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트리아트 레저오페라 도니제티 <사랑의 묘약> - 가까이서 즐기는 벨칸토

오페라 공연은 종종 ‘무대의 위엄’이 감동의 크기를 좌우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번 공연은 그 공식을 뒤집었다. 대극장의 원근법 대신, 한 공간을 공유하는 듯한 가까운 거리에서 음악을 함께할 수 있었다. 벨칸토의 아름다운 선율, 리듬, 감정은 청중들에게 직접 말을 거는 언어가 되어 전달되는듯했다.
코믹과 유머가 있는 오페라 <사랑의 묘약>은 특히나 타이밍의 예술이다. 웃음이 터지는 순간, 숨을 머금는 정적, 박수의 온도는 장면 전환의 속도를 바꾸고, 다음 대사의 각도를 결정한다. 그야말로 함께 울고 웃는 묘미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성악가는 관객의 표정을 읽고, 관객은 성악가의 호흡을 따라가는 공연이었다. 오페라가 지닌 공공성, 공동체가 하나의 이야기를 함께 완성해나가는 경험이 가능했던 것이다.
네모리노(현동헌 테너)는 아름다운 선율의 끝에서 스며드는 절제된 여백으로 인물의 진정성을 전달했다. 벨칸토의 미덕은 기교의 과시가 아니라, 선율이 끝나는 지점에서 감정이 어떻게 남는가에 달려 있다. 그는 프레이즈의 말미를 무리하게 닫지 않고, 미세한 호흡으로 여운을 남기며 그의 순정이 ‘순진함’이 아니라 지속되는 마음의 품격임을 들려주었다.
아디나(소은경 소프라노)는 지성과 감정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결정권자의 표현력이 돋보였다. 빠른 진행에서도 텍스트가 흐트러지지 않는 딕션과 리듬을 장악하는 안정감이 그녀를 “도도한 대상”이 아니라 서사를 움직이는 주체로 세웠다.
벨코레(최득규 바리톤)은 풍성한 성량을 기반으로, 군인다운 직선성과 자신감을 명확한 윤곽으로 제시했다. 그는 자칫 전형적 방해자로 단순화될 수 있는 역을 단단한 중심과 넉넉한 공명으로 인물의 사회적 매력을 설득력 있게 드러냈다.
둘카마라(전태현 베이스)는 청중을 좌지우지하는 표현력과 기발함 그리고 실력을 겸비한, 말 그대로 무대의 구심점이었다. 둘카마라의 생명은 말의 타이밍과 리듬 장악에 있는데, 관객의 반응을 흡수해 순간의 공기를 재구성하는 능력은 노련했다. 그 노련함은 희극적 효과를 넘어 작품의 핵심(인간이 ‘믿고 싶은 것’을 믿는 심리)을 선명하게 비추는 힘으로 이어졌다.

관객의 호응에 함께 호흡하는 음악회 – 공동체적 감정의 생성
‘레저오페라’라는 형식은 ‘쉽게 즐기는 오페라’라는 설명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이날의 공연은 그야말로 하나의 유기체가 된 것이다. 웃음은 리듬이 되고 박수는 찬사에 그치지 않고 장면의 결을 결정하는 에너지가 되었다. 이러한 결과로 오페라는 ‘감상’이 아니라 ‘참여’의 예술로 되살아났다.

Q. 「사랑의 묘약」한 해를 마무리하는 공연 작품으로 선정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A. 테너로서, 그리고 ‘지트리아트컴퍼니’대표로 활동하며 중요하게 생각해 온 것은 오페라가 어렵지 않게 관객과 만나는 방식입니다. 「사랑의 묘약」은 음악적 완성도와 대중성을 동시에 갖춘 작품으로, 오페라의 본질적인 즐거움을 가장 잘 전달할 수 있는 레퍼토리라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연말 공연은 한 해 동안의 활동을 정리하는 자리이자, 단원들과 관객 모두에게 따뜻한 여운을 남겨야 하는 무대입니다. 「사랑의 묘약」이 지닌 유쾌함과 인간적인 서사는,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관객들에게 웃음과 공감을 전하고, 단원들에게는 성취감과 자신감을 안겨줄 수 있는 작품이라 판단했습니다.
또한 이 작품은 성악적 기교뿐 아니라 연기, 호흡, 앙상블의 균형이 중요한 오페라이기에, 지트리아트컴퍼니가 추구하는 ‘음악과 극이 함께 살아 있는 무대’를 보여주기에 가장 적합한 작품이었습니다.
Q. 작품 준비 과정에서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과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였나요?
A. 이번 「사랑의 묘약」을 준비하며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연주자들이 각자의 역할을 ‘이해하고 선택하게 하는 과정’이었습니다. 단순히 악보와 대본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인물의 성격과 감정선, 그리고 장면마다 달라지는 음악적 의도를 함께 분석하며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테너로서 무대에 서 온 경험을 바탕으로, 실제 공연에서 느끼는 긴장감과 감정의 흐름을 단원들과 공유했고, 리허설 중에는 “이 장면에서 관객에게 무엇을 전하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자주 던졌습니다. 그 과정에서 단원들 각자가 자신만의 해석을 만들어 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한 장면에서 감정 표현에 어려움을 느끼던 연주자가 있었는데, 그때 다른 연주자들이 자발적으로 무대 동선을 바꿔보자거나, 감정에 대한 의견을 나누며 함께 해결책을 찾았던 순간입니다. 그 장면은 이후 공연에서 가장 자연스럽고 설득력 있는 장면 중 하나가 되었고, 이 경험은 앙상블의 힘과 소통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해주었습니다.
이번 작품을 통해 저는 대표이자 성악가로서, 그리고 예술교육의 현장에 있는 사람으로서, 결과보다 과정에서 성장하는 예술가의 모습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깊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음악에서 삶으로
네모리노는 묘약을 통해 사랑은 시간을 견딘 진정성임을 알려준다. 변화는 엄청난 비법이 아니라, 작은 행동의 시작에서 비롯됨을 힘든 일상의 우리에게 지혜로 전해주고 있다.
가까운 거리에서 벨칸토의 언어를 통해 관객의 마음으로 다가오는 음악은 그렇게 각자의 삶을 비추는 거울이 되었다. 큰 무대의 장엄함보다는 한 사람의 목소리가 다른 사람의 내면에 닿는 순간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지며... 그렇게 지트리아트는 음악을 즐기며 자신을 통찰하는 기회를 관객들에게 선물했다.
[대한민국예술신문 최영민]




