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문화 수준을 말할 때 우리는 흔히 대형 오케스트라, 화려한 오페라·뮤지컬 레퍼토리를 먼저 떠올린다. 그러나 대형 공연장의 스포트라이트보다는 작은 공간에서 연주자의 숨소리까지 기억되는 곳이 있다. 바로 대구의 ‘공간울림’이다. 30여 년간 그 공간을 만든 이상경 대표의 삶 또한 그러하다.


아파트 거실을 연주 홀로 바꾸던 날 – 한 오르가니스트의 결심
1990년대 중반, 이상경 대표는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두 아이를 키우는, 비교적 안정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전공은 오르간, 교회와 학교에서의 연주·교육 활동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당시 대구 지역 다수 대학에서 오르간 수업은 파이프 오르간이 아닌 전자오르간으로 대체되던 시기라, 이는 그녀에게 아쉬움으로 다가왔다.
“학교에서 만나 함께 공부하는 제자들에게 진짜 오르간의 숨결을 공유하고 싶었어요. 제가 가진 악기를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이 점점 커졌죠.”

그것의 결과물로 작은 공연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하우스 콘서트’가 되었다. “오르간이 있는 아파트 거실이 연주홀로 된 거죠. 그렇게 문을 연 하우스 콘서트는 1994년부터 오늘까지 아파트 거실에서 주택으로, 다시 수성구 상동의 작은 공간을 거쳐 지금의 대덕마을로 여러 번의 이사를 거쳐 오늘까지 이어지게 되었어요.”
경제적으로 넉넉한 결정은 아니었다. ‘언제 문 닫을지 모르는 곳’, ‘이런 걸 누가 보러 오겠느냐’라는 우려 섞인 말도 따라왔다. 하지만 이상경 대표는 ‘음악을 나누고 싶어서 시작한 일’이라는 초심을 믿고 버텼다. 연주자이자 엄마, 교수라는 여러 이름에서 ‘작은 공간에서 큰마음을 나누는 사람’으로 새로운 정체성을 더해 간 것이다.
공간울림 – 하우스 콘서트에서 전문예술단체로
이곳에서 울리는 소리는 단지 연주자와 관객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데 그치지 않았다. 클래식, 재즈와 국악, 크로스오버와 인문학 강연까지 수많은 장르와 사람들이 오가며, 작은 공간은 어느새 도시의 문화적 거점이 되었다. 전문 연주자의 초청 연주회뿐 아니라 신예 연주자를 위한 무대, ‘사랑의 음악회’와 같은 사회공헌 프로그램까지 이어지면서, 공간울림은 ‘공연장’이자 ‘교육기관’, 그리고 ‘지역 소통의 공간’이라는 복합적인 성격을 띠게 되었다. 2007년 이 민간 공간은 대구시로부터 전문예술단체로 공식 인정받는다. 한 오르가니스트의 진정한 음악의 열정으로 시작해 지역을 대표하는 예술단체로 성장한 것이다.


‘작은 공간, 큰 울림’의 실제
공간울림의 공연 수를 들여다보면 이상경 대표의 일상이 얼마나 숨 가쁘게 흘러왔는지 짐작할 수 있다. 어떤 해에는 한 해 180~200회에 육박하는 공연과 행사가 이 공간에서 열렸다. 그중에는 관객으로 가득 찬 실내악 연주회도 있었고, 비 오는 평일 저녁 몇 명의 관객과 함께한 바흐 칸타타 연주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상경 대표의 기준에서 중요한 것은 좌석 점유율이 아니라, 그 시간에 이 공간 안에 음악이 어떻게 존재했느냐였다. 여기서 그녀의 진중한 면이 드러난다.
이런 진심과 감동이 함께하여, 공간울림은 단순한 공연장이 아니라 일상에 지친 영혼을 달래주는 퀘렌시아가 아닐까?
이상경 대표가 여러 인터뷰에서 반복해 강조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도시가 진짜로 성장하려면, 눈앞의 실용성만 좇는 문화정책으로는 부족합니다. 순수예술의 토대가 있어야, 어떤 장르도 깊이를 가질 수 있습니다.” 그녀는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서 ‘순수예술의 기반’을 지키는 일을 사명으로 받아들인다. 그 실천의 한 축이 바로 2009년부터 매년 이어 온 여름 음악 축제이다.

‘모차르트’ ‘바흐’ ‘러시아 음악’ 등 특정 작곡가와 지역, 음악사를 깊이 있게 조명하는 이 축제는, 지역 음악계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한 시대와 작곡가를 둘러싼 미학, 철학, 역사적 맥락까지 함께 소개하며, 관객이 음악을 ‘듣고 감동하는 수준’을 넘어 ‘이해하고 사유하는 수준’으로 이끌고 있다.
이는 도시의 기억과 시간, 인간의 내면을 어떻게 다루느냐의 문제와도 직결된다. 깊이 있는 클래식, 정교하게 쓰인 실내악, 경계의 확장은 우리에게 삶을 천천히 돌아볼 수 있는 ‘느린 시간’을 제공한다.


그녀의 삶에서 우리가 배우는 것
이상경 대표의 음악적 삶을 단순히 “성공한 민간예술단체 운영”으로만 요약하면,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된다. 더 본질적인 의미는 다음의 세 가지에 있을 것이다.
1. 공간을 통해 관계를 디자인한 음악가
연주자, 관객, 지역사회가 하나의 ‘공동체’로 호흡하는 무대를 만들어 왔다. 공간울림은 ‘무대이자 감동과 쉼이 있는 ‘관계의 장’이다.
2. ‘오늘의 흥행’보다 ‘내일도 기억될 공연’을 지향
티켓 판매량과 화제성보다, 시간이 지난 뒤에도 관객의 내면에 남는 음악적 경험을 우선해 왔다.
3. 청소년 관객이 연주자로 성장하는 과정을 함께 지켜보는 공간
어린 시절 관객으로 찾아왔던 청소년이 훗날 이 무대에서 연주자로 서는 장면이 가능한 공간울림은 세대와 세대를 잇는 ‘음악적 성장의 무대’를 제공한다.


이상경 대표님의 마음에 머무는 한 곡은 무엇인가요?
79학번 새내기의 첫 대학 생활로 "유터피" 라는 고전음악 동아리에 등록하고 "녹향"이라는 음악감상실을 간 날이었는데 거기서 처음 영접한 차이콥스키(Tchaikovsky)의 피아노협주곡 1번(Piano Concerto No.1 Bb minor Op.23)입니다.
“거대한 오케스트라의 하행 도입부가 내 마음을 요동치게 했죠. 이날의 첫 만남 이후 이 음악은 나의 스무 살이 시작되는 첫 기억이 되었으며, 그 후 음악 하며 살아온 오랜 시간 내 마음의 한 곡으로 남아 있어요.”
공연이 끝난 뒤 관객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조금은 다른 눈으로 자기 일상을 바라보게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음악이 주는 깊은 울림이 아닐까? ‘공간울림’이 그러하다. 이곳에서 마주한 하나의 선율, 한 줄의 가사가 삶을 다시 견딜 작은 힘이 되는…. 삶과 음악의 경계를 허물어 ‘아름다운 세상’을 향해 울림을 확장해온 이상경 대표의 진심을 전한다.
[대한민국예술신문 최영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