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소 작가의 전시가 한창인 대구미술관은 차가운 겨울바람과 달리 잔잔한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다. 평소 관심 있게 지켜보던 작가의 작품을 직접 마주한다는 설렘 속에 유난히 포근한 음성의 해설이 들려온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도슨트 정희선이다.
그녀는 고등학교 시절 미술을 전공하고 싶다는 마음은 있었지만, 가정 형편상 꿈을 접어야 했고 결국 문학을 전공했다. 결혼 후 아이를 키우고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면서 미술은 취미의 형태로 남겨두었다. 미술 관련 책을 읽고, 취미 미술 수업을 들으며, 아트페어에서 그림을 즐기는 것이 그녀에게 미술과의 접점이었다.
그러던 중 코로나 시기에 우연히 접한 대구미술관의 ‘도슨트 양성 교육’ 공지를 본 그녀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저 미술이 좋아서 시작한 도슨트란 직업이 정확히 뭔지도 모른 채 무식해서 용감하게 시작했다며 조심스레 고백한다.
막상 시작해 보니 도슨트는 ‘가벼운 설명’의 일이 아니었다. 그녀는 도슨트 활동의 관문을 ‘세 개의 고개’로 정리한다. 첫 고개는 전시 스크립트를 쓰는 일, 다음은 시연, 마지막은 처음 관객 앞에서 말하는 순간이다. ‘매 전시가 시작될 때마다 고개를 세 번 넘는다’라는 말처럼, 그녀는 그 과정을 반복해 ‘벌써 30여 개 전시를 해설했다’라고 전한다. ‘이 정도로 공부와 시간, 에너지가 필요한 줄 알았다면 시작할 엄두를 못 냈을 것’이라는 고백은, 도슨트가 전시를 ‘자기 언어로 번역’해 관객의 경험을 설계하는 노동임을 보여준다.
작가·기획만큼 ‘관객의 시각’이 중요하다.
정 도슨트가 해설에서 가장 우선순위로 두는 것은 ‘관객의 질문’이다. 그는 “도슨트는 작가의 의도와 큐레이터의 기획을 전달하는 것만큼 관객의 시각이 중요합니다”라고 말한다. 관객이 무엇을 궁금해할지, 전시를 보고 난 뒤 어떤 생각을 하면 좋을지—그 고민이 해설의 출발점이라는 뜻이다.
이강소 작품 <생성>이 들려준 인생의 은유
이 관점은 이번 이강소 전시를 읽는 방식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정 도슨트는 도슨트 첫해 이강소의 작품 〈생성〉을 보았을 때 ‘너무 황당했다’라고 회상했다. 조각이 뭔지, 미술이 뭔지 감도 안 잡혔다는 그녀의 솔직한 고백은 현대미술 앞에서 관객이 흔히 느끼는 거리감과 정확히 겹친다. 다른 전시를 통해서도 여전히 쉽지만은 않았다는 그녀는, 이번 전시 제목 〈곡수지유: 실험은 계속된다〉에서 결정적인 힌트를 얻었다고 한다.

그녀가 관객에게 제안하는 관람 방식은 명료하다. ‘흘러가는 물을 바라보듯 전시를 즐기면 어떨까.’ 분석과 정답 찾기의 부담을 내려놓고, 질문하고 소통하고 참여하는 태도로 작품을 만나자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해설은 일방향 전달보다 ‘주고받는 해설’을 지향한다.
이강소의 작업을 풀어내기 위해 양자역학도 건드리고, 동양화도 짚어 보고, 〈생성〉 같은 인생 이야기도 곁들인다는 그녀. 전시 마지막 지점의 〈소멸-화랑 내 술집〉에서는 작품 의도처럼 관객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관객에게 건배사를 청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정 도슨트가 가장 마음에 와닿는 작품으로 꼽은 것도 〈생성〉이다. 5년 전 이 작품을 해설했을 땐 지면에서 읽은 작가의 말을 그대로 옮기거나 더 난해한 평론가의 단어로 전했다는 그녀는 그 시절을 ‘소울리스 도슨팅’이라고 표현했다.

그녀는 〈생성〉의 흙덩이가 하루하루 살아가듯 한 겹 한 겹 쌓여가는 모양을 보며 인간의 실존, 우리네 인생 같다는 생각에 이르렀다고 말한다. 무엇이 되려고 의도하지 않고 그저 던져져 마르고 굳어져 마침내 어떤 형상이 되어가는 과정은 작가의 의식적 행위와 자연의 무의식적 작용이 함께 만들어낸 결과이며, 그것이 곧 나의 의지와 주위 환경으로 빚어지는 우리 각자의 삶과 닮았다는 깨달음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작품이 ‘설명해야 할 대상’에서 ‘삶을 비추는 거울’로 바뀌는 순간이다.
실제로 그는 해설에서 ‘제목’에 의미 부여를 많이 하는 편이라고 한다. 기획자의 의도가 한눈에 보이면 맥락이 잡힌다는 이유에서다. 또 하나, 그가 힘을 싣는 지점은 클로징 멘트다. “제 해설을 듣는 분 중 한 분이라도 미술관을 나서면서 예술과 삶에 대한 생각을 1초라도 했으면 하는 게 제 바람입니다.” 도슨트의 역할을 정보 전달에서 끝내지 않고, 관객이 전시를 자기 삶의 질문으로 이어가도록 돕는 데 둔다는 것이다.
2026년부터 서울시립미술관 도슨트 활동도 시작하게 된 그녀는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합격했다며 기쁜 소식을 전한다. 대구미술관은 미술이라는 세계로 소중한 인연을 맺게 해준 첫사랑 같은 곳이라며 특별한 정을 드러낸다. ‘좋은 일이 생기길 바라기보다, 더 나은 경험을 많이 할 수 있는 2026년이 되길 바란다’라는 관람객에게 전하는 그녀의 새해 인사는 전시 해설이 결국 ‘경험의 확장’을 향한다는 점을 다시 확인시킨다.
그녀는 도슨트 활동을 지속하게 해준 원동력으로 ‘동료’를 꼽았다. 코로나 시기 2인 1조로 활동하며 선배 도슨트에게 많이 배웠다며 모든 도슨트분들에게 존경과 감사를 전하고 싶다는 인사도 빠뜨리지 않았다.
도슨트는 미술관, 박물관 등에서 관람객에게 전시물(작품)을 안내하고 설명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단순히 작품을 설명하는 사람이 아니라, 작품과 관객 사이에 의미의 다리를 놓는 사람이다.
‘작품은 정답이 아니라 질문이다. 도슨트는 그 질문을 관객과 함께 탐색하는 동반자다.’
작품을 통해 삶의 거울을 건네는 일을 사랑하는 그녀와의 대화는 ‘26년을 어떻게 꾸려나갈까?’, ‘나는 어떤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 있는가?’라는 내면의 질문에 능동적인 사유의 시간을 가져보았다. 나와 예술 사이에 깊이 머무는 시간을 선물해 준 그녀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대한민국예술신문 최영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