빛나는 일입니다. 하지만 그에 머물지 않고, 가장 한국적인 정서와 우리말 시어의 아름다움을 세계인 앞에 자신 있게 꺼내놓을 수 있는 주체적인 예술가가 되기를 바랍니다. 훗날 세계 유수의 오페라 극장에서 우리 제자들의 입을 통해 한국 가곡이 앙코르곡으로 자연스럽게 울려 퍼지는 날, 그것이 제가 교육자로서 꾸는 가장 아름다운 꿈이자 제게 남은 마지막 사명입니다. 

 

 

 

진정한 예술의 가치와 향후 계획

14. [예술의 힘]

40년간 무대에 서 온 예술가로서 생각하시는 '진정한 예술의 힘'이란 무엇인가요?

임청화 교수: 예술은 단절된 세상을 연결하는 보이지 않는 다리입니다. 슬픔에 빠진 이를 일으켜 세우고, 분노를 가라앉히며,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들을 하나의 감동으로 묶어냅니다. 계산과 이익이 난무하는 각박한 세상 속에서, 우리가 여전히 존엄한 인간임을 잊지 않게 해주는 마지막 보루, 그것이 바로 예술의 위대한 힘이라고 믿습니다.

 

 

15. [새로운 도약]

앞으로 새롭게 도전하고 싶은 무대나 기획 중인 특별한 프로젝트가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임청화 교수: 지금까지 그래왔듯, 저의 남은 여정도 K-가곡의 아름다움을 세계에 알리는 데 바칠 것입니다. 해외 유명 극장들에서 우리 가곡만으로 이루어진 무대를 더 많이 올리고 싶고, 재능 있는 후배들이 세계 무대로 나아갈 수 있는 디딤돌 역할을 탄탄히 다지고 싶습니다. 또한, 제 마음의 조각들을 모아 두 번째 스토리텔링 시집이나 에세이를 출간하여 독자들과 글로도 더 깊이 만나고 싶습니다.

 

 

16. [마무리 인사]

마지막으로 대한민국예술신문 독자 여러분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임청화 교수: 예술을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해주시는 대한민국예술신문 독자 여러분과 이렇게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어 행복합니다. 여러분의 따뜻한 관심과 응원이 우리 예술가들이 무대 위에서 숨 쉬게 하는 가장 큰 원동력입니다. 저 임청화는 앞으로도 제 목소리가 다하는 날까지, 여러분의 삶에 위로와 희망이 되는 아름다운 K-가곡을 진심을 담아 노래하겠습니다. 그리고 더 넓은 곳에 우리 가곡을 알리는 지경을 넓여가는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늘 평안하시고, 예술이 주는 기쁨 속에서 하루하루가 풍성해지시기를 기도합니다.

 

 

[에필로그 (Epilogue)]

긴 인터뷰를 마친 뒤에도 임청화 교수의 목소리에는 시들지 않는 깊은 여운이 배어 있었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에 안주하기보다, 언제나 척박한 땅을 일구며 묵묵히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 온 40년. 유럽 무대를 호령했던 프리마돈나의 수식어 너머에는 한국 가곡을 세계의 언어로 승화시키겠다는 숭고한 집념과, 삶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예술의 본질에 대한 굳건한 믿음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가 부르는 노래는 단순한 선율을 넘어 우리 민족의 정서가 촘촘히 엮인 한 편의 서사시이자, 뒤따라오는 후학들에게 쥐여주는 뜨거운 이정표다. 무대 위에서, 강단에서, 그리고 나눔의 현장에서 그가 계속해서 써 내려갈 다음 악장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대한민국예술신문>은 K-가곡의 위대한 선구자이자 참된 예술가, 임청화 교수가 새롭게 열어갈 찬란한 예술의 지평을 깊은 존경의 마음을 담아 응원한다. [편집자주]

 

[대한민국예술신문 최영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