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한의대학교 부설 치유과학연구소의 겸임, 객원연구원과 함께 경주박물관 금관전시회를 다녀왔다. 치유과학연구소에 대해 알아보고, 그들이 예술과 함께 지향하는 치유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본다. 치유과학연구소는 ‘치유’를 특정 치료기법 하나로 한정하지 않고, 심리·신체·생활·문화·기술을 포괄하는 삶의 전반적인 회복 과정으로 바라보는 학제 간 융합 연구기관이다. 연구소는 치유를 문제가 발생한 이후의 ‘치료’가 아니라, 삶의 리듬과 환경 속에서 미리 돌보고 예방하는 통합적 역량으로 이해한다. 그 문제의식은 박물관·미술관 경험을 ‘지식 전달’이 아닌 ‘자아 회복의 경험’으로 재해석한 신라 금관 탐방 세미나에서 구체적 실천으로 구현됐다. 연구소가 던지는 질문은 명료하다. '치유는 어떻게 과학이 될 수 있는가, 그리고 그 과학은 어떻게 다시 사람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는가.' 1. 치유를 '삶의 회복 과정'으로 정의하는 학제 간 융합 연구기관 설립 목적은 분명하다. 치유과학 기반의 융복합 연구를 통해 예방 중심의 통합심리치유 모델을 구축하고, 연구 성과가 학문에 머무르지 않고 지역사회와 정신건강 증진으로 연결되도록 하는 것이다. 즉, 연구실 안에서 끝나는 치유가 아니라 사람
삶은 어느 순간부터 반복이 되고, 반복은 무감각을 낳는다. 특히 중년의 삶은 책임과 수고로 빼곡하게 채워지면서도 정작 ‘나’를 위한 시간은 희미해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 ‘잊힌 시간’ 위에, 조용히 반짝이는 일이 있었다. 바로 노래, ‘가곡’을 배우는 일이었다. 이번 2025 대한민국예술신문 Winter 음악콩쿠르 [일반부 & 시니어부]에서 입상한 이경옥, 김수련, 김미향 세 명은 모두 성악을 전공하지 않은 일반인이지만, 중년의 어느 날부터 가곡을 배우며 음악을 생활 속으로 가져왔다. 처음엔 호기심으로 시작한 음악이었지만, 무대는 떨림과 설렘의 공간이 되었다. ‘노래하는 순간, 내 안의 또 다른 내가 태어난다.’ 가족과 일, 책임과 역할이 겹겹이 쌓이면서 삶은 성실해지지만, 마음은 무뎌지기 쉽다. 그런데 이번 대회에 참가한 세 사람의 이야기는 그 고정관념을 조용히 뒤집는다. 전문 연주자가 아닌 ‘생활인’으로서 노래를 시작했고, 그 노래는 삶의 리듬을 되돌리고 관계의 온도를 회복시키는 통로가 되었다. 이번 인터뷰는 입상자 이경옥·김수련·김미향 세 명을 통해, 중년기 음악 활동이 어떻게 일상을 일으키고, 감정을 조율하며, 삶의 품위를 유지하는지 기록한다
제주라는 삶의 자리에서 작곡가 안현순은 언제나 '음악이 사람에게 무엇이 될 수 있는지'를 먼저 묻는다. 화려한 기교보다 진심을, 완성된 형식보다 삶의 온기를 선택해 온 그의 합창은 웃음과 위로, 그리고 조용한 행복을 관객에게 건넨다. 이번 인터뷰는 제주의 자연과 역사, 이웃의 삶 속에서 길어 올린 그의 음악 세계를 따라가며, 예술이 삶과 만날 때 비로소 생겨나는 깊은 울림을 들여다본다. [인터뷰/글. 조정인 발행인, 최영민 이사, 황유진 편집장] [궁금해요 (1)] '꼬마 반주자의 설렘' - 초등학교 5학년이라는 어린 나이에 작은 교회의 반주자로 음악을 시작하셨지요. 당시 발이 겨우 닿는 피아노 앞에 앉아 찬송가를 연주하던 어린 안현순의 마음은 어땠나요? 그때 느꼈던 순수한 행복이 지금 작곡하시는 곡들에도 여전히 어떻게 녹아 있는지 궁금합니다. 네, 그 시절을 떠올리니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는데요, 어린시절에 처음 반주를 하게 됐을 때, 찬송가 반주 자체도 정말 떨렸지만 기도가 끝나는 '아~멘!' 후에 기도송의 전주를 자신있게 차고 나갈 수 있을까 엄청 콩닥거렸던 그 순간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네요~. 찬송가 반주 연습을 통해
새해는 흘러간 시간을 매듭짓고 다가오는 날들을 맞이하는 시기로 누구에게나 기대와 설렘을 불러온다. 이 새로움을 단지 이전과의 단절이 아니라 그 시간을 품고 다시 살아내는 의지로 본다면 떠오르는 이가 있다. 바로 배우 이지민이다. 목소리는 부드럽고 차분하다. 그러나 그 느린 호흡이 가벼운 유순함으로 흐르지만은 않는 이유가 있다. 그녀의 말 사이에는 오래 견딘 시간의 밀도, 삶을 쉽게 단정하지 않는 신중함, 그리고 흔들리며 다져진 단단함이 배어있다. 포기한 적 없습니다. 잠시 접어둔 것뿐이에요. 어릴 절부터 막연한 동경이 아니라 배우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또렷했던 그녀는 누군가의 삶을 살아보고 감정을 건네는 일이 자연스러운 꿈이었다. 현실 때문에 안정적인 길을 택해 영어 교사가 되었지만, 배우에 대한 마음은 늘 그녀 안에 남아 있었다. 20대에 연극배우로 7년간 활동했지만, 생계를 위해 연기를 그만두게 된 후 결혼하고 교사, 엄마, 아내, 며느리로 사는 삶을 살았다. 하지만 그 시간은 배우로서의 공백이 아니었다. 그 모든 일상이 삶의 감정과 경험으로 축적되어 결국 지금의 ‘이지민’ 배우로 서 있게 했다. “제 삶을 통과하며 만들어진 감정들이 무대 위에서 더 진정
이강소 작가의 전시가 한창인 대구미술관은 차가운 겨울바람과 달리 잔잔한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다. 평소 관심 있게 지켜보던 작가의 작품을 직접 마주한다는 설렘 속에 유난히 포근한 음성의 해설이 들려온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도슨트 정희선이다. 그녀는 고등학교 시절 미술을 전공하고 싶다는 마음은 있었지만, 가정 형편상 꿈을 접어야 했고 결국 문학을 전공했다. 결혼 후 아이를 키우고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면서 미술은 취미의 형태로 남겨두었다. 미술 관련 책을 읽고, 취미 미술 수업을 들으며, 아트페어에서 그림을 즐기는 것이 그녀에게 미술과의 접점이었다. 그러던 중 코로나 시기에 우연히 접한 대구미술관의 ‘도슨트 양성 교육’ 공지를 본 그녀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저 미술이 좋아서 시작한 도슨트란 직업이 정확히 뭔지도 모른 채 무식해서 용감하게 시작했다며 조심스레 고백한다. 막상 시작해 보니 도슨트는 ‘가벼운 설명’의 일이 아니었다. 그녀는 도슨트 활동의 관문을 ‘세 개의 고개’로 정리한다. 첫 고개는 전시 스크립트를 쓰는 일, 다음은 시연, 마지막은 처음 관객 앞에서 말하는 순간이다. ‘매 전시가 시작될 때마다 고개를 세 번 넘는다’라는 말처
‘소란 없이 자신의 일을 다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위대함이다'라는 문구가 떠오른다. 겉으로는 평온하되 내면에서는 매 순간 성장을 위한 용기 있는 선택을 보여주는 음악가가 있다. 이광호 지휘자가 그러하다. 그는 화려한 수사보다,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서 책임과 성실로 음악을 증명하고 있다. 온기를 느끼며 시작한 피아노 그리고 바이올린 음악을 좋아하는 가족들과 피아노 앞에 모여 ‘365 애창 가곡집’을 함께 화음 맞추던 기억은 그에게 음악은 가장 따뜻한 관계의 언어로 다가온다. 다섯 살에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고 초등학교 시절 ‘남자가 피아노를 친다’라는 놀림을 받으면서 바이올린으로 전향한 일화는 이제 그가 미소로 전하는 ‘웃픈’ 추억이 되었다. ‘부족하다’라는 고백에서 시작된 전환 그는 바이올리니스트로 활동 중 한국침례신학대학교 교회음악과에 교수로 임용되어 학교 오케스트라의 지휘를 맡게 되었다. ‘지휘의 경험이 있었지만, 하나의 오케스트라를 책임지고 이끌어야 하는 것의 무게는 상당하더군요.’ 첫 연주를 마치고 연주 영상을 확인하던 순간, 그는 자신의 부족함을 느끼고 ‘이왕 하는 것 제대로 해보자’라고 결심한다. 안식년을 맞아 다시 미국으로 향한 이유다. 안식
새해의 계획을 세우며 설레이는 요즘, 음악을 사랑하는 친구와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태아가 편안하게 엄마의 자궁안에서 음악을 듣는것 같은 경험을 선물할께'라며 나의 손을 잡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과연 어떤 곳일까? 궁금해하며 도착한 곳은 음악카페 '쿼터(QUARTER)'였다. 생각보다 작은 문을 열고 좁은 통로를 따라 들어서니 아담한 공간이 펼쳐졌다. 서너 개의 탁자와 피아노, 드럼 그리고 커다란 스피커와 벽면을 가득채운 수많은 CD가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자리에 앉는 순간, 친구의 비유가 과장이 아니었음을 알게되었다. 스피커를 통해 울리는 음악은 공기처럼 번져, 온 몸을 포근하게 감싸 안았다. 작은 공간의 밀도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이 곳을 꾸려가는 주인의 태도때문이었을까? 음악을 지나치게 내세우지 않으면서도 듣는 사람의 마음을 조용히 음악곁에 머무르게 했다. 필요한 순간에는 곡에 대한 설명이 자연스럽게 덧붙었다. 그것은 불편한 가르침이 아니라 다정한 나눔에 가까웠다. 지식이 대화를 지배하지 않았고, 설명은 감상을 방해하지 않았다. '쿼터(QUARTER)' 정마루 대표와 이야기를 이어가며 음악을 대하는 그의 생각을 함께 한다. Q. 대표님
오페라 하면 흔히 베르디, 푸치니, 로시니등을 떠올리게 된다. 주요 줄거리로 사랑, 복수, 그리고 신분차이등 인간이 느끼는 감정의 본질을 일깨워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해준다. 과거의 이야기일지라도 권력의 부패, 신분 갈등, 인권 등의 주제를 통해 현대 사회의 모순을 되돌아보는 기회를 제공하는 오페라. 오페라는 세상이 변해도 변하지 않는 인간의 숭고함과 뜨거운 생명력을 우리에게 전달한다. 그렇다. 과거의 외침이 단지 기록에 머물지 않고 음악을 통해 현재의 우리에게도 자유와 정의의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지 전하는 오페라가 있다. 바로 창작오페라 <2. 28>이 그러하다. 창작오페라 <2. 28> 1960년 2월 28일, 대구의 고등학생들이 부당한 권력에 맞서 자발적으로 일어난 '2. 28 학생민주운동'은 3.15 부정선거를 들추어내고 '4.19 혁명'의 불씨와 도화선이 되었다. 그 날의 외침을 공연예술로 되살려, 청소년이 주체가 된 최초의 민주운동의 의미를 되새기고, 오늘날의 정의와 자유의 가치에 대해 다시 묻고 다지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오페라의 줄거리는 병상에 누운 아버지는 딸에게 자신이 겪은 하루를 들려주며 시작한다. 딸은 아버지의
25년 12월 24일부터 26년 1월 4일까지 수성못 일원에서 수성빛예술제가 열리고 있다. 이 축제는 밤밤곡곡 100선에 이름을 올린 대구의 대표적 겨울 축제이다. 제7회 수성빛예술제 김광수 총감독을 만나 좀 더 자세하게 설명을 듣고 축제를 즐겨보자. Q. 총감독님 반갑습니다. 소개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는 제7회 수성빛예술제 총감독 김광수입니다. 저는 조명과 빛을 기반으로 한 조형예술과 공간 연출을 작업해 왔습니다. 특히 예술이 특정 전문가의 영역에 머무르지 않고, 시민의 삶과 공공장소에서 자연스럽게 만나는 방식에 관심이 큽니다. 저에게 수성빛예술제는 ‘축제의 조명연출’이라기 보다, 사람들이 함께 배우고 만들며 성장하는 ‘빛 예술의 장‘입니다. *경북대학교 미술학과 조소전공 *제1~6회 수성빛예술제 기획연출 참여 *제3~4회 해운대빛축제 디자인기획 총괄 *대가야 야간경관 명소화 사업 자문위원 *문화유산야행 및 공공시설 야간경관 기획연출 Q. 빛 예술제를 주관하시며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말씀해주세요. A. 화려한 개막식의 점등보다, 작품 제작 과정에서 학생들과 강사들이 처음으로 불을 켜보던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한지
음악으로 빚은 삶, 예술의 품격을 노래하다. 31년간 경북대학교 예술대학 음악학과에서 후학을 길러온 심송학 테너는 정년퇴임 이후에도 여전히 음악의 숭고함을 전하고 있다. 전공자를 넘어 비전공자에게까지 성악의 기본과 감성의 품격을 전하며, ‘어떤 삶이 행복한 삶인가?’라는 질문에 자신의 행보로 답을 대신한다. 독일 가곡의 내면을 ‘스승의 온기’로 배운 시간 서울대 성악과를 졸업하고 독일 하이델베르크-만하임 음악대학원에서 공부한 그는 독일 가곡에 남다른 애정을 보여준다. 그 출발점은 서울대 재학 시절 평생의 은사 정훈모 교수의 영향이다. 국내에서 ‘독일 가곡 독창회’ 개최의 선구자로 기억되는 정훈모 교수의 가르침은, 그가 리트(Lied)의 ‘내면적 분위기’로 들어가는 통로가 되었다. “정훈모 선생님의 가르침 덕분에 독일 가곡을 사랑하게 되었죠. 선생님께 배운 슈만과 슈베르트의 가곡을 부를 때면 지금도 스승의 따뜻한 영혼을 느끼게 됩니다.” 독일 가곡은 ‘시(詩)와 음악의 결합’으로, 그 시의 결을 건드리지 않는 내밀함이 곧 음악가의 품격이 된다. 말보다 느리게, 그러나 더 깊게 도달하는 독일 가곡은 시의 호흡을 따라가되 감정의 섬세한 결정을 드러낸다. 시가 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