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송학 테너 – 예술은 삶의 태도다.

노래의 고요한 품격 – 테너 심송학의 삶과 예술

음악으로 빚은 삶, 예술의 품격을 노래하다.

 

31년간 경북대학교 예술대학 음악학과에서 후학을 길러온 심송학 테너는 정년퇴임 이후에도 여전히 음악의 숭고함을 전하고 있다. 전공자를 넘어 비전공자에게까지 성악의 기본과 감성의 품격을 전하며, ‘어떤 삶이 행복한 삶인가?’라는 질문에 자신의 행보로 답을 대신한다.

 

독일 가곡의 내면을 ‘스승의 온기’로 배운 시간

 

서울대 성악과를 졸업하고 독일 하이델베르크-만하임 음악대학원에서 공부한 그는 독일 가곡에 남다른 애정을 보여준다. 그 출발점은 서울대 재학 시절 평생의 은사 정훈모 교수의 영향이다. 국내에서 ‘독일 가곡 독창회’ 개최의 선구자로 기억되는 정훈모 교수의 가르침은, 그가 리트(Lied)의 ‘내면적 분위기’로 들어가는 통로가 되었다.

 

 

 

“정훈모 선생님의 가르침 덕분에 독일 가곡을 사랑하게 되었죠. 선생님께 배운 슈만과 슈베르트의 가곡을 부를 때면 지금도 스승의 따뜻한 영혼을 느끼게 됩니다.”

 

독일 가곡은 ‘시(詩)와 음악의 결합’으로, 그 시의 결을 건드리지 않는 내밀함이 곧 음악가의 품격이 된다. 말보다 느리게, 그러나 더 깊게 도달하는 독일 가곡은 시의 호흡을 따라가되 감정의 섬세한 결정을 드러낸다. 시가 품고 있는 고독, 여백 등은 인간 내면의 다양한 감성을 경험하게 하고 고요한 평정으로 이끈다. 시와 음악의 정갈함을 그는 스승에게서 배웠고, 이후 교육 현장과 지역 문화 안에서 그대로 실천해 왔다.

 

지역의 음악사를 ‘조직과 교류’로 확장하다.

 

1983년부터 경북대학교 예술대학 음악학과에 몸담았던 그는 1985년 대구 최초의 ‘독일가곡연구회’를 창단했고, 1997년 ‘한국가곡회’를 만들어 예술가곡의 기반을 넓혔다.

 

 

 

특히 주목할 대목은 국제교류다. 경북대와 일본 나가사키대 간 교류를 이끌며 한·일 합동 연주회와 마스터 클래스를 개최, 국제교류 음악회를 지속적으로 견인했다. 24년간 이어진 양국 교류는 단순한 ‘행사 연속’이 아니라, ‘신뢰가 축적된 교육·연주 네트워크’의 역사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는 또한 2002년부터 나가사키에서 개최되는 ‘마담 버터플라이 국제콩쿠르’에 한국 대표 심사위원으로 참여해 지금까지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푸치니 오페라 〈나비부인〉의 무대인 나가사키에서 차세대 성악가를 발굴하며 그의 교육자적 정체성을 또 한 번 증명한다.

 

 

제자들에게 전하는 말

 

그가 학생들에게 반복해 온 당부가 있다. 바로 음악적 기술보다 먼저 ‘태도’를 겨냥한다.

‘순수음악을 전공하는 학생들은 많은 인내와 성실로 하루하루를 꾸준히 공부해야 합니다. 자연과 더불어 자신을 반성하고, 자연 속에서 더 큰 삶의 철학을 배우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가 공부하는 음악은 이 사회 속에서 꽃을 피우는 것이므로, 사회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언제나 봉사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또한 사회 속에서 모범적인 삶의 주인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의 정년퇴임 음악회의 레퍼토리 중 하나였던 괴테의 시에 의한 〈방랑자의 밤 노래〉는 ‘성찰의 기점’으로 보인다. 괴테의 시 행간에는 방랑하는 이가 자아를 넘어 무한에 대한 인식으로 나아가는 모습이 담겨있다. 무한은 나와 세계를 초월하여 종교적이며 예술적으로 승화되는 숭고와 동경의 세계이다. 방랑자의 밤, 자연의 침묵, 낮아지는 숨—그 상징은 결국 ‘큰 소리로 증명하려는 욕심’을 내려놓는 일과 닿아 있다. 그에게 음악은 화려한 성취가 아니라, 삶의 균형을 회복하는 방식이다.

 

Q. 교수님은 일상에서 오는 감정의 균열을 어떻게 회복하시나요?

 

A. 쇼펜하우어 (Arthur Schopenhauer)는 ‘인생은 고통과 권태를 오고 가는 시계추와 같다’라고 합니다. 살아가는 데 있어, 삶의 의지라는 이름의 욕망이 끊임없이 고개를 들고 그 욕망이 때로는 고통의 근원이기도 하죠, 저는 음악을 통해 일상의 균형을 되찾습니다. 틈틈이 집 근처 진밭골을 산책하며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2악장을 듣기도 하죠. 자연이 주는 휴식과 더불어 내면에 귀 기울이며 대화하다 보면 감정의 파장은 어느 순간 고요함으로 다가옵니다.

 

 

정년퇴임 이후에도 예술은 계속된다. -심송학 성악 아카데미-

 

퇴임 후 그는 음악을 배우고자 하는 비전공자들에게도 가곡을 가르치는 ‘심송학 성악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다. 여기서 아카데미의 의미는 단순한 취미 강좌를 넘어선다. 클래식 성악을 전문가의 전유물에서 삶을 노래하는 언어로 지역 문화를 확장한 것이다.

 

이 아카데미의 발표회가 14회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지속’ 자체가 하나의 철학임을 말해준다. 성악은 연령의 변화에 따라 기량의 조건이 달라지지만, 그 변화 자체를 예술적 성찰의 재료로 삼아 훈련으로 감성을 지켜내는 시간이었음이 분명하다.

 

 

Q. 제자가 바라본 ‘심송학 성악 아카데미’ 수업 시간은 어떠한가요?

 

A. 그저 ‘취미로 노래하는 사람’으로 대하지 않으세요. 기본에 충실한 발성부터 발음, 그리고 작곡가에 대한 정서까지 세심하게 알려주시며 가곡에 몰입할 수 있게 도와주시죠. 전공과 비전공자의 경계를 넘어, 표현의 절제와 균형을 노래하며 삶의 지혜까지 이를 수 있는 시간이라 수업이 늘 기다려지고 설렙니다.”

 

비전공자에게 흔히 주어지는 ‘이 정도면 된다.’라는 온화한 타협을 그는 허용하지 않는다. 대신 ‘감성은 나이 들지 않는다’, ‘기본을 가볍게 여기지 말라’는 기준을 제시한다. 그 엄격함은 누군가를 밀어내는 경계가 아니라, 존중의 방식이다. 쉽게 해주는 친절보다, 끝까지 배울 수 있게 이끌어 주는 배려이자 단호함으로 음악을 진지하게 전한다.

 

Q. 심송학 교수님의 마음에 머무는 음악 중 한 곡은 어떤 곡일까요?

 

A. “여러 곡이 많지만, 30여 회의 독창회에서 꼭 부르는 노래가 있습니다. 슈베르트 〈An die Musik〉입니다. 오, 사랑스런 예술이여!/ 수많은 회색빛 시간 속에서/ 삶의 거친 소용돌이가 나를 휘감을 때마다/ 당신은 내 마음에 따듯한 사랑을 불러일으켰고/ 나를 더 나은 세계로 이끌어 주었지요/ 예술에 감사하는 가사가 너무 좋아요.”

 

심송학 테너와 음악에 관해 대화하다 보니,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천적 지혜가 떠오른다. ‘상황 속에서 가장 적절한 선택을 반복하며 삶의 품격을 세우는 능력’인 실천적 지혜를 음악으로 전하는 교수님! 예술을 통해 한결같이 ‘기본’과 ‘감사’, ‘절제’라는 덕목을 꾸준하게 탁월함으로 나아가는 모습에서 음악의 숭고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어떤 삶이 행복한 삶인가?’라는 질문을 말로만 던지지 않는다. 인내와 성실함으로 꾸준히 공부하고, 자연 속에서 자신을 반성한다. 그리고 음악으로 봉사하며 ‘삶의 주인’이 되는 길을 안내하고 실천하고 있다.

 

오늘은 그가 사랑한 독일 가곡을 들으며 감정의 고조보다 시의 어휘 하나하나에 가만히 몸을 기댄다. 말이 아닌 숨, 멜로디보다 정서의 흐름을 따라가며 나를 이해하고, 타인을 이해하는 ‘인간다움’을 회복하는 시간을 가져본다. 음악은 또 그렇게 우리의 흐트러진 삶을 고요한 공감으로 다시 일으키고 관조적 삶으로 나아가게 한다.

 

 

 

[대한민국예술신문 최영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